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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 "www.kcue.or.kr 3. 2015-06-66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입학생 체험수기집 또 다른 나를 찾는 행복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0/5&/54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대  상‘선노취련업하 고후 진얄학미 운이 라대는학 생인활생 의하 기지’름길로  조재우 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2학년 3 우수상번이남지점병프 건를국 대하학다교 신산업융합학과 2학년 17 어느 늦깎이 여대생의 만학 이야기 김남정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3학년 27 장려상김꿈꾸보희는  동나덕는여 멈자추대지학 교않 는세다무회계학과 4학년 41 나의 두 번째 대학생활김태연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3학년 53 내 인생 1막, 현재 진행 중이은혜 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1학년 64 농부의 진심황경동 경북대학교 농산업학과 1학년 73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나면 따뜻한 봄이 온다정안순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3학년 80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송예진 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4학년 92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0/5&/54  • • • • • • • •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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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흔히 그렇듯 실업계로 진학하게 되는 계기중 하나는 경제력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그 이유가 가장 컸다. 이제는 조금은 따분한 얘기가 되어버린 *. 시절을 꺼내보자면 우리 집도 그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고 나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 곁을 떠나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생활고’라는 무게를 견뎌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비행기 조종사가 꿈이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단순하고도 막연한 꿈이 내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내가 뭘 하고 싶은 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아직은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시점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떠밀리듯 진학한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생각했다. 학업보다 실무에 매력을 느낀 나는 이런 나의 생각을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는 국립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추천해 주셨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원서를 냈다.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의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있을 때 친구들과의 토론이 벌어졌다. 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터라 토론의 내용은 주로 입시에 관련된 것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주제의 그 토론에 참여할 수 없었고 그때부터 나에게 ‘대학교’는 벽에 가려진 딴 세상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고등학교 입학 초기에 난 몇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이 간다는 선입견이 종종 퍼져 있었는데 그런 아이들 틈에서 학교 생활이 어긋나 버리지는 않을까,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배우는 것이 적지 않을까 ’G하는 걱정들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학교생활이 시작되면서 이는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학교 친구들은 순수하고 착했으며 다들 저마다의 사연 하나씩은 가진, 누구보다도 마음 따뜻하고 성숙한 아이들이었다. 이런 친구들과의 학교생활은 내 삶에 있어서 새로운 나를 찾는 계기와 나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주었다.   그런 고등학교생활을 하며 1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어느 늦은 밤 기숙사에서 자정이 넘도록 실습장의 창으로부터 새어 나온 불빛을 보게 되었고 수소문 끝에 그 불빛들을 밝히던 이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들은 바로 ‘전국기능경기대회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기능특활생 선배들로 밤늦게까지 훈련을 하고 있었다. 순간 그 선배들이  4 대상•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조재우  너무 멋있어 보였고 ‘빨리 취업해 돈을 벌고 싶다.’라는 나의 단순한 목표가 너무나도 초라해 보여 나는 고민 끝에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기능특활생에 도전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내게 생긴 새로운 목표 ‘전국기능경기대회 금메달’을 위해 열심히 훈련하였고  선배들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온갖 심부름과 청소, 빨래까지 지금은 상상하기도 싫은 그런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도중에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포기하는 순간 힘든 가정형편 때문에 현실에 굴복하고 나의 꿈들을 포기했던 과거를 대물리는 것 같아 끝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   힘들게 배운 기술로 나는 어느덧 3학년이 되었고 2007년 지방기능경기대회 $/$선반 직종 금메달로 시작해 천안에서 열린 제42회 전국 기능경기대회에서 은메달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날 대회 시상식장에서 나는 이름만 들어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다 아는 온갖 대기업들의 원서를 받기 시작했다. 각 회사 관리자들은 내가 원서만 쓰면 무조건 받아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고 난 생각하였다. ‘드디어 내가 어린 시절 그토록 바라던 취업을 해 돈을 벌수 있는 것인가 ’G너무나도 기뻤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난 어느 회사에 입사할 지 행복한 고민을 하던 도중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전국기능경기 대회가 끝나면 각 직종의 홀수년도 금메달 선수와 짝수년도 금메달 선수 두 명이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러 이긴 한명만이 2년마다 열리는 세계기능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되는 영광이 주어지는데 올해부터 규정이 바뀌어 홀수년도 금, 은, 동메달 선수와 짝수년도 금, 은, 동메달 선수 총 여섯 명이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뀐 규정 덕분에 은메달인 나도 국가대표선발전 출전 자격을 갖게 되었고 나는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더 큰 꿈으로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삼성그룹과 현대그룹 두 회사에서 국가대표선발전을 지원하겠다고 하여 나는 삼성테크윈에 입사하여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였다. 이제는 학생이 아닌 월급을 받는 사원의 신분이었지만 내 업무는 학창시절과 같이 아니 오히려 더 열심히 기능훈련에 매진하였다. 그렇게 약 1년에 걸친 훈련 끝에 3차까지 치뤄진 치열한 국가 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대표 선발전을 거쳐 당당히 $/$선반 직종 대한민국 국가 대표가 될 수 있었다.    이제부터 목표는 ‘세계대회 금메달’.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뛰었다. 내가 출전해야 할 $/$선반 직종은 기계가공분야에 있어 기술 선진국인 독일, 스위스, 일본 등등에 밀려 16년 동안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나의 어깨가 무거웠다. 특히 일본은 $/$선반 직종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오죽하면 이전 국제대회 선배들이 “일본은 우리가 10년을 더해도 이기지 못한다.”라고 하며 목표순위를 은메달을 우선으로 동메달, 금메달 순으로 정하라고 하셨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정말로 ‘일본을 이길 수 없는 것일까 ’G한동안 훈련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해온 나의 노력이 일본이라는 큰 벽에 막히는 것 같아 너무 허무했다. 하지만 나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경쟁했던 5명의 선수들과 힘들게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꼭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훈련에 임하였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컵라면을 먹으며 훈련하는 기계 옆에서 끼니를 때웠고,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하루 네다섯 시간만 자며 훈련하였다. 훈련 도중 잠이 오거나 지치면 책상과 기계 앞에 적어놓은 나와 경쟁할 일본선수 이름을 보며 의지를 불태웠고 훈련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기숙사에 돌아오면 이전 국제대회 일본선수의 경기 영상을 틀어 재생과 정지, 되감기를 반복하며 일본선수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분석하며 일본의 기술을 연구했다. 그런 기술을 무작정 따라하다 실수와 실패를 반복했고 밤에는 다시 영상을 보며 어깨너머로 일본의 선진기술을 눈에 익혀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정말 금메달을 위해 미쳐 있던 것 같다. 그런 실수와 실패의 반복 속에 나는 안 해본 방법이 없을 정도로 많은 도전을 하였고 또 많은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열린 2009년 캐나다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대회 1차 과제와 2차 과제를 무사히 끝내고 마지막 3차 과제에서 나는 금메달을 확신했다. 과제는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도면을 받는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영상으로 보아오던 일본의 가공방법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한 나로서는 일본의 기존 방식으로 가공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일본을 밤마다  6 대상•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조재우  연구한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나의 예상은 적중하였고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쟁쟁한 나라들도 비슷한 실수를 하며 나는 $/$선반 직종 대회 역사상 처음 나온 ‘만점’이라는 점수로 16년 만에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선반 직종에서 태극기를 대회 시상식 가장 높은 곳에 올려 놓았다.     캐나다에서 시상식이 끝나고 꿈만 같은 일들이 펼쳐졌다. 청와대에서 대통령과의 만찬, 동탑산업훈장 수상, 카퍼레이드 환영식, 상금과 연금 혜택, 여러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 등등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살던 나에게 너무나도 큰 보상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더 달콤했던 것은 국가대표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약 5년간의 이 힘든 여정을 이제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내 나이 22살, ‘금메달’만 바라보며 달려온 나의 목표는 이제 황홀한 추억으로 사라졌고 여느 또래 친구들처럼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지만 ‘너무 이르게 성취한 목표 때문일까 ’G아니면 ‘내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은 뒤의 공허함일까 ’G마음 한구석에는 왠지 모를 허망함과 허전함이 남아 있었다. 이런 복잡한 기분을 뒤로하고 나는 회사의 ‘현장’에 배치를 받으며 ‘항공기엔진 부품 정밀기계가공’이라는 막중한 업무를 부여받았다. 이제는 ‘기능훈련생 조재우’가 아닌 ‘직업인 조재우’로서의 시작이었다.   현장 업무는 쉽지 않았다. 산업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기술력을 가지고 계신 수많은 기능인들 앞에선 ‘세계대회 금메달’이라는 나의 화려한 가면은 ‘건방진 하룻강아지’에 불과하였고 난 이 불편한 가면을 빨리 벗고 싶었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여 밀대자루를 잡고 청소하는 것이 나의 하루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또 금메달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기 싫어 맡은 업무에서도 최선을 다한 결과 직장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현장에서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인력으로 성장하였고 회사 창립역사상 유래 없이 25살이라는 최연소의 나이로 대리 직급인 ‘기원’에 진급할 수 있었다. 이런 사회적 성장과정에서 경제적인 형편도 당연히 좋아졌다. 부모님을 내가 손수 번 돈으로 모셨고 다달이 용돈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고등학교 졸업 후 빠른 취업은 내게 효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줬으며 사회인으 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로서의 성장을 도왔다. 내게 있어서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 모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터라 다들 군대를 제대하고 늠름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고 이제 막 취업에 대한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고졸 취업을 통한 빠른 사회 진출과 안정된 직장, 높은 사회적 지휘 그리고 또래의 청년들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고 있던 나는 그런 친구들 사이에선 당연히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출근과 퇴근, 영화 모던타임즈의 한 장면처럼 반복되는 나의 삶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던 나에게 추억으로 사라져버리고 없는 꿈을 가지고 대학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나는 부러웠다.   ‘고졸 취업은 정말 잘한 일인가 ’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난 백 번이고 ‘그렇다 참 잘한 일이다.’라고 대답할 순 있었지만 고졸이라는 학력의 벽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곤 했다. 그런 학력의 벽을 나의 직업에 대한 ‘전문성’으로 뛰어 넘기 위해 퇴근 후 ‘일반기계기사’G자격증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작정 책을 구입해 책을 편 순간 나의 두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분명 기계분야는 내 전공인데 내가 상상했던 내용과는 달리 각종 수학 공식들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고 처음 보는 전문용어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순간 나의 무지를 깨달았다. ‘난 기능인이었지, 기술자는 아니었구나 ’G오로지 실기위주로만 실습해온 나에게 기술적 전문지식은 너무나 생소한 ‘외계어’나 다름없었다. 그런 좌절과 동시에 한편으론 ‘기능과 기술을 겸비한 진정한 세계1등이 되자!’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겨났다. 그렇게 내가 부족했던 기술적 전문지식을 배우고자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대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대학교 진학은 나에게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면 당연히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했고, 부모님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상황에 퇴사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기능훈련으로 인해 정규 고등학교수업을 충분히 수강하지 못한 나에게 수능공부 및 다른 고3학생들과의 수능경쟁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그렇게 대학교 진학은 나에게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 현실에 순응하며 점차 잊혀질 때쯤 회사 게시판의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창원대학 8 대상•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조재우  교 학생 모집’G내용은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이상 회사에 근무를 하면 수능점수 없이 재직경력과 면접을 통해 입학을 할 수 있으며 수업진행도 교양과목 온라인 강의 및 전공과목 야간수업, 주말수업으로 진행되므로 회사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배우고자 했던 공학 분야의 공대도 개설되어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랐고 믿기지 않았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G나의 대학교 진학을 가로막던 현실이라는 장벽을 깔끔히 무너트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지원서를 냈고 입학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입학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생인 고향친구들의 조언으로 ‘공대 학문의 기본은 수학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어 입학 후 학부 커리큘럼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중고등학교 수학 &#4교재와 인터넷 강의를 보며 중학교 이후 놓았던 펜을 다시 잡았고 교수님과의 면접을 준비하며 하루하루 바쁘게 지냈다. 그런 열정의 보답이었을까  난 26살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14학번이 되었다.   다행히 대학에 합격했지만 몇 가지 고민들이 있었다. 바로 직장생활과 대학생활, 이 두 가지 생활의 병행에 관한 두려움과 걱정들이었다. 나와 같은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자신이 퇴근 후 ‘다른 일’을 한다고 하면 분명 ‘회사업무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동료와 상사들의 눈치를 받기 싫었다. 그리고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던 나에게 오전 근무와 야간 근무조에는 학교 출석이 시간상 가능했지만, ‘오후 3시 출근, 밤 11시 퇴근’인 오후 근무조에는 학교 출석이 힘들었다. 혼자 고민한 끝에 비밀로 하려고 했던 나의 학교 진학을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털어놓았다. 분명 이런 사실을 마뜩하지 않게 여기리라 생각한 나는 뜻밖의 상황과 마주쳤다. “축하한다, 재우야.”G“그래, 잘한 선택이야.”G등 축하와 칭찬이 내게 돌아왔고 오후 근무 때 학교 출석에 관한 것은 직장동료들이 서로 ‘근무 조를 바꿔 주겠다.’고 하며 부담 없이 학교를 다니 라며 격려해 주었다. 나는 그런 상사와 동료들의 호의에 눈물 나게 고마웠고 동료들과 상사를 오해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나는 회사 측의 배려로 갈 수 있었던  첫 등굣길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첫 강의실에서 앞으로 4년을 함께할 대학교 동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는 다양했고 사업체 사장님과 직업군인까지 직업도 다들 다양했다.  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지내온 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이 내심 두려웠지만 각자의 지원동기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들어보니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는 이미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평범한 사회인들과는 달리 모두 ‘뜻한 바를 가지고 대학을 찾은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나는 다른 일반 대학생들과는 다른 장점을 보게 되었다. 그건 바로 ‘인맥!’G사회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인 ‘인맥’을 그것도 ‘아주 확실한 인맥’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선취업 후진학 과정을 통해 찾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교수님들의 강의도 정말 좋았다. 매일 현장에서 일하는데 익숙해진 내가 밤에는 또래 대학생들처럼 책상에 앉아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출석만 대충 하면 졸업할 수 있는 거 아니야 ’, ‘졸업장만 받으러 가는 건데 강의의 수준이 좋을 리 있겠어 ’G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야간대학과정’이라고 하면 이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할 것이다. 나 또한 입학 전 이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 모인 학생들은 ‘뜻있는 사람들!’, 대부분 ‘열정이 가득한’G사람들이다. 그런 학부생들의 특성을 잘 아시는 교수님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강의에 임하셨다. 시험기간이 되면 이 ‘뜻있는 사람들의 열정’은 더욱 불타게 된다. 분명 다들 직장생활을 하며 공부하는 것이 지칠 법도 하지만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들도 새벽까지 학교에 남아 도서관을 지켰다. 이런 학과 분위기에서 과연 ‘편하게 졸업장만 받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누구나 직접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퇴근 후 전공과목 책부터 펴 공부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선취업 후진학 과정의 특별한 장점은 또 있다. 인문계를 진학하고 수능공부만 해온 학생들은 사회, 직장에서의 경험이 없으므로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에 필요한 학문이 무엇인지’G모르는 상태로 오로지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을 정하고 전공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이다. 그래서 막상 대학교에 진학해보면 자신의 적성에 전공과목이 맞지 않아 전과를 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도 많았다. 아니면 졸업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태껏 보지 못한 다양한 직업들과 일들을 보며 좁은 시야로 선택한 자신의 전공을 후회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선취업 후진학  10 대상•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조재우  과정의 학생들은 사회생활로 넓어진 시야를 통해 자신이 ‘무엇이 부족하고’G‘무엇을 배우고자’G하는지, 즉 자신의 필요로 대학교에 진학했기에 전공 선택에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전공에 대한 열정은 더욱 남다르다. 또 그렇게 습득한 전공학문에 대한 이해력은 일반학생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일반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이 배운 것이 사회, 현장의 어디에서 실제로 활용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수업 당시에만 이론적인 활자로 받아들이며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예를 들어 ‘수학과목’을 보자! 학창시절에 수학을 공부하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더하기 빼기만 잘하면 되지 ’, ‘미분 적분을 살아가며 어디에 써먹겠어 ’라고 생각해봤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실에 적용 못하고 책으로만 배운 지식은 참으로 이해하지 못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여기서 쓸 수 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전공지식이 내가 일하는 곳에서 어디에 쓰이는지 직접 목격하고 있기 때문에 전공과목의 내용들은 더욱 실감나는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지고 스펀지처럼 흡수되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창의적 공학설계’에서 배운 ‘진짜문제 도출과 해결법’으로 회사의 품질불량에 대해 문제를 해결한 바 있으며 ‘공학영어’로 배운 전문영어로 유창하진 않지만 외국엔지니어들과 대화도 가능하고 ‘공학수학’에서 배운 ‘힘의 모멘트’를 활용하여 제품의 변형률을 직접 구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대학에서 배운 내용을 다음날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는 선취업 후진학 과정의  매력을 증명하는 많은 일들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대학생활이라고 하면 누구나 꿈꾸는 ‘캠퍼스의 낭만!’G난 우리학과의 특성상 캠퍼스 낭만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여느 다른 학과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욱 화끈하게 캠퍼스 낭만도 시작됐다. 첫 .5에서 우리는 제 각각 다른 각자의 직장 회식 스킬로 화려한 밤을 보냈고 ‘메카융합과’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종 술을 황금 비율로 말아 ‘융합주’도 탄생시켰다. 화창한 날 수업이 나른할 때면 ‘직장인의 눈치’랄까  거짓말처럼 입을 맞춘 듯 모두 야외수업을 주도하였고 형님들의 오랜 사회생활에서 묻어나오는 ‘협상의 기술’로 교수님을 설득하여 잔디밭에 앉아 상쾌한 바람과 함께 야외수업도 하였다. 또 학교에선 전액 과외비 지원으로 일반학과의 학생들과 1:1 멘토링 시스템을 통해 일반학생들과의 교우와 필요한 과목을 과외를 받을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난생  1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처음 받아보는 과외에 걱정도 많이 했지만 멘토의 눈높이 수업으로 난 많은걸 배울 수 있었으며 직장인들이 뒤쳐지는 학생들만의 새로운 문화도 배워가며 즐거운 과외를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학과만의 특별한 수업이 있다. 일 년에 두 번 현장역량강화발표가 열리는데 학기 초 자신의 회사업무에서 개선점을 목표로 정하고 개선 진행과정을 보고서로 제출하여 방학 전 학과의 교수님들과 전체학년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과목으로 난 여기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나의 업무의 틀에서만 갇혀 있던 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인 학우들의 다양한 개선점을 보며 안목을 넓혀갔고 또 평소 직장생활에서 해보지 못한 많은 대중들 앞에서의 발표는 나를 더 성장시켰다.   선취업 후진학의 장점은 학교생활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직장 생활에서도 드러났다. 대학 입학 전 평소 출, 퇴근만 반복하던 나는 직장동료들 눈에는 아주 평범한 많고 많은 직장인중 한 명이었지만 학교를 가게 되면서 나의 회사 안에서의 이미지는 ‘맡은 일을 위해 고민하는 직원’, ‘도전하고자 하는 직원’, ‘발전하는 직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회사 쉬는 시간에 내가 일하는 장비 앞에서 학교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도중 현장을 방문한 부장님께 공부하는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표정이 어두워 현장에서 공부하는 나를 안 좋게 봤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부서회식에 부장님이 오셨는데 회식이 끝나갈 때쯤 술잔을 들고 내 자리 옆으로 오셨다. 순간 아찔했다. 분명 현장에서 공부한 것 때문에 ‘주의를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부장님께서는 웃음 띤 얼굴로 “재우씨, 대학교 다닌다며 ”,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나도 자극 받았는걸 ”,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해, 보기 좋더라.”며 날 칭찬해 주셨다. 이렇듯 선취업 후진학 과정은 직장 동료, 상사들에게 자신의 업무와 삶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자기를 확실히 13할 수 있게 해 주어 직장상사들께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었다.   나는 요즘 하루하루 바쁘지만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지금 내 나이 27살,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통해 스스로 번 돈으로 아파트 두 채와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 재산도 꽤 모았으며 직장에선 많은 월급을 받고 안정된 직장과 높은 사회적 지휘를 가졌다. 그리고 나는 동시에 대학생이기도 하다. 다른 대학생들에게는 미안할  12 대상•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조재우   정도로 이처럼 ‘노련하고 얄미운 대학생활’은 선취업 후진학 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룰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학교 책자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추억이 되살아나, 그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 글의 내용은 ‘내가 어떻게 취업을 할 수 있었는지’에 관해 후배들에게 조언하는 글이었다. 그 글의 마지막에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어느새 그 목표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끝을 맺었는데 지금 이 순간 혼자 곰곰이 생각해본다.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과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오르고 있는가 ’G그 질문에 대답은 ‘그렇다! 난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인생의 지름길을 통해 목표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그래서 훗날 스스로를 되돌아 보면 어느덧 그 목표보다 위에 서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1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2별01전5형년입학생체험수기집또 다른 나를찾는 행복15 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  우수상번이남지병점 건프국대를학 교하 신다산업융합학과 17 어느 늦깎이 여대생의 만학 이야기김남정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27 16대상•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조재우   우수상 번지 점프를 하다 이 남 병 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1. 번지점프대를 바라보며   ‘수많은 경험을 통해 축적되어진 내 안에 그 무엇,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앙금과 계획들. 어떤 새로운 행동을 통해서 반전을 기대하게 된다.’ >> 은행원을 꿈꾼 상고진학   어릴 적부터 집안의 분위기는 여느 가정들처럼 자식의 대학진학에 대한 중요성을 비중 있게 인식하지 않았고, 학창시절 나에 대한 어머니의 바람은 멋있는 양복을 입고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안정된 은행원을 꼬집어 희망했었다. 아버지께서는 1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긴 세월 동안의 대부분을 객지에서 보내야 하는 고단한 직업으로 가정을 이끄셨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하는 소중함을 그리워하셨던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선 취업’G의지가 꽤 강하셨다. 진로에 대한 정립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했던 시절, 나 또한 어머니께서 희망하시는 진로가 괜찮은 선택이라 동의하고 상고진학을 택했는데, 그런 어머니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교진학부터 다른 진로를 선택, 학업을 소홀히 하는 외도를 택했고 그 결과 불효라는 큰 빚을 지게 되었음을 잠시 회상해본다. >> 그리고 외도   그 시절에는 머릿속에 우상을 그려놓고 그대로 따라하려는 습성, 그런 멋을 추구하고자 하는 행동과 의지가 대단히 컸었다. 화려한 무대에 선 멋진 베이스기타 연주자가 되는 확고한 목표로 우회했고, 그 목표는 학생의 본분인 학업의 중요성까지 망각할 정도의 자신감을 갖게 하여 가방 대신 기타를 둘러멘 시간이 더 많았다. 학업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으나 학교 생활에는 충실했고, 모습은 불량해 보일 수 있었지만 품행은 방정하려 노력했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을 무렵 같은 목표로 함께 했던 친구들이 저마다 취업과 진학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보고 적지 않은 방황을 했었고, 졸업 후, 이상과 현실의 두 갈래의 길에서 고민의 2년여 시간을 보내고 결국 현실로 돌아와  취업의 길을 택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고교시절은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이며 그만큼 미래를 향한 자기계발과 절제된 생활을 통해 인내를 배우는 시기이다. 나 역시도 나름대로의 선택과 결정, 목표를 가지고 열정을 다해 추진했던 과정에 대해서는 후회를 부정하지만, 학생 본연의 나아가야 할 길은 아니었던 결과에 대해서는 항상 인정하고 있었다. 2. 번지점프대! 계단을 오르는 설래임.   ‘번지점프를 하기위해 계단을 오르면서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 본다. 그리고 한 페이 18 우수상•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이남병  지씩 잘 정리하여 딛어 내리고, 다가올 미래를 하나하나 계획하며 다짐의 계단을 힘차게 딛어 오른다.’ >> 사회생활 그리고 진학의 결심   중소기업에 재직 중이다 보니 내실이 튼실한 대기업, 공기업, 그리고 몇몇의 기업을 제외하면, 자본과 인력의 한계상 체계화된 인사체계와 신분이 보장된 미래비전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수년 후에는 창업을 목표로 하여 기업가로서의 출발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자 기존의 기획부서에서 영업부서로의 보직 변경을 요청하기도 하였고, 많은 분야의 사람들과의 만남, 대화, 정보 교류 등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으로써 나름대로의 노력을 이어가고는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 그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은 깨끗이 지워지지 않았다.    ‘돈이 아니라, 배움의 길을 택하라.’   돈을 좇는 대신 다른 무엇보다도 배움을 중요하게 여겨라.   그런 마음가짐을 지녀야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로버트 그린, 마스터리의 법칙 中에서>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학업에 소홀했던 반성이 있었고, 또한 고급지식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도 항상 해왔으나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나날이었다.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 타성에 젖는 듯한 위기감이 찾아오던 즈음 ‘로버트 그린’이 지은 ‘마스터리의 법칙’이란 책을 탐독한 후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평가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 계획된 미래가 대학진학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십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갈등과 고민, 노력과 경험, 경쟁과 생존의 치열함 속에서 자신을 더욱 계발할 여유조차 없었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그것은 내 마음속 아주 작은 우물 안에서만 합리화 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1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매너리즘에 젖은 생활을 질타하고 미래를 향한 마지막이 아닌, 첫 단추를 끼우기 위해 본격적으로 진학을 결심하고 실천으로 옮긴 것은 2013년 어느 늦은 가을이었다. 3. 점프대 위에서의 i등   ‘이윽고 오른 번지점프대,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많은 경험자들이 조언했던 짜릿한 쾌감의 설렘과, 안전을 의심하는 두려움으로 갈등이 생긴다. 이곳에서 찰나의 선택이 나의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다.’ >> 마지막까지의 고민   입시제도가 많이 변경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과거의 입시상식으로 야간대학의 진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여러 대학의 입시정보를 둘러보는 과정에서 다소 늦게 ‘재직자 전형’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렇게 기회의 폭이 넓어졌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시작된 지 수 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유용한 정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으름을 안타까워할 새도 없이 급히 진학준비를 서두르게 되었다.   대학진학의 기본 잣대가 되는 수학능력 시험의 비중이 전혀 없는 선발제도가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3년 이상의 재직경력은 이미 충족한 상태에서 자기소개서와 면접, 그리고 고교 생활기록부 제출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조건은 대학입학을 희망하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한 재직자들에게 상당한 배려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경쟁을 통해 엄격히 선발되는 대학입시 이므로 서류 하나 하나, 입학원서 한 자 한 자, 자기소개서 한 줄 한 줄을 소홀히 써 내려감이 없이 정성을 다했고, 무사히 ‘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인간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간사한 고민들이 간절히 원했던 진학의 결심, 그것을 넘기 전의 문턱에서 나타났다. 머릿속에서 생리적 갈등에 직면한 것이다. ‘배가 부르면 눕고 싶다’고 점층법적 염려의 사고들이 방해를 놓기 시작한 것은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기다리는 기20간 내내 나를 괴롭혔다. 우수상•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이남병  - ‘적지 않은 나이에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 ‘대학공부가 수월치 않을 텐데, 따라가지 못해 창피만 당하는 것 아닐까 ’- ‘직장에서의 시간적 배려가 철저히 지켜질 수 있을까 ’- ‘그렇다 해도, 내가 버틸 수 있을까 ’- ‘평일 수업은 그렇다 치자.’- ‘주말 하루, 학교수업에 투자하는 것이 나의 생활습관으로 가능할까 ’- ‘나이가 내가 가장 많을까 ’- ‘그래서 학생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외면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G- ‘아_ 그냥, 포기하고 면접을 가지 말까 ’ >> 한마디 말씀, 천냥 고민을 해결하다   오만 가지 공상의 세계를 헤매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시소게임을 신나게 하는 동안 어느덧 면접날이 다가왔다. 엄숙한 면접 대기실. 자리를 잡고 면접을 기다리는 짧지만 긴 시간은 긴장의 부작용 때문인지 입가는 바싹 마르고, 정리한 생각들은 자꾸만 흐트러져 갔다.    지금은 이따금씩 맥주잔도 기울이고, 너무나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제 관계가 되었지만 면접당일, 일면식도 없었던 면접관 교수님과 면접내용의 일부를 기억해보면 현재의 나의 위치, 그 결정을 하게끔 던져 주신 한마디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 “늦었다고 생각하는가 ”- “그렇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고 오늘까지 고민했었다.”- “늦지 않았다. 하면 된다. 당신보다 더 늦게 시작하신 분들도 재학 중이다. 그리고 너무도 열심히, 훌륭하게 잘 하고 계신다.”   그냥 일반적인 조언일 뿐이었다. 그러나 넓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나에게는 의지가 되고 힘을 실어 주는 간절했던 조언이었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더 들어볼 말도 없다고 판단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하늘은 잔뜩 흐리고, 겨울비가 2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홀가분했다.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로 이동하는 중 잠시 발걸음을 멈춘 곳, 건국대의 명소 ‘일감호’. 그 앞에서 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잠시 그간의 상념에 잠겼다.   운이 좋았고, 너무도 감사하게 ‘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에 합격 통보를 확인한 것은 면접일로부터 여러 날 뒤였다. 그 조마조마함 뒤에 찾아온 몇 배의 기쁨은 내가 걸어온 짧은 삶의 궤적 속에 몇 안되는 벅찬 감동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대학생으로의 새출발! 신기한 듯 연신 주절거리며 다가올 대학생활을 기대했다. - ‘와, 그동안 건대 앞은 술 마시러 오는 곳이었는데…G이제 그 안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되었다니_.’ 4. ʻ번지_!ʼG하늘을 날고 있는 희열   ‘순간의 선택, 뛰어내리기 전 잠깐의 두려움은 하늘을 나는 희열에 어느새 잊혀진다. 왜 아직까지 이런 기분을 만끽하지 못했을까 ’ >> 우리는 한a족   처음 오리엔테이션에서의 일화를 추억해 보면 ‘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로의 선택에 강한 자부심을 느낀 동기가 있었다. 모든 행사 일정이 마무리 될 무렵 진행되는 야간 캠프파이어에서, 가슴으로 시작되어 코끝으로 찡하게 전달되는 학과의 아름다운 전통인 교수님과 선배님들이 새로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돌아가며 안아 주고 격려해 주는 장면이 연출된다. 길지 않은 학과의 역사 속에서 가장 의미 있고 감동 있는 전통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짧은 순간의 조언과 격려는 후에 있을 본격적인 학교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22 우수상•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이남병  >> 계급장을 떼고   14학번 신입생,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였다. 어리바리 수강신청을 하고 강의도 듣고, 캠퍼스도 돌아보며 새로운 생활, 새로운 공간의 신기함도 느끼면서 대학생활은 시작되었다. 학과의 특성상 서로 다른 직업들, 서로 다른 연령대의 신입생들이 재학하고 있고, 저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영역에서는 주역들이지만 학교에서는 모든 것이 서툰 신입생일 뿐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개성들이 융합될 수 있을까 ’G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 의구심이 해결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그마한 책상에 앉아 모두 함께 앞을 주시하며 빛나는 눈빛으로, 때로는 피곤함에 졸음을 참기도 하면서 열심히 강의를 듣는 순수한 모습들, 그렇게 함께한 시간들 속에  어느새 서먹했던 어설픔은 사라지고, 목표가 같기에 서로 하나되는 계기가 만들어졌 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예쁘고 귀여운 동생들, 존경스러운 누님, 형님들이 생겨 너무 든든하고 기뻤다. 당초 직장과 학업의 병행이 순조로울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면서 괜한 근심이었음을 확인했고, 학기 초,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당부하셨던 말씀은 굳이 지키려 애쓰지 않아도 그대로 실행되고 있었다. - “여러분! 학교에 등교할 때는 사회에서의 직함, 나이를 모두 내려놓고 교문을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 스릴 만점의 양다리   일반적으로 직장업무와 학업의 적지 않은 비중들, 그 일들을 함께 수행해 나가는 것이 자칫하면 위험한 도전일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나 역시도 반신반의했지만, 그 반신반의 때문에 도전을 포기했더라면 많은 후회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직장생활과 학교생활의 병행은 예상보다 고단하거나 과도한 피로를 가져오지 않는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오히려 학교에 오면 치열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힐링’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2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내가 생각하는 대학은 미래의 능력 있는 인재양성의 목표를 가진 지성인들의 공동체 공간이라는 본질적 기능과 더불어, 함께 어울리고 함께 즐기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낭만의 공간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캠퍼스의 학생들을 둘러보면 밝은 미래를 위한 어두운 발걸음들, 그렇게 쳐진 어깨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이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 고스란히 표정과 행동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취업의 문턱을 이미 넘어선 우리 학과 학생들이 망설임 없이 학교생활을 ‘힐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마 그러한 벽을 이미 넘어선 홀가분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신입생 환영회, 개강파티, 종강파티, 엠티와 학술제, 체육대회 그리고 대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축제 등 많은 행사를 경험하고 참여하는 즐거움은 역시 젊음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대학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건강한 추억이었다. 그러나, 중간고사와 과제, 기말고사를 치루어야 했던 녹록치 않은 고개들도 있었으니, 꽃피는 봄에는 창밖의 개나리를 바라보며 수업시간의 지루함을 달랬고, 어디로든 떠나고만 싶게 했던 가을의 역마살도 꽃향기를 담아 선선히 불어오는 캠퍼스 향기에 취해 학교에 머무를 수 있게 위안을 주었다. 도서관에서 흐트러진 집중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본받으며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지난 일 년 동안 낮에는 직장에서 치열하게 이윤추구를 위해 뛰었고, 저녁시간과 주말에는 학교로 돌아와 공부하고 추억을 쌓는 양면의 생활을 했다. 무엇 하나 소홀할 수 없음에 더욱 노력을 기울였고 열중했다. 이러한 이중생활은 나를 한 걸음 더 발전시키는데 톡톡한 몫을 담당했다고 자부하며, 함께 하고 싶은 미래의 후배들이 ‘후진학’의 고민을 하고 있다면 자신 있게 추천해 주고 싶다.- ‘스릴 만점의 양다리 생활’이라고… 5. 하늘을 난 후의 쾌q, 후회 없는 선택   ‘번지점프를 뛰고 난 후에는 용감해진다. 다음에는 좀 더 높은 곳에서, 좀 더 멋진  24 우수상•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이남병   모습으로 점프 하리라!‘ >> 대학은 스펙의 도구a 아니다   사실 평소 생각해오던 나를 합리화시켰던 논리, 그런 본래의 아집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라 생각하고 있는 학벌우월주위의 잘못된 오만과 편견을 단호히 부정하고 비판한 것이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건실한 직업인으로서 당당하게 걸어간다면 굳이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성공을 좇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임을 항상 자부해 왔었다. 대학에서 학업을 수학하고 있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 나의 선택에 당당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이유도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그릇을 채워 나가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과, 그러한 명분은 앞으로도 졸업장만을 목표하는 수단으로써가 아닌 절실한 ‘지식함양’의 목적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투자한 만큼 벌어a자   그동안 학업을 이수하고 난 후의 소회가 있다. 대학교육은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암기하는 것이 아닌, 강의시간에 잘 청취하고 조금씩 이해하는 과정만으로도 전부는 될 수 없겠지만, 분명 머릿속에 남는 지식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는 줄 모르는 것처럼, 차곡차곡 쌓여진 지식의 소득이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다. 직장 내에서도, 업무적 만남에서도 어느 누구와의 대화 속에서도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큰 변화였다. 또한 강의를 듣는 이론들이 실제 사회생활에서 접하는 실무와 함께 이어지는 부분이 많아서 사회생활의 경험이 학교 수업에, 학교 수업의 공부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직장과 학업의 병행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이 두 가지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포기해야 할 것도 생기고, 때로는 먼 길로 돌아가야 할 불편함도 생긴다. 그것은 소비가 아닌 투자라는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과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의 배려가 적절히 조화된다면 지금의 투자는 훗날 든든한  2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소득이 되어 돌아 올 것이라 자신한다. 또한 기업의 입장에서도 배려라는 인식보다는 인재양성의 투자라는 선택이 적절하고 합리적인 사고일 것이다.  >> 마치며 만물 중, 가장 성실함을 자랑하는 ‘세월’ 세상 희로애락 개의치 않고, 동요치 않으며, 간섭도 없이오직 제 갈 길만 묵묵히 전진하는 성실함을 인정한다. 어찌 보면 냉정한 놈이기도 하다.지난해를 돌아볼 겨를도 주지 않고, 계획대로 훔쳐간 야속한 놈.그러나...2015년 희망의 새해를 선물하고 가는 양심 있는 녀석이기도 하니,미워할 수 만은 없는 놈이다. 을미년(乙未年)이 시작된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추억과 의미가 남달랐던 지난 일 년의 학교생활을 돌아보고,새로운 학년으로의 보람을 살피며, 희망찬 새 학기를 준비해야겠다.- 2015, 2, 9. 수기를 마치며… 26 우수상•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이남병  우수상 어느 늦깎이 여대생의 만학 이야기 김 남 정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내일 해도 괜찮을 만한 그저 그런 일로 야근을 마치고, 늦은 밤 집으로 뚜벅뚜벅 걸으며 돌아가는 내 모습이 무기력하기 그지없다. 오늘과 같이 특별할 것이 없는 내일의 지루함을 예상하며, 오랜 직장생활 속의 주기적인 매너리즘조차 익숙하다고 느끼던 그때, 나의 발걸음이 멈춰 선다. 동네 주변을 보란 듯이 밝히는 어느 야간대학 강의동의 불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웅장하고 위풍당당해 보이는 탓에 먼발치로 지켜보며 한참을 생각한다. 지금 이 늦은 시간에 누군가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공부하며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매일 지나던 길목이거늘 이렇듯 새삼스러운 지금 이 순간마저 놀랍다. 바로 이 순간이 앞으로 펼쳐질 어느 늦깎이 여대생 이야기의 시작이다. 2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1. 부끄러운 발견    얼마나 됐는지 한참 동안 잊고 지내다가 손가락을 접어 세어보니 올해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새 25년째인 40대 중반의 여성 직장인이 되었다. 나는 돌이켜보면 학벌 중시, 남성 중심적인 이 사회에서 참으로 잘 버티고 있음에 스스로 신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도체 장비 관련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다 30대를 갓 넘기면서 직장생활 제2라운드로 도약하기 위한 각오로 과감히 자발적 명예퇴직에 참여하였고, 지금의 중소기업으로 재취업한 후 현재까지 14년째 몸담고 있다. 여동생을 달래듯 몇 년만 더 얌전히 다니다가 시집이나 갈 것이지 이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왜 이직을 하느냐는 상사와 선배들의 아우성 같은 조언이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이었다. 아랑곳하지 않았던 이유는 중견 이상의 기업에서 여성, 더군다나 고졸 여성의 역할에 대한 한계점을 진작 인식하고 있었기에 나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터전을 옮겨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나는 용의 꼬리가 아닌 뱀의 머리가 되겠다며 멋지게 실행에 옮겼다.    친구들 대부분이 직장생활 시작 몇 년 후엔 야간대학에 진학하였고 드물게는 회사를 그만두고 입시를 치러 공부에만 전념하는 그야말로 현역 대학생도 몇몇 있었지만 나는 한번도 진지하게 대학 입학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재직자 특별전형이 아닌 예전 야간대학은 수업시간도 빨라서 회사의 배려를 얻기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눈칫밥을 먹으며 투쟁과도 같은 험난함과 어려운 형편 탓에, 집안 반대를 무릅쓰며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고 달려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참으로 독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친구들이 결국엔 나중에 몇 배로 보상과도 같은 삶을 사는 결과를 보게 되었어도 나는 한번도 동요되지 않았다. 내가 대학 진학을 좀 더 젊었을 때 시도하지 않았던 이유를 여러 가지 환경적인 이유들을 핑계 삼아 둘러댈 수도 있지만 나는 주변 탓을 하고 싶지 않다. 온전히 나의 의지 부족, 의식 부족 그리고 스스로의 자만 때문이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 ‘열심히’란 가리는 일, 가리는 시간, 가리는 상황 없이 닥치 28 우수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남정  는 대로 했다는 뜻이다. 심지어 배우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의도적으로 기웃거리다 기회를 얻어 가면서 남들보다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기에 비교적 쓸모 있는 일꾼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다행히 칭찬 일색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덕, 그리고 나를 잘 이끌어 주는 상사들과의 좋은 인연으로 학벌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대우를 받는 설움은 특별히 없었다. 성실하게 실무를 잘 배운다면 단지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이유가 일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때로는 대학 진학을 탈출구로 삼고 거듭난 후 새 출발을 했던 친구들조차 지원직의 여성이란 이유로 경제위기 때마다 1순위로 강제 퇴사 대상자가 되거나, 경력개발을 제대로 하지 못해 대학공부가 무색하다며 방황하는 친구들을 보면 소신 있게 살아온 나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자화자찬까지 이어졌다. 그랬던 내가 어느덧 후배 직원들과 팀워크의 성과를 내야 하고 그들의 성장을 책임질 직급에 이르렀을 때 지금까지의 이런 나의 신념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어 보인다는 명언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대리를 거치고 과장까지만 해도 모르면 배워가며 일하면 된다는 자세 하나를 큰 자본 삼아 시행착오조차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차장이란 직급에 진입하고부터는 배우며 일을 해나갈 시간도 여건도 되지 않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해 두서없는 나의 실무지식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결정적으로는 나를 믿고 도와주며 따라 주는 후배들에게 나의 얕은 지식조차 제대로 설명할 근거와 논리도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내가 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제대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세상으로 바뀌어 보이기 시작했다. 흔히들 상사와 회사에서 받는 차별 대우가 충격이나 자극이 되어 강력한 진학 동기로 작용하는 것에 비하면 독특한 동기라고 할 수 있다. 뒤처지지 않는 직급은 허울뿐인 듯 나 스스로의 가치에 대하여 되돌아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무엇을 어디서부터 언제 시작해야 할 것인지 막연한 하루하루 속에 ‘나의 사회에서의 역할은 여기까지 인가.’라며 자신감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 어느 야간대학 강의실의 불빛이 나의 미래 제3라운드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로 이끌며, 길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2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2. 22년 만에 찾아온 학교   어찌 하필 그 날인 걸까. 회사에서 비싼 경비를 들여 기획해준 교육이 있는 토요일 오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지원했던 대학의 수시면접이 정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면접시간을 맞추기 위해 도착하기 빠듯한 시간을 남기고 교육장을 나와 있는 힘을 다해 뛰기 시작해 지하철과 택시를 번갈아 타며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하듯 약속된 정각에 겨우 학교에 도착했다. 첫 만남부터 진땀나는 상황에 이래서야 합격이 된다 한들 4년이란 기간을 무사히 마칠 수는 있는 건지 내심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겠다며 찾아온 나에게 “잘 왔다.”라며 격려의  말씀으로 대해 주신 교수님들과의 면접을 통해 알 수 없는 용기가 솟아나 부디 합격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돌아왔다. 감사하게도 합격을 했고 기쁨도 잠시, 회사와 학업을 동시에 해 나아갈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는데 넘어야 할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의 규칙들을 동료들에게 잘 전달하고 따를 수 있도록 솔선수범해야 하는 경영지원팀장인 나는, 학업이란 이유라 할 지라도 나만 배려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심적 부담이 적지 않았다. 재직자 전형답게 수업시간의 시작이 그리 이르지는 않아 퇴근시간은 그렇다 하더라도 40을 넘어선 나이에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학업의지를 보이니, 그 길의 어려움을 예상하듯 나의 힘든 선택에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다 입사 후 여태껏 일이 있든 없든 되도록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회사의 전등을 끄며 퇴근했던 성실의 대가였을까, 동료들의 형평성에 대한 논란도 일지 않았고 중간에 포기하면 안 된다는 회사의 격려를 받으며 새롭게 출발할 마음의 준비를 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일찍 출근하겠다고 자진 선언함으로써 회사 내 질서를 흐려놓지 않았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장 큰 산을 넘어 첫 학기를 맞이했다.   22년 만의 학교 수업이라 감회가 새롭기도 했지만 매일이 어리둥절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직장인과 학생이라는 두 가지의 본분에 임하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해 직장에서는 학업생활에 따른 피로감으로 몰입도가 떨어지고 학교에서는 낮에 있었던 회사 일들이 머릿속에 맴돌아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야말로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란 말이 절로 나오는 시기를 보내고 조금씩 적응이 되어갔다. 다양한 연령대와  30 우수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남정  직업 그리고 다양한 사연들로 일과 학업을 결심하고 우리 과에 입학한 학우들의 성실한 삶조차도 배우게 되는 나에겐 충전과도 같은 대학 생활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수업은 전임교수님들께서 맡아 주시는데 상당히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으며 커리큘럼 또한 어느 한 과목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가 현재 맡고 있는 업무 영역과 잘 맞았다. 특히 전공과목을 배우면서는 그동안 나에게 밑도 끝도 없이 주입식으로 가르쳐 주었던 오래전 직장 선배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면서 “순_ 엉터리.”라고 중얼거리며 밉상스러운 혼잣말도 해가며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우리 학교인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를 선택하고 지원한 이유는 회계와 경영 관련 업무에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 실무에 활용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학과의 전문성과 정체성이 확고하길 바랐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더불어 우리같이 힘든 여건 속에서 공부하는 다소 부족한 학생들에게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을 주시는 존경스러운 여러 교수님들을 만나 뵐 수 있었던 점 역시 감사한 일이었다.  3. 연어 z은 힘으로 이겨낸 위기   탁월한 선택과 결정이란 확신을 가지며 대학생활 입문 적응기를 거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학년 1학기를 마칠 즈음에 혼란스러운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간절한 바람과 각오로 일단 시작은 하였으나 일과 학업의 병행으로 쫓기는 듯 허둥지둥한 일상에 육체적인 피로감까지 더해져 이대로 4년을 달리면 어떤 세상과 만나지는지에 대한 허무한 짐작을 하면서 힘든 하루들을 보내게 된 것이다. 마치 멈추지도 않고 내려갈 수도 없이 쉬지 않고 돌고 있는 러닝머신 위에 홀로 태워져 숨이 차는 딱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니었는데 오랫동안 저녁시간을 게으른 관성에 빠져 살아온 모습을 방증이라도 하듯 삶의 패턴과 태도를 바꾸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야 할 길이 맞는다면 그 과정의 고단함을 어찌 극복할 것인가를 말이다. 이렇게 학업 과정 4년 동안 가방만 들고 헐레벌떡 오고 가다 결국  3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쌓는 것 없이 어떻게든 졸업만 하는 것이 초심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학업에 대한 목표를 정해 보기로 했다. ‘열심히’란 추상적인 표현은 목표라 할 수도 없으니 매 학기별, 누적별 일정 수준으로 목표 학점을 정한 후 다시 세분화해 과목별의 학점 그리고 등수까지 정해놓고 내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인위적으로 명분화시켜 보았다. 학생이니 공부를 시작했다. 먼 미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수업에 집중하게 되었고 책에 있는 내용일지라도 교수님의 말씀을 글자, 기호, 숫자 등 펜으로 남길 수 있는 기록을 총동원해 속기하는 필기 스킬도 발휘하며 학습하는 요령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또 다른 스스로의 약속, 회사의 긴박한 위급상황이 아닌 이상 지각과 결석을 하지 않는다고 정했다. 회사의 조직원으로서는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대처하려다 보니 오늘도 내일도 학교를 빠져도 되는 상황이 수도 없이 많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듯했고 어느 날쯤엔 눈이 내려서도 비가 내려서도 지각과 결석에 익숙해질까 겁이 났다. 내가 세운 계획을 꼭 지킴으로써 회사나 동료들에게 미안한 부분들은 다른 방법과 노력을 통해 보답해야겠다는 해결책까지 각오하였고 실천했다. 학기 중에는 일상적 업무에 매진하고 제안 또는 개선과도 같이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한 업무들은 주로 방학을 이용하여 야근 그리고 필요하면 주말 근무를 하면서 보충해 나갔다. 학기 중 신세졌던 동료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방학기간만큼은 더욱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며 또다시 다음 학기를 준비하곤 했다. 그렇게 스스로 정해놓은 약속들을 지켜나가서 두세 시간 수면에 철저한 예습 복습이라는 전설 같은 경험담을 말할 수는 없지만, 목표들에 대한 뿌듯한 결실과 함께 장학금까지 받으며 공부하는 의외의 행운도 따라 주었다.   스스로가 하는 성실함의 인정이란 그 누구의 칭찬보다 기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성적과 장학금이 아니라 잘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하며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학업 자세는 남들이 하루일과 정리할 시간에 학교로 향해야 하는 나의 몸과 마음을 더 힘들게 한다는 교훈이다. 되는대로 임하는 것이 더 힘들다. 4학년 개강을 앞둔 지금, 최고는 아니었으나 최선을 다해온 대학생활을 해보니 배움이란 평생 그리고 동기 없이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 터득했고 이제 더 이상 억지스러운 목표 따위도 필요하지 않다. 그만큼 많은 것을 얻었고 얻어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배 32 우수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남정   움에 있어 이유가 어디 있으며 목표와 목적은 무슨 소용이고 종착역 또한 어디 있겠는가. 하루하루의 “깨달음”이 주는 행복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갈망하는 최고의 경지라는 뜻을 공감한 이후로는 공부는 무언가를 바라거나 기다림 없이도 무모하지 않을 최고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순수한 표현으로 수업을 받거나 공부를 하며 알아가는 그 순간의 기쁨이 말할 수 없이 좋다. 제대로 적응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찾은 후에는 회사와 개인생활에도 많은 활력이 되었다. 탄탄하게 조여진 하루 일과 덕분에 시간에 대한 소중함으로 새로운 24시간을 알게 되었고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라도 있는 날이면 한동안은 마음이 상한 채로 있다가 시간이 지나야 아물곤 했으나, 바쁘고 생동감 있게 살아가는 이후부터는 회사 문을 나가는 순간 어느새 잊어버리게 된다. 지구 회전이 멈춰버리는 것 말고는 그리 대단한 일들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배움의 힐링이다. 이렇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도 같이 평범한 길이 아니란 것을 받아들여 그만큼 힘차게 올라 나의 위기를 넘기면서 일과 학업생활의 병행에도 완전한 정착을 하게 되었다. 4. 학우들 서로a 인e 에너자이저   나이 들어 공부하면 잘 되지 않는다, 체력이 따라 주지 못한다, 이해력이 부족하다,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불편할 것이다…G모두 거짓말이다. 나의 노력이 부족한 탓일 뿐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학업이 힘들다고 느껴 본 적이 한순간도 없었다. 세상 어느 실적보다 정확하게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체력 또한 의지만 확고하면 오히려 아기 같은 젊은 친구들보다 지칠 줄 모르는 엄마 근성 기운이 발동된다. 갖가지 인생 경험들을 통해 터득한 이치들이 토대가 되어 이해력 역시 뒤지지 않기 때문에 늦은 나이에 임하는 학업은 오히려 유리한 여건이 되기도 했다. 20여 년 전후의 나이차가 나더라도 계급과 서열도 필요 없이 동등한 입장인 학우라는 그룹에서는 그 특유의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전혀 불편함이 없고 예쁘기만 한 친구들과 함께하고 있어 즐겁기만 하다. 특히 “언니_”라며 불러 주는 어린 학우들과 함께 하는 것 자체로도 그만한 비타민이 없는 듯하다. 한 어린 동기의 “학교생활 열심히 하셔서 20 3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대들의 우상이에요_”라는 칭찬의 말을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기분 좋은 과찬의 인사라 할 지라도 나의 성실한 모습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행복했으며 더욱 본보기가 되는 학우가 되려는 다짐과 동시에 나 또한 다른 동기들을 통해 내가 뿜어내는 몇 배의 많은 에너지를 받곤 했다. 새벽밥 지어 놓고 출근하는 학우의 부지런함, 수험생을 둔 엄마지만 공부는 각자 하는  것이라며 본인 학업에 열중하는 학우의 현명함, 수업시간에 걸려오는 어린 딸의 보채는 전화를 마음 아프지만 외면하는 학우의 강인함 등에 놀랐다. 당연히 모두가 직장생활까지 병행하고 있으니 아직 미혼인 나는 이런 학우들 곁에선 피곤하다는 둥 바쁘다는 둥의 투정이 사치스럽게 여겨졌고 직장과 육아 거기에 학업 열정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 나는 도저히 게으를 수 없었다. 나의 글을 쓰고 있는데 왜 남의 대목에서 울컥하는지 모르겠다. 육아와 살림에 직장까지 거뜬한 원더우먼 같은 학우들은 대부분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상급자 층에 속하니 눈치를 봐야 할 대상자가 없거나 소수겠지만 사회 초년생일수록 층층 시야에서 학업을 이어나가는 어려움은 또 다를 것이다. 말은 안하지만 왠지 무거운 어깨가 느껴지는 어린 학우들의 뒷모습을 보는 날에는 나 역시 똑같은 길을 걸어 여기 있기에 너무나 안쓰러워 쓰다듬고 안아 주고 다 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짐작 가도록 슬픈 눈빛이 영역 한데도 그 어떤 누구도 낮에 있었던 회사에서의 고충이나 상사의 험담을 하는 일이 없이 수업에 임하는 모습에서 어른 같은 의연함을 배웠다. 기특하다. 재직자 전형의 여자대학교에서 만나 서로 다른 듯 비슷한 환경 속의 어려움들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서로서로가 세대를 뛰어넘어 힘이 되어 주는 순간이었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하였던가.”G“여자는 약하나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 학우들은 강하다.”로 바꾸려 한다. 5. 실용학문의 절정   실무와 바로 직결되는 수업들을 들으며 특히 전공과목인 세법과 회계 관련 과목들 34 우수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남정  을 통해서는 그동안 내가 회사에서 잘못 처리했던 일들이 속속 드러났고 출근하자마자 확인부터 해가며 바로잡아 가는 경우도 있어 실시간 적용이 가능했다. 회사 운영상 필요한 상법은 회사라는 주체의 법적 권리와 의무에 대하여 습득하니 든든한 정보가 되었고, 당시 이제 막 인사평가 제도를 도입한 시점에서의 경영학과 인적자원관리는 사람의 중요성을 깨우치며 제도 수행에 임해야 하는 나의 사고 자체가 달라졌다. 그  밖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 무엇 하나 놓칠 수 없이 꼭 필요한 교육들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야말로 오늘 배워 내일 활용하는 광범위 실전교육을 받으며 그 효과가 발휘되었고 자신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업 도중 실무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머릿속에 잘 붙잡고 있다가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인 그 다음날 부리나케 팀원들에게 최대한의 전달력을 살려 설명하며 공유했다.   혼자만 알기 아까운 지식과 정보들을 이렇게 전파하여 회사에도 도움이 되고 팀원들의 개념을 바로잡아 주면서 나의 가치도 업그레이드되는 보람이 느껴졌다. 함께 나누고 전수하고 싶었다. 원가 분석 기법을 응용해 요소별로 분리하여 분석하자는 제안서를 제출했을 때 “그렇지!”라며 바로 프로그램 설계하라는 상사의 만족을 보았을 때는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진리에 한몫한 것 같아 뿌듯했다. 우리 학과와 같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할 것 없 이 쏟아져 나오는 직무교육에 비하면 실용학문을 연마할 수 있도록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 기업 문화 탓에 상사의 눈치를 보며 퇴근도 못하고 괜한 자리를 지키며 시간만 낭비할 것이 아니라, 공부하겠다는 직원들이 마음 편히 학교로 향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이 순간도 공부하고 싶은 의지는 굴뚝같지만 회사 사정을 살피고 행여나 눈 밖에 날까 노심초사하며 망설이는 직장인들이 수없이 많다. 사람이 미래라면서 인재가 가장 큰 자산이라면서 막상 공부하겠다는 자에게는 기술연구에 투자하는 백분의 일만큼의 배려에도 인색한 사회현실이 안타깝다. 기술 관련 인증을 득한 기업은 각종 정부지원과 입찰 등에 가점을 얻을 수 있어 거의 모든 회사들이 앞다퉈 구비한다. 기술도 인재가 창출하므로 인재 육성을 위한 학업지원이 활발한 기업에 대한 장려책도 활성 된다면 이토록 좋은 교육 혜택을 다수가 함께 누리게 되고 그에 대한 효과는 회사, 더 넓게는  3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이 사회에게로 돌아갈 것이 분명할 테니 제도적인 지원으로 기업의 인식을 바꿔놓는 계기를 마련해 주길 하는 바람이다. 6. 믿음 그리고 꿈   어느 날 대표이사께서 손잡이 부분의 입구를 꼭 접어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종이가방을 들고 내 자리로 오셨다. 어색하신 듯 큰기침 두 번을 하신 후 종이가방을 건네며 하시는 말씀 “특허 받은 독서대래. 고개 아플 텐데 이거 받치고 해.”라며 홀연히 가버리신다. 직장인들 모두의 바람인 성과 인센티브를 받았을 때보다 감사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일부러 마련해 준비해 주신 듯한데 어찌 그런 감동의 아이템을 찾으셨는지, 그 세심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독려해 주시는 표현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사했다. 일 좀 시키려 보면 등교할 시간이고 업무보다 중요하다는 회식에는 방학 때나 돼야 나타나는데다 일이 생겨 이런 날은 좀 남아줬으면 하지만, 결석은 안 된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지니 불편하고 거슬릴 만도 할 텐데 내색 한번 하지 않으신다. 수업이 없는 유일한 수요일에는 평소 나를 받쳐 주고 고생을 대신해 주는 팀원들에게 내가 마무리할 테니 일찍 퇴근하라며 등을 떠밀면 오히려 일주일 중 하루 쉬는데 나보고 빨리 들어가란다. 내가 학교로 나서야 하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있으면 알람이나 되어 주듯 늦겠다며 챙겨 주고, 수업 도중인 늦은 시간 나와 연락할 일들이 생겨도 전화는 고사하고 문자 한 통 하지 않으며 걱정 없도록 나를 생각해준다.   배려를 넘어 애정과 사랑이다. 공동체인 직장이란 사회에서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더 많은 학우들이 학교로 향할 수 있으려면 우리들 자신의 자세도 더욱더 다져볼 필요가 있다. 협상하였더라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선을 긋지 말고 이상으로 일할 것, 피곤에 전 모습으로 무기력을 전염시키지 말 것, 회사에선 학업을 우선하지 말 것, 그리고 회사보다 동료나 후배의 도움에 더 감사할 줄 안다면 앞으로 특성화고 재직자 전형의 대학으로 향하고 싶은 이들에게 초석과도 같은 역할이 되어 주어 많은 회사들이 믿고 학교 가는 길을 도울 것이다. 나의 회사와 동료가 나를 믿어 주는 지금 36 우수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남정  처럼 말이다. 여성의 신분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감수할 것들에 대한 고달픔에 젖어 일을 그만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40대 정도면 덤으로 하는 직장생활이겠거니 하며 한가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학업과정을 통해 배울 것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란 것과 내가 사는 세상 중 지금이 가장 젊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꾸준히 공부해서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점까지 진출하여 일하며 자신의 가치를 느끼는 행복은 물론, 후배들에게 나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소양까지 유감없이 물려주며 보람을 찾는 것이 꿈이다.   0&$% 국가 중 여성 임원 비율이 501 1위가 되는 그날…G재직자 전형의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와 함께 나와 같은 여성의 노력도 있었음을 기억해 주길 기대한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치열하고 열심히 사는 요즈음, 이런 날들이 헛되지 않도록 더 가치 있는 여성으로 살기 위한 고민을 계속할 것이다.  2015년 2월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3학년 김 남 정 3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2별01전5형년입학생체험수기집또 다른 나를찾는 행복39 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  장려상꿈꾸는 나는 멈추지 않는다김보희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41 나의 두 번째 대학생활김태연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53 이내은 혜인 중생앙 대1학막교,  지현식재경영 진학부행 중 64 농부의 진심황경동 경북대학교 농산업학과 73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나면 따뜻한 봄이 온다정안순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80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92 송예진 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김남정 40우수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장려상 꿈꾸는 나는 멈추지 않는다 김 보 희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1. 취업과 진학이란 두 i림길에 서다   특성화고에 진학하면 누구나 진학과 취업이라는 두 가지 기로에 선다. 나 역시 그랬다. 취업을 목표로 특성화고에 진학을 했지만 나의 학창시절엔 특성화고에서 대학진학의 바람이 불고 있었고, 실제로 대학에서 특성화고 전형도 많이 생겨나는 추세였다. 취업을 목표로 진학했지만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학생들이 사회 흐름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남들 다 가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진학반을 따로 만들어 야간자율학습까지 진행했었다. 이런 내가 진학에서 취업으로 바꾼 계 기는 아마 고3 수시모집 기간이었던 것 같다. 성적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4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도 내가 합격할 가능성이 높은 학과, 즉 미달될 것 같은 학과를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 이 너무 한심해보였다. 이렇게 대학에 들어가서 내가 얻는 게 무엇일지 고민을 해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그냥 남들에게 “나 대학 갔어요.”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나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그냥 남들이 가니까 나도 무작정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두려웠다. 내가 대학을 들어간다고 해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대학등록금만 허비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에 결국 취업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다. 성적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높은 내신 성적이어서 대학 진학을 기대하셨던 부모님께 말씀 드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오히려 내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셨다. 나는 학교 추천으로 중견기업에 입사지원하게 되었으며 서류합격과 동시에 면접통보를 받았다. 내 생애의 첫 면접이었다. 많이 떨렸지만 최선을 다해 본 면접은 합격이란 선물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나는 19살에 취업의 길로 당당히 뛰어들었다.  2. 방황한다고 해서 모두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특히 회사의 80%이상 남자 사원으로 이루어진 건설회사에서 적응한다는 것은 여고를 졸업한 나에게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팀 안에서의 나이가 기본 10살 이상은 차이가 났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대화를 하고 싶어도 어떤 주제를 꺼내야할지 막막했고, 내가 먼저 다가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입사하고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점심식사였다. 난 아직 공깃밥이 3/2 나 남아있는데 팀원들은 뜨거운 설렁탕에 공깃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시간이  10분이 채 안 걸렸다. 어린 나이에 작지만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내가 빨리 먹어도  밥 먹는 속도를 맞추는 것은 너무 힘들었고, 속도 맞추려다 체한 적도 많았다. 이런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입사 4개월 만의 일이다. 팀원들에게 먼저 내 일상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유도할 줄 알게 되었고 팀의 막내이자 비타민 역할로 자리 잡았으며,  42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보희  햄버거, 피자, 파스타를 주로 먹었던 식성 또한 많이 바뀌었다. 내가 먼저 밥을 다 먹고 팀원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도 생겼으며, 회식 다음날에는 “오늘 점심은 선지해장국을 먹자.”고 이야기하거나, 고기 먹고 난 후 자연스럽게 이쑤시개를 집는 내가 되어있었다. 내 나이 만 19살이었다. 이런 내 모습에 여자 친구들은 아저씨가 다 되었다고 놀렸지만 오히려 남자친구들이 털털하고 좋다며, 의도치 않게 주위에 남자친구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회사 업무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배우고 있었다. 처음 1년 동안은 직장인이란 타이틀 속에서 사회생활 적응과 회사 업무를 익히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회사 생활에 여유가 생긴 이후부터는 째깍째깍 시계추처럼,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똑같은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내 꿈은 뭐지 ”G나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이색 직업으로 플로리스트를 알게 되었다. 플로리스트란 플라워와 아티스트의 합성어이며, 쉽게는 흔히 알고 있는 꽃집 주인과 같다.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폭풍 검색으로 플로리스트 전문가 양성반을 등록하여 6개월간 수업을 들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우아하게 꽃을 다듬고 꽃다발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그야말로 중노동이었다. 급기야는 내가 좋아하는 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플로리스트 직업을 직접 경험해보니 예쁘고 아름다운 꽃들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컸기 때문에 더 많이 실망하게 되었고, 결국 나의 적성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는 실패를 경험하였다. 문득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직업으로 하는 일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있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 세상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을 하다 보니 좋아하게 된 것인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서 하게 된 것인지…G그 사람들에게 찾아가 물어보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고 머리가 복잡할 때는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머리도 식히고, 객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회사 연휴 때마다  4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해외여행 또는 국내여행을 하면 나는 절대 호텔에서 숙박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민박,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으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진로 결정을 앞두고 휴학하고 배낭여행을 온 친구, 2천만 원으로 1년 동안 세계 일주에 도전하고 있던 남매,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40대 아저씨 등…G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 혼자만 고민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민의 해답을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용기를 갖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번 실패했다고 무기력해진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나는 그동안 관심만 두고 실행하지 못했던 해외봉사활동도 다녀오고, 창업도 준비해보고, 내일로(SBJM-SP)도 떠나고, 자기계발을 위해 아침에 영어회화 학원도 다니고, 요가도 배우면서 내가 경험해보고 싶은 것들은 다 하며 지냈다. 나의 길을 찾기 전까지 말이다.    나름대로 나는 남들보다 알찬 일상생활을 보낸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불안했다. 경기침제가 가속화되고 평생직장이 없어지는 현실에서, 지금의 내 위치에서 회사에 대한 애착심과 충성심만으로 미래를 장밋빛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내가 맡았던 사무업무는 아무리 내가 일을 잘한다고 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업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불안했었다. 그리고 나 자신 역시 지금의 자리로는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보다는 더 전문적인 일, 내 일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질 수 있는 일, 리더의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도 올라가고 싶었다.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 흐름을 익히고 나서 회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영업팀, 기획팀, 총무팀, 홍보팀 등 팀마다 주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모든 팀이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서 회계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기업과 회계는 실과 바늘 같은 존재로서 어떤 직종이든, 업무든 모든 일에는 회계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맡은 업무들이 회계와 자꾸만 부딪히다보니 회계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어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자연스레 회계에 대해 관심 갖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느끼지 못한 회계의 중요성과 매력을 알게 되어,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44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보희    이때부터 학교를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야간대학교를 검색하다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을 운영하는 학교가 많았으며 학과들도 다양하였다. 다행히도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회계학과도 있었다.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으로는 유일한 여자대학인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에서 2012년도 입학생을 수시 모집 중이었다. 신설되는 학과라서 학교생활이나 수업 진행방법 등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서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싶다는 의사를 어렵게 팀장님께 말씀드렸다. 다행히도 팀장님께서 진학을 지지해 주셨고, 회사 측에서도 업무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해 승인 지시가 떨어졌다. 나는 바로 입학 원서를 넣었다. 인생에는 미처 다 가볼 수 없는 여러 갈림길이 있다고 한다. 나는 그 갈림길 사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행로 변경을 많이 하거나 이탈하기도 하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4년 동안 갈피를 못 잡는 방황으로 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한없이 놀아도 보고, 이것저것 배운다고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지만 후회는 없다. 나에게 그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꿈을 찾아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3. 24살 새내기 여대생의 성장   대망의 오리엔테이션날, 처음으로 퇴근 후 집이 아닌 학교로 가는 길이 너무나 낯설고 어색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가볍고 설레었다. 앞으로 내가 4년 동안 다닐 학교생활, 같이 수업을 듣게 될 친구들, 그리고 교수님 등 그냥 모든 것들이 다 기대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입학하고 나서도 처음 개설된 학과이고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조금은 걱정을 했었다. ‘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폐과되는 것은 아닌지 ’, ‘수업은 제대로 진행될까 ’라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05때 세무회계학과의 체계적인 교육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교수님들을 뵙고 나니 불안한 마음, 걱정했던 마음은 싹_ 가시고, 오히려 동덕여자대학교에 입학한 것을  4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너무 잘했다고 생각하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수업을 통해 회계 전문성을 쌓아갈 수 있도록 재무회계, 세무회계, 회계실무 및 경영과목으로 나뉘어진 커리큘럼과 실무상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었던 점이다. 또한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고 꾸준히 복습할 수 있도록 주 4일로 진행되는 평일 야간수업과 강좌의 약 60%를 전임교수님 수업으로 진행하는 부분도 그러했었다. 또한 회사 업무로 수업에 늦는 학생을 위한 동영상 강의 개발과 2교시에 전공수업을 배치함으로써 학생들이 전공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이렇게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위하여 작은 것 하나라도 세심하게 신경 써 주시는 마음과 수업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05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배우고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졸업하자고 나에게 굳게 다짐하였다.    그러나 다짐도 잠시…G입학 후 일주일째 되던 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일과 학업을 주 4일 동안 병행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수업시간에 졸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잠자는 시간이 적어지다 보니 출근할 때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고되었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평일에 잠을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지만, 어디 가서 난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집도 서울이고 직장과 학교만 병행하면 되었지만, 인천이나 수원에서 학교까지 대중교통으로 2시간이 넘는 등하교를 하는 동기도 있었고, 회사, 집안일, 육아까지 하면서 학교 다니는 동기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힘든 것은 애교 수준이었다. 오히려 그런 힘든 상황임에도 수업 한번을 안 빠지고 열심히 듣는 동기의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이런 동기들 때문에 지쳐도 학교를 나갈 수밖에 없는 수업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나는 한 달 동안은 회사에서 일을 했는지,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는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흘려보냈다. 이렇게 힘들어했던 내가, 신기하게 몸이 일과 학업이라는 생활패턴에 적응하여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피곤함도 무뎌져 학업이 생활화 되어 있었다. 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회사보다 학교에 가는 게 좋았고 동기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행복했다. 여유를 갖고 난 뒤에는 수업에서 얻는 배움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46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보희  4. 똑! 소리 나는 대학생활   세무회계학과 1기, 12학번 24살 신입생인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학교를 늦게 들어갔지만 배우고 싶은 전공이어서 그런지 공부에 대한 애정이 컸다. 그래서 초, 중, 고 학창시절보다 더 열심히 수업 듣고 공부했다. 시험 기간 동안 공부하는 내 모습을 보신 부모님께서는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들어갔겠다!”라고 하실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나는 처음으로 수업이 재미있다고 느꼈다. 강의를 들으면서 학창시절에 접해 보지 못한 이해중심 수업과 학생, 교수님과의 소통으로 이루어진 강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과목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공수업에서 회사업무와 연결되어있는 부분이 있을 때는 수업내용을 스펀지처럼 쭉쭉 흡수하게 되고, 그 반대로 회사에서는 실무를 하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게 될 때면 내 스스로 어깨가 턱까지 올라가 혼자 자화자찬하기도 한다. 이건 정말 선취업 후진학을 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내가 느낌 아니깐_.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결과 성적장학금까지 받게 되었다. 직장인이라고 해도 대학등록금이 버거울 때가 있는데 장학금제도가 잘 되어있는 학교 덕분에 경력장학금 외에도 성적장학금까지 받으니 오히려  일반전형 학생들보다 더 적은 등록금으로 유능하신 동덕여대 교수님들의 수업을 들으 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나는 사회에서는 4년 차 직장인이지만 학교 안에서는 풋풋한 새내기 여대생이다. 회사가 휴가일 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조별과제로 모였다가 수다로 시간 보내기도 하고, 개강파티·G축제도 즐기고 24살에 처음으로 총학생회 투표도 해보았다. 이런 내가 벌써 3학년이 되었으며 세무회계학과 학생회 부회장에 당선되어 학과를 이끌어가고 있다. 많은 학생회 일을 하면서도 해외산업시찰과 멘토링이 가장 보람차고 애착이 간다.  4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5. 해외산업시찰 상하이로 떠나다   올해는 학과에서 처음으로 해외산업시찰을 가게 되었다. 처음 진행되는 행사이다 보니 산업시찰 장소, 날짜, 프로그램, 안전문제 등 많은 부분을 세심하게 신경 써야 했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았다. 난관에 부딪힐 때도 많았지만 그럴수록 학생회에서는 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고 마침내 우린 상하이로 산업시찰을 가게 되었다. 우리가 산업시찰했던 상하이 선물거래소는 주로 비철금속류, 에너지 상품, 탄소세를 주로 거래하고 있으며 규모 및 거래량도 세계 5대 선물거래소 안에 속해 있었다. 선물거래소에서 진행하는 업무와 기본지식은 증권투자론 강의시간에 배웠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실제 일하고 있는 모습과 박물관 견학을 통해 옛날 기록들을  상세히 볼 수 있어 너무 신기했었다. 상하이 증권거래소 방문으로 우리나라 선물거래소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었다. 너무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나라 선물거래소의 본사가 서울이 아닌 부산에 있다는 것을 이번 계기로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해외산업시찰로 인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상하이의 경제와 현지에 자리 잡은 한국 기업의 자부심 그리고 중국 금융역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6. 교수님과 함께하는 멘토링    이 행사는 1, 2, 3학년을 골고루 섞어 소수의 인원으로 조를 만든 뒤, 각 조에서 교수님 한 분씩을 초청하여 함께 멘토링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는 학교에서 수업만 듣다보니 같은 학년이 아니고서는 다른 학년들과 만날 기회가 적은 게 사실이다. 또한 학생들이 수업시간 외에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지도교수님과 개인 상담을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렵다. 이렇게 교수님과 학생들 간의 교류의 기회를 확대하고 선후배 간의 상호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진행된 ‘교수님과 함께하는 멘토링’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48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보희     멘토링을 통해 자기만의 학업 노하우나 자기관리에 대한 팁(UJQ)을 서로 공유하고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의 어려움이나 힘든 점도 이야기하며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2조 멘티였던 이은철  교수님께서는 현재 학생들이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신 후 미래 준비에 대한 주옥같은 제언을 해 주셨다. 이번 멘토링은 선배는 후배를, 후배는 선배를 서로가 어려워했던 사이를 극복하게 해 주었던 연결고리가 아니었나 싶다. 어색한 선후배 사이를 극복하게 해 준 멘토링, 앞으로도 매년 멘토링을 진행하여 세무회계학과 선배, 후배 간의 돈독한 우애를 이어가고 많은 지식과 정보교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다음 학생회에 주어진 숙제인 것 같다. 이렇게 세무회계학과는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내가 세무회계학과 1기라서 그런지 학과에 대한 애착이 크고, 학교생활에 더 열심히 참여했다. 학생회를 하게 된 것은 신의 한수였고 학교생활은 사회생활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처음 학생회를 일을 할 때 업무 배분을 해야 하는데 사회에서는 늘 막내였기 때문에 업무지시를 한다는 것이 어색했고,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하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하지만 혼자서 일을 처리하다 보니 나 스스로 벅차기 시작했고 생활에서 업무 과부하가 걸린 느낌이었다. 이런 나에게 도와주겠다며 먼저 손 내밀어준 학생회 임원들, 아마 이때부터 학생회가 체계적으로 자리 잡고 원활하게 운영된 것 같다. 리더십 부족과 고집 있는 나의 단점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였지만, 이 단점들을 학생회를 하면서 많이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상대방에게 나의 신뢰를 갖게  4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상대방을 신뢰하는 마음을 가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직접 깨달은 값진 경험이 되었다.    7.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의 재학생 여러분_, 함께해요   대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교내의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학생들의 연합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주간에 활동하는 대학연합동아리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전국에 있는 재직자 특별전형이 있는 학교가 참여하여 나이대별로 정모 모임 만든다거나, 자격증 취득 모임, 취미생활이 같은 학생끼리 모임을 만들어 주말이나 방학 기간 중에 활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대학별로 축제에 초대하여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학업에 대한 정보도 교류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카페 하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나이지만 한 해가 지날수록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럴 때 같은 뜻으로 배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학생들이 서로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그런 모임이 되어 더 알찬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고,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좋은 본보기가 되어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이 활성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8. 제2의 삶을 산다는 것   내가 경험한 결과 ‘선취업 후진학’은 내가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생의 커다란 발판이 되어 주었다. 가장 먼저 내가 원했던 회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게 되었다. 업무상 필요하기 때문에 배우기는 했지만 논리적 근거를 체계적으로 배우기50보다는 단편적이고 습관적으로 익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수업을 통해 재무회계,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보희  관리회계 및 세무회계에 관한 기초 이론과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이제는 실무상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폭 넓은 교양을 쌓을 수 있었다. 교양으로 들었던 인간심리학 중에서도 지구가 멸망한다는 말을 믿고 자살한 종교집단 사건, 대구지하철참사 등과 같은 군중 심리와 관련된 사회심리학을 가장 흥미 있게 배웠고, 어렵고 힘들었던 철학은 다양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수업이었다. 그리고 나는 남들보단 특별한 내 동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 동기들은 20대, 30대, 40대의 연령대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차이나서 서로 같이 어울릴 수 있을까 ’G하는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같은 학생 신분으로 걸어가는 길이 같기에 서로 믿고, 의지하다보니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같이 공부하는 학교 동기이지만 어떨 때는 직장 선배로서 업무적으로 도움을 받고, 연애·G결혼 관련한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27살에 증권회사 차장, 무역회사 부장, 회계사 사무실 실장, 법무사, *5회사, 같은 다양한 직급과 직업을 가진 친구를 둔 나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다. 이게 선취업 후진학만의 장점이자 혜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렇게 특별하고 귀한 동기들과 3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 하다 보니 이제는 내게 너무 소중 존재가 되었다. 인맥이 재산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공부의 열정 하나로 맺은 내 사람들,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재산인 것이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몸은 힘들었지만 내 행복지수는 2배 커졌다. 가끔 주위에서 재직자 전형으로 대학 갔다고 하면 주위에서 “졸업장 받으려고 대학 갔지 ”라는 말을 듣곤 한다. 이때가 나는 가장 속상하다. 우리 학교는 수업시간만 주/야로 나뉜 것뿐이지 평일 수업의 교과목의 커리큘럼과 우리 학교 교수님들의 수업은 퀼리티가 더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교수님들께서 세무회계학과에 강의하러 와서 학생들의 열정에 오히려 에너지를 얻고 가신다는 말씀도 하시고, 주간 학생들과 시험문제를 비슷하게 내면 주간보다 평균 성적이 높다며 잘했다고 칭찬도 해 주신다. 세무회계학과가 신설됨과 동시에 모녀 장학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딸은 주간, 엄마는 우리 과에 함께 입학한 모범적인 사례도 있다.  5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우리 세무회계학과의 역사는 짧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2015년 올해가 1, 2, 3, 4학년이 함께 다니는 완전체를 갖추게 된다. 4학년이 된 나는 이번 학년을 마지막으로 대학생활을 마치게 된다. 세무회계학과 1기 예비 졸업생으로서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 꿈을 위해 느리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천해 나갈 것이다.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공부를 늦게 시작한다고 겁낼 필요도 창피해 할 필요도 없다. 누구에 의해 보여 주는 공부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공부라면 망설임 없이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분명히 4년이란 귀중한 시간이 헛되지 않고 내가 흘린 땀과 노력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날 것이다. 52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보희  장려상 나의  두 번째 대학생활 김 태 연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여자 나이 서른둘, 결혼이나 이직 외에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이 사회의 ‘평범하다’라는 시선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에게 솔직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대학교 1학년 학생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띠동갑 나이의 아이들과 같은 학생증을 갖기로 말이다.  5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1. 회사 생활과 나를 찾기 위한 고민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학생의 대학입학을 목표로 수업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나는 ‘대학교’보다는 ‘회사’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들었으며, 어느덧 3학년 때는 ‘회사’가 더 익숙해졌고 취업이 당연했다. ‘동구여자상업고등학교’, 어린 나는 빨리 사회에 나가기 위해 선택한 이 학교가 앞으로의 나를 어떻게 바꿀지 미처 깊게 생각하지 못하였다. 집과 가깝지 않았던 탓에 한 시간씩 걸리는 등굣길도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고 낯선 과목명에 당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생활 중 했던 방송반 활동은 선, 후배 그리고 동기들과 서로 격려하고 도와가며 나는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 방송반은 졸업한 선배언니들과의 교류도 활발하여 나는 자연스레 그녀들의 졸업 후 생활을 접할 수 있었고 그런 간접경험을 통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교과목은 물론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사회에서 놀라고 상처받지 않도록 직장예절과 생활상식까지 가르쳤고 취업 역시 어렵지 않았다. 학교에서 소개해 준 기업에 면접을 보고 취업하여 그 당시 나는 큰 거부감 없이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지금도 처음 출근하던 날, 처음 월급을 받았던 그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 때의 나는 생각했다. 지금처럼 회사 생활 열심히 하며 하나하나 더 배우고 차곡차곡 돈도 모으면, 서른 즈음의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 거라고…G하지만 내 생각과 다짐은 몇 년 버티지 못하였다. 1년, 2년…G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같은 사무실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나는 내가 멈춰 있는 것만 같았다. 작년과 올해의 내 모습이 같다면 올해와 내년의 내 모습도 같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의 나와 10년 후의 내 모습이 같을 것만 같아 겁도 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생각이 많아진 나는 빨리 사회에 나가기 위해 내 적성이나 재능은 무시한 채 회사 안에 나를 맞춰 넣어두었다는 생각에 갑갑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만 할 뿐 정작 내가 나를 위해 하는 일들은 없었다. 그 당시 회사 내 같은 부서에는 동문선배언니가 있었는데 퇴근한 뒤에는 대학입시를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내 주변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만 보느라 주변을 보지 못했었 54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태연  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다람쥐처럼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이때부터 나는 고민이 생겼을 때 나에게 얘기한다. ‘내 시선을 조금 돌리고, 나 자신에게 솔직하자’라고. 생각의 전환은 한 곳에만 시선을 빼앗겨 답이 없을 것만 같았던 생각에 다른 답도 있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해 주었다. 내가 나를 모르면 추후 내가 한 결정에 대한 후회는 당연하며, 나의 지난 결정을 탓하며 자책하게 된다. 하지만 나에게 솔직해지고부터는 내가 한 결정에 그 후회도 내 몫이라는 생각과 그래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찾게 되었다.  2. 좋았지만 불안했던 첫 번째 대학생활과 재취업   무엇이든 잃은 것이 있다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선택한 길은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전문대학에 입학하였다. 내  주위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한 것은 전공이었다. 평소 만들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선택한 것은 문화예술학과이다. 그것도 한번도 배워본 적 없고 그렇다고 일한 회사와도 전혀 상관없는 인테리어세라믹디자인전공이다. 내가 배우고 싶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나에게 솔직해지고 얻은 답이었다. 학교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예술사를 배웠으며 흙으로 기물을 만들고 조형을 하는 시간이 많았다. 회사를 다니다가 다시 학생이 된다는 것은 마냥 즐겁고 신나기만 했었다. 아침에 출근이 아닌 등교를 하고, 업무가 아닌 수업을 하고, 퇴근이 아닌 하교를 하는 생활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생각과 온종일 나를 위한 시간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 게 1년을 보내고 나니 나는 학과 학회장이 되어있었고 엠티, 체육대회, 축제 등 여러 학교행사도 경험하며 어느덧 졸업전시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곧 ‘졸업’이라는 현실이 다시 내 앞에 마주 선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를 다니면서 모든 것이 좋았지만 단 한 가지 불만족은 ‘돈’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모아 놓은 돈은 정해져 있고, 학기가 지나 갈수록 지출되는 돈은 늘어갔다. 회사를 다닐 때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잔고가 늘어나진 않고 줄어들기만 하였다. 소득이 있다가 없어진다는 것은 불안감이 더 커진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불안감이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을 그 무렵, 한참 실습 5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실에서 작업하고 있던 내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누군가의 결혼식은 주인공에게는 인생에 단 하루 정말 중요하고 의미 있는 날이지만 하객 중 한 명에게는 그저 지인들의 경조사 중 하루일 것이다. 나에게는 지인의 결혼식이 중요한 날이 된 적이 있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한통은 예전에 같이 일했던 회사언니의 전화였다. 결혼소식을 전하려 연락한 것인데 너무 오랜만에 통화여서 무척 반가웠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부터 시시콜콜 서로 이야기하며 결혼식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 언니의 결혼식에서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 분들을 만났고 지금 뭐하고 있는지 언제 졸업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던 중 혹시 다시 회사에 입사할 의향은 없냐는 질문을 받았고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재무팀 직원의 퇴사로 결원이 생겨 여러 명 면접을 보았는데 적당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며 나라면 성격이나 일하는 성향도 잘 알고 있어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인의 결혼식에서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물론 재입사 직원이라 입사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같이 일할 실무자들의 신뢰와 추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두 번의 면접을 더 보았으며, 자발적 퇴사를 한 적이 있는 재입사 직원이라는 탓에 6개월 계약직 후 전환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퇴직금이나 연차, 승진기간의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후 나는 다시 등교가 아닌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로 5년 동안 출근하기 싫었던 적은 하루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회사가 있다는 게 좋았고, 꼬박꼬박 받는 급여가 있음이 좋았고, 같이 일할 동료들이 좋았기에 불만들은 그저 소소할 뿐이었다. 재입사 후 6개월이 지나자 그동안의 경력을 인정하여 주임으로 승진하였다. 즐겁게 일하던 중 나에게 위기이자 또 한번의 기회가 왔다. 같이 일하던 대리, 과장님이 같이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이고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이었기에 더 믿고 따랐었는데 나 혼자 회사에 덩그라니 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충격이었다. 새로 인력이 충원되기는 하였지만 안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고 그러던 중 나는 새로운 업무들을 맡게 되었다. 회사에서 점점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일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하다보니 나는 대리가 되어있었고 어느새 팀 내에 아랫사람도  56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태연  3명이 생겼으며, 내 나이 서른에 과장이 될 수 있었다. 회사생활은 내가 노력하고 일한 만큼 인정받는다는 성취감과 더불어 만족감까지 있어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처음에는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 일이 이렇게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는 게 무엇보다 큰 성과였다. 그러나 일하는 동안 회사에서 보고 느낀 학벌이나 전문지식에 대한 필요성은 점점 커졌다. 나는 실무로 업무를 익혀왔다. 스물여섯, 주임이던 내게 나이 많으셨던 과장님은 회사에서는 아무도 너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며 스스로 찾고 배우며 확인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면서 세법편람 보는 법을 알려 주셨다. 그 때 그 과장님은 말씀은 아무도 안 알려준다고 하셨지만 나에게 세세한 것 하나까지 많을 것을 알려 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문득문득 상황이 겹칠 때면 그 과장님이 해 주셨던 말씀들이 생각나고 일을 하다 막힐 때가 생기면 ‘과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G나에게 물으며 풀어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부족한 부분은 책을 찾아가며 배우고 익혔으며, 확인할 부분은 국세청에 물어가며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점점 내게 책임이 커질수록 내 스스로 전문지식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다닌 회사는 코스닥에 상장된 *5회사였고, 모회사가 나스닥에 상장된 외국계 기업이었다. 사내에는 해외파 직원들이 많았고 임원중에는 외국인도 있었다. 회의실에서는 물론 식사 시에도 영어와 중국어가 마구 내 앞을 날라 다녔다. 자연스럽게 학벌과 외국어는 직원채용 시 중요한 사항이었다. 내가 과장이 되었을 때 팀 내에는 이미 두 명의 과장이 있었다. 64-(1를 담당하는 *$1과장, ,-*34를 담당하는 $1과장. 그리고 자금과 세무를 담당하는 나.    나는 과장이 되고부터 지금까지와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시선이 조금 옮겨진 것이다. 그동안은 회사 내에 누구와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으며 내 일을 해왔었는데 내 옆에 다른 두 명의 과장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었고 여자 과장이 세 명이나 있지만 그 위의 팀장은 남자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옆의 두 과장들은 30대 후반 여성이며 그동안 스펙을 쌓기 위해 유학을 하고 자격증 취득을 위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였을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얼마나 저들만큼 노력했던 것일까  과연 이 조직은 여자 재무팀장을 받아들일 것인가  내가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이런저런 현실적인 고민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 5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은 스무 살 전에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나는 서른에도 여전히 내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이래서 자기계발은 평생 하는 것이라고 하나 보다.  3. 자기계발을 위해 다시 찾은 두 번째 대학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보았다. 그 때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서 생각이 났던 것일까  그 시절이 그리웠던 것일까  홈페이지에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게시판을 보게 되었다. 게시판에는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에 대한 홍보글이 있었고 나는 회사라는 현실과 학업이라는 자기계발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었다. 이미 사회생활을 하다가 전문대학을 다닌 적도 있어 그 어려움을 알기에 더 많이 생각했고 회사생활을 하며 대학졸업까지의 학벌이 당연시 되고 관련학과의 전문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았기에 다시 생각하고 생각했다.    나는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에 대해 알아보며 여러 학교와 학과를 비교해 보고 딱 한 곳에 입시원서를 제출했다. 기준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G단순히 대학 졸업장을 따러 4년의 시간과 3천만 원 정도의 학비를 투자하는 것이 아닌 이상 나는 내가 배우는 것이 중요했고 성적이나 자격에 맞춰 학교를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동덕여자대학교의 세무회계학과에 지원하게 되었다. 물론 다들 하나같이 말한다. 왜 여대를 가려하는 것이냐  회사에서도 매일 보는 숫자를 학교에서도 보려고 하냐  실무와 이론은 달라 어려울 것이다 등등…G하지만 수업방식을 문의했을 때 제일 대학다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 동덕여대였다. 회사를 다니며 출근 전에 영어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야근도 잦았고 아침에 매일 한 시간씩 학원을 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토요일에 일주일 분 수업을 몰아서 하는 주말반 수업으로 옮겨 공부하기도 했었다. 그 때 알았다. 집중력의 차이, 그리고 토요일은 금요일 다음 날이었다는 것을…G토요일 수업의 반은 졸았던 것 같다. 수업시간이 길어져 집중력도 그만큼 떨어졌고 나는 다시 아침 수업으로 시간을 옮겼다. 그래서 주 3_4일 평일에 꾸준히 수업을 하는 동덕여대를 선택했다. 학교를 다니 58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태연   면서 가끔 보강을 해야 할 때가 생긴다. 시간이 잘 맞지 않아 토요일로 보강 일을 정하려고 하면 학생들은 오히려 수업이 없는 평일에 진행하기를 원했다. 나는 주말은 온전히 내 시간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꼭 참석하고 싶은 결혼식이나 경조사에 학교 때문에 빠지게 된다거나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16주 동안 꼼짝 못하고 일상생활에 묶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지금도 휴식이 필요할 때면 주말을 이용해 배낭을 메고 훌쩍 여행을 하곤 하는데 방학만 바라보고 참아야 한다면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또한 세무회계학과도 중요했다. 내가 하는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나에게 필요하고, 내가 원했던 내용들로 커리큘럼이 잘 짜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양과목마저도 지식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여자로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구성이라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다.   이렇게 진학하고 싶은 학교, 학과까지 정하고 나니 은근 대학생활이 기대가 되었고 면접도 안 봤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닌가…G혹시 모르니 다른 학교 원서도 하나 써둘까…G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때쯤 현실의 나는 제안을 하나 받게 된다. 회사 내 개발부서 중 한 곳에서 법인을 설립하려 하는데 재무를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다며 이제 시작하는 회사라 할 일은 많고 직위에 맞지 않은 일도 해야 할 수 있을 테지만 지금처럼 야근은 없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5업계특성 때문에 회사는 10시 출근, 저녁 7시 퇴근이라 퇴근 후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야근도 꽤 잦았기 때문에 야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은 학교를 다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처럼 들렸다. 그렇게 나는 안타깝지만 외국계 상장기업을 손에서 놓고 이제 막 시작하는 작은 회사로 이직했다. 학교를 다닐 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회사의 편의이다. 야근은 없을 거라지만 이직한 회사도 같은 업종이라 7시에 퇴근하는 회사였다. 나는 붙을지 떨어질지도 몰랐고 회사에서 싫어할 거라는 생각에 합격하고도 바로 회사에 얘기하지 못했다.  면접을 보고, 합격자 발표가 있었고, 등록을 하고 나는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 에 ‘나가라면 나가야지.’라는 마음으로 회사 상사분들께 학교에 대한 얘기를 했다. 예상치 못한 얘기에 적잖이 놀라신 듯했다. 추후에 들은 얘기지만 심각하게 할 얘기가  5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있다고 해서 회사를 그만 둔다고 얘기하는 줄 아셨다고 한다. 회사에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편의를 봐 주고 있다. 학교가 너무 멀어서 1시간 내에 이동할 수 없다는 점까지 감안하여 10시_19시 근무시간을 9시_17시 반으로 조절해 주었고 회식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에도 이해해 주었다. 시험기간에는 슬쩍 일찍 들어가라고도 해 주는 회사가 고맙기만 하다.    입시면접은 어떻게 준비해야하는 것인가  회사 면접이야 본 적이 있지만 입시면접은 어떤 질문이 나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저 솔직하게 내 소신껏 대답하려면 긴장하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긴장하지 않으려 애썼고 같이 대기 중이었던 지금의 내 동기들은 지금도 그 날 서로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면접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그동안 관련된 업무를 하였는데 회계를 정의한다면 뭐라고 생각하느냐 ”였다. 대답은 뭐라고 둘러댄 건지 다시 생각하면 쥐구멍이 필요하다. 하필 이 질문을 한 교수님을 제일 자주 볼 줄이야…G다행히 교수님은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나는 문득문득 학교를 처음 왔던 이 날이 생각난다.    나는 이렇게 학교 갈 준비를 하나하나 해가며 드디어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13학번이 되었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치루기 전까지 학교는 마냥 신나는 곳이었다.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종일 회사에서 일도 했고 회사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이 멀어 지칠 법도 한데 남들 퇴근하는 시간에 등교를 하는 이 등굣길조차 기분 좋았다. 우선, 내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또한, 사회에서는 쉽게 생기지 않는 친구라는 유대감은 나와 같이 힘겹게 하루를 보내고 강의실에서 만나는 서로에게 격려가 되었다. 그리고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종일 신경써야하는 상사가 아니라 나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 주려고 하시는 교수님들을 만나 듣는 얘기는 강의자체가 힐링이었다.   나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 안주하며 내가 부족한 점을 잘 알면서도 변화를 귀찮아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매일 같은 생활이 지루하고 싫증났음에도 불구하고 바쁜 회사업무와 야근은 핑계로 스스로에게 너그러웠다. 그러던 나에게 대 60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태연  학교는 내가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공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였고 이 시간과 노력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무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음을 보여 주며 긍정적인 영향을 내게 주었다. 사람이 긍정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가 누리는 하나하나가 모두 고마웠으며 고마운 것들에 대해 나는 최선을 다해 대하게 되었다. 시간도 헛되게 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이렇게 편의를 봐 주는 회사에도 누가 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4.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의 소중하고 고마운 대학생활   등교 첫 날, 첫 강의는 영어수업이었다. 처음으로 퇴근하고 학교를 오는 탓에 조금 늦는 사람도 있었고 서로 낮선 강의실에서 우리는 쭈뼛쭈뼛 인사정도만 나눈 상태에서 영어교수님을 맞았다. 그런데 교수님은 영어로만 강의를 진행하셨다. 그리고 첫 시간이라 우리의 영어실력을 파악하시고자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키셨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정보를 첫 날, 첫 강의시간에 그 것도 영어로 알게 되었다. 서른두 살에도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운 좋게도 동기 중에는 나와 동갑인 친구들이 있었다. 처지도 비슷하고 고민도 비슷한 우리의 대화는 막힘이 없었다. 대화 주제도 회사생활부터 가정사까지 변화무쌍했다. 그러다보니 금방 가까워졌고 학교생활에서도 고민도 털어 놓으며 서로 의지가 되었다. 또한 동기 중에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더 많이 있다. 재직기간 3년이 조건으로 붙는 전형이라 스무 살은 없지만 스물세 살은 있었다. 어느 날 수업 후 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갔고 제일 어린 동기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 친구는 빠르게 수저를 놓고 있었고 순간 아차 싶었다. 나는 언제부터 빈 테이블의 수저 앞에 자유로웠던 것인가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에 직장 상사나 선배를 이미 겪은 이 친구는 동기이긴 하지만 언니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을 수 있지만 더 어린 나였다면 나이 많은 언니들은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내 동기들을 대했고 우리들은 강의실에서 서로의 연애사까지 얘기하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동질감은 서로를 금방  6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친해지게 해 주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우리들의 나이 차이는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공통점과 모두 여자라는 더 큰 공통점 앞에 무색해졌다. 회사 일을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서로 묻기도 하고, 등굣길에 서로의 간식을 챙기고, 학교에 와서 수업시간에 혹시나 놓친 부분이 있을까봐 강의노트도 빌려주는 우리는 2013학번 동기들이다.   1학년 1학기 수업은 회계원리, 조세법개론, 경영학원론처럼 전공수업에 있어 아주 기초가 되는 강의들이었다. 교수님들은 강의시간에 강의는 물론 대학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얘기를 해 주셨다. 사회인으로서 생산적인 활동에만 생각이 치우쳐있던 내게 직장 내 나의 위치나 상하관계는 잊고 온전히 학생이 될 수 있었다. 학생으로서 대해 주시는 교수님의 말씀들은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정보를 알려 주시기도 하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시기도 하신다. 학교 밖에서는 모두 나에게 늦었다고 하는데 학교에 오면 교수님들 덕분에 학교에 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곤 한다. 학기를 더 지내다 보니 교수님께서는 회사 끝나고 바로 학교로 오면 밥은 먹었냐며 배고프겠다고 간식을 챙겨 주시기도 하시고 매년 엠티에서는 학생들이 먹을 고기를 교수님들이 직접 구워 주신다. 친근하게 학생들을 대해 주셔서 학생들도 어려워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는 교수님들이 우리학교에는 계셨다. 면담을 청했을 때도 미루지 않고 시간을 내어 주시고 오히려 왜 면담을 청하지 않느냐며 자주 오라고 하시는 교수님도 있으시다. 내가 이 학교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 분들을 만나지 못 했을 텐데 교수님들을 보며 많이 배운다. 요즘은 왜 주례선생님을 모시는 우선권은 신랑이 가지고 있는 건지 아쉬운 생각마저 든다. 우리 교수님이 주례해 주시면 교수님처럼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고 싶은데 말이다.    나는 학교에 오기 전까지 엠티나 축제는 사치라고 생각하며 다들 직장인이라 불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처음 엠티 갈 때마다 느끼지만 참여율은 정말 최강이다. ‘여자대학의 엠티가 뭐 그저 그렇겠지.’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여자들만 있기에 가능한 점도 있다는 거_ 상상에 맡겨본다. 나의 대학생활은 학교와 학과 교수님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1학년 때는 강원도로 1박 2일 산업시찰도 가고 2학년 때는 2박 3일 상해로 산업시찰도 다녀왔다. 선, 후배가 학교에서 함께 할 수  62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태연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우리는 산업시찰을 통해 선, 후배간의 교류도 더욱 활발해 졌고 나는 우리학과 모두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내 이름을 기억해 주는 선배가 있고 내가 기억하는 후배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졸업 후에도 동문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대하게 되었고 그러기에 더욱더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가 내 인생에서 소중해졌다.    이따금씩, ‘조금 더 빨랐으면 어땠을까 ’G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처럼 스무 살에 대학을 가고 졸업해서 대졸학력으로 취업을 했다면 나는 내 인생에 만족을 하며 살고 있을까 ’G하는 생각 말이다. 그럴 때마다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미련한 생각이라며 오히려 지금 선택한 것들에 대해 고마운 것도 모르고 지내고 있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대신 그 시간만큼 경력기간을 인정받아 30% 장학금을 받고 있지 않은가  우리 학교는 경력기간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학교 우리과 학생은 모두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40%까지 경력장학금을 받고 있는데 나는 10년이 조금 모자라 30%를 받고 있다. 8학기 동안 매 학기 30%의 장학금은 여간 든든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지난 두 학기 동안 나는 성적장학금과 국가장학금까지 받아 반값등록금이 아니라 0원으로 학교를 다녔었다. 연말정산 때 확인해보니 교육비가 0원이라 또 한번 장학금의 위력을 실감하며 우리 학교가 고마웠다. 이렇게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고마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나는 더 좋다.   2015년! 앞으로 2년 더 남았다. 마음먹기에 따라 아직 반밖에 안 지났고, 벌써 반이나 지났다. 8주, 16주…G시험 또한 당연해지고 익숙해지긴 하지만 하루 종일 공부만 해도 못 따라 갈 텐데 시험 당일에도 회사를 가야 한다는 것은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아닐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늦게 시작한 공부인 만큼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엄마는 시험 때 회사 일과 시험으로 힘들어 하는 나를 보시고는 제 때 공부시켰으면 네가 이렇게 힘들어 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하다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제 때라는 것은 다 남들 기준인거 아닌가  나는 지금이 나에게 공부할 때인 것 같다. 내가 필요하다고 직접 느끼고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노력을 하는 자에게, 시간은 그저 똑딱똑딱 흐르는 것일 뿐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6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장려상 내 인생 1막, 현재 진행 중 이 은 혜 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서막> 고정관념 깨뜨리기 - 남들이 a는 길이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니다.   “엄마, 나 상업계 고등학교 진학하고 싶어.”G가족의 예상을 깨고 나는 폭탄 발언을 던졌고 그 날, 엄마와 나는 크게 다투었다. 중학교 시절 중상위권으로 공부를 곧잘  했던 나. 그런 나에게 갖는 엄마의 기대는 컸고 남들처럼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던 엄마에게 나의 선택은 충격 그 자체였다. 64 장려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이은혜     그 당시 상업고등학교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했다. 지금처럼 선취업 후진학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선례도 부족했던 시기인지라 엄마의 반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좋은 곳에 취업하고, 좋은 대학까지 나온다는 것이 당시 인식으론 받아들이기 힘들었기에 엄마는 상당히 반대하셨다. 하지만 반대에 부딪힐 각오조차 하지 않고 말씀드리진 않았던 터. 내 결심에 확신을 가지고 있던 나는 선취업 후진학에 대한 모든 정보와 안내서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를 설득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나 자신이 이 제도에 더더욱 빠져들었고, 이것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해드리며 엄마를 설득시켰고 내 편으로 만들기에 성공했다. <1막 1장> 나 자신을 a꾸기 -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기회a 와도 잡을 수 없다.   확신을 품고 상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막상 입학하고 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잘 다루지도 못하는 각종 컴퓨터 관련된 과목에다가 회계, 상법, 경영 실무 등등 그 이전까지는 전혀 배우지도 않았던 과목들을 배운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부터 났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컴퓨터 자격증 중에서도 워드 자격증은 기본이라는데 나는 워드는커녕 컴퓨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G불안한 마음에 무작정 자격증 학원부터 등록했다. 학원에서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하며 1학년 내내 학원에 다녔고 10개 남짓한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자격증 취득만을 목적으로 한 공부였기에 취득 이후에는 실상 남는 것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따면 딸수록 실무에서 이 기술이 필요할 때 제대로 실력발휘를 할 수 있을까 조바심만 품게 되었다. 걱정에 대한 해답은 2학년이 되어서 찾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이미 수업으로 실무에서 사용 가능한 것들을 가르쳐 주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조급해 했나 후회가 밀려왔고 그 즉시 다니던 학원을 중지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6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이후부터는 학교를 믿어보자는 생각에 학교생활에 충실했다. 상업고등학교의 좋은 점은 단순히 공부뿐 아니라 학교에서 진로나 취업에 관련된 프로그램들을 많이 진행한다는 것이다. 특별활동 시간이나 방과 후 활동 때 진로 탐색반 같은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내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나에게 어울리는 분야는 어떠한 분야인지 분석하고, 또 같은 반 아이들과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내 진로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남들보다 조금 일찍 등교해 건강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이 개설되었을 때는 꾸준히 참여하여 외적인 모습을 가꾸기도 했고, 수업시간에 들은 것과 담당 선생님의 도움만으로 반 친구들과 무역영어 3급 시험에 도전하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가끔 먼저 취업한 선배들이 찾아와 재학생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조언을 통해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했는데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입장인 선배들에게서 실제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소위 내신이라 일컬어지는 학교 공부도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성적도 꾸준히 올라 졸업식 날 3개년 우등상을 받으며 졸업을 했다. <1막 2장> 사회에 첫발 내딛기 - 이제부터 정말 시작이다.   직장생활 6년 차. 하지만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이 난다. 현재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볼 당시, 마지막 임원진 면접에서 회장님께 질문 하나를 받았다. “성적도 좋은 편인데 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선택했는가 ”G나에게 이 질문은 “왜 선취업 후진학을 선택했는가 ”라는 질문과도 같았다. “대학이라는 곳이 단순히 남들이 가기 때문에 나도 가야 하는 곳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대학교에 진학하여 졸업한 뒤에는 취업해야 하는데 차라리 일찍 실무에 투입되어서 경력을 쌓다가, 업무적으로 정말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때 진학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G중3 시절, 선취업 후진학을 고민하며 나 스스로에게 수십 번도 더 되물었던 질문이기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회장님께서는 내 대답에 상당히 흡족해하셨다. 66 장려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이은혜    그렇게 직장생활은 시작되었고 주어진 곳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내가 맡은 업무를 완벽히 익히도록 노력했고 업무가 주어지면 단순히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떤 업무의 연장선에 있는 것인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후 이해까지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면 좋으련만 역시 사회는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업무를 분담함에 있어서 같은 평사원들끼리 토론하며 정하던 날, “이 업무는 제가 맡을게요.”라던 내 대답에 다른 직원들이 장난스럽게 “에이_ 진짜 할 수 있어요  은혜 씨 못할 것 같은데.”라는 이야기를 던졌고 그때 난 큰 상처를 받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들은 그냥 웃자고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스스로 “내가 고졸이라 그런가  고졸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G하며 스스로 상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에게 놀라고 말았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었는데 어느 순간 목적의식은 사라지고, 지금의 나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하루하루 사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3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지금 내가 맡은 업무는 몸에 익었는데,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좀 더 심화된 일을 하고 싶고 다른 업무를 맡고 싶어도 배웠던 것이 고등학교 수준까지라서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업무를 수행하는데 더 유동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사회는 냉정한 곳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니라 그동안 배운 것들을 토대로 지식을 발전시키고 확장해가는 곳이었다. 지식수준의 한계를 느낌과 동시에 자격지심, 그리고 더 배우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음속 깊숙이 묻어두었던 진학에 대한 열망을 다시 꺼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따금 찾아보긴 했었지만, 이렇게 마음먹고 대학에 대한 정보를 찾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내가 처음 선취업 후진학을 마음에 두었던 때보다 훨씬 많은 대학이 특성화 고졸 재직자 전형을 시행하고 있었고 나는 벌써 대학에 입학한 마냥 들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택권이 많아지다 보니 어느 순간 배움의 목적이 아닌, 학력에 대한 자격지심을 따라 “두고 봐.”G하는 심정으로 소위 말하는 학교 순위 6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를 따지기 시작했다. 마치 시장에서 구매할 물건을 고르듯이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결국에는 본질로 돌아와 “내가 왜 대학에 가야 하는가 ”라는 목적의식을 두고 고민했다는 점이다. 배우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과 현 업무에 대한 이해도 증진. 그렇게 생각하니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커리큘럼! 고등학교 시절 경영학과에서 공부했었고 현 업무에 보탬이 될 회계학까지 배울 수 있는 학과를 중점적으로 찾다 보니 중앙대학교의 지식경영학부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렇게 고민 끝에 내가 가야 할 학교를 정했고, 정말 마지막으로 가장 큰 관문만이 남았다. <1막 3장>  내 편이 되어준 사람들 - 믿어준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솔직히 직장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병행하며 생활할 본인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상황을 봐줘야 할 회사차원에서도. 그래도 이미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으니 괜찮은데, 회사에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어떻게 말을 할까, 허락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G한없이 마음 졸이며 말씀드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읽으셨던 걸까  입사한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과장님이 한마디 하셨다. “은혜 씨도 이제 슬슬 대학 가야지.”G그 말 한마디가 정말 나에게는 천금과도 같이 느껴졌고 나는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사실 내가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말씀드렸다. 더 감사했던 것은 이사님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는 것이다. 오히려 서류를 넣던 날, 중앙대만 넣겠다던 내 말에 이번에 놓치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니 일단 여러 군데 넣어보고서 고민하라며 나보다 더 걱정해 주셨다. 회사에서는 그동안의 내 업무 능력과 태도 등을 상당히 좋게 평가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내가 한 단계 발전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 것이다. 회사 동료와 상사 분들, 그리고 우리 가족. 나를 믿어준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학업이든 직장생활이든 내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68 장려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이은혜  <1막 4장>  대학생활 누리기 - 나는 지금 그 누구보다 바쁘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처음 강의실에서 수업하던 날,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나이가 많은 학생이 들어오자 다들 교수님인 줄 알고 인사했던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특성화 고졸 재직자전형을 실시하는 학부의 학생이라면 다들 공감하리라 싶은 데 가장 큰 특징이 바로 학생들의 나이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동기라는 이름이 무엇인지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 줄 아는가  언제 이런 다양한 직업의 사람을 만나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때로는 동기로서 다들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함께하고 때로는 인생의 선후배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혜를 공유하기도 한다.   참고로 중앙대는 이 전형을 시행하는 학교 중 제일 힘들다고 소문이 나 있다. 매 학기 시작 전 재직증명서를 제출하기 때문에 학교생활을 하는 4년간은 반드시 재직 중이어야 하고, 일주일에 거의 4번을 가며 특히 토요일은 1_2학년 때까지는 거의 하루 종일 수업을 듣는다. 하지만 참 신기한 점은 다들 힘들다고 하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정신없이 바쁘다고 하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왜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우린 당연히 대학을 갈 나이가 되어서, 가야 하니까 대학에 진학한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내가 원하고 희망해서 시간을 쪼개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우리 학부 사람들의 열정이 주간 학부 학생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단언해본다. 수업시간 30분 전쯤 강의실에 도착하면 이미 앞자리는 모두 꽉 차있고, 토요일처럼 여러 과목을 수강하는 날이면 다음 수업을 들으러 가는 쉬는 시간에 서로 앞자리에 앉으려고 뛰어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조별과제라도 있는 날이면 다들 수업이 끝난 이후 늦게까지 남아 함께 과제를 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열정이 정말 폭발하는 때는 시험 기간인데 이 기간에 연차를 내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것들이 단순히 열정 넘치는 젊은 학생들만의 이야기인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6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사실 가장 나를 놀라게 하고 매 순간 나를 반성하게 하는 학생들은 바로 4_50대 학생들이다. 그분들은 직장을 다닐 뿐 아니라 집에 가서는 집안일에다가 가족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인데도 열심히 과제를 해 오시고 수업을 들으며 참여를 하신다. 심지어는 성적 장학금을 받으시는 분들도 계실 정도이다. 각종 학부 행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체육대회 때나 .5, 05 같은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다들 나이를 속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끼와 실력을 발산한다. 장기자랑이라도 한다 치면 다들 직장에 다니면서 언제 그렇게들 모여서 연습했는지 단합된 동작에 깔끔하게 맞춘 복장, 플랜카드까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정말 놀 때 화끈하게 놀고 공부할 때 확실하게 공부한다는 말이 이들을 보고 나온 말인 듯 싶을 정도다. (회식할 때는 정말 내일이 없는 것처럼 먹고 마시다가 다음날 멀쩡히 회사를 나와 업무를 보던 공과 사 구분 확실한 회식기술이 이렇게 쓰임을 받나 보다) 이렇다 보니 젊은 학생들은 4_50대 학생들의 식지 않는 열정과 끈기를 본받고 4_50대 학생들은 젊은 학생들의 그 패기와 열정을 본받고. 그렇게 20대부터 50대까지 모두가 서로를 보며 도전을 받고 열정을 불태울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 지식경영학부만의 장점을 하나만 꼽자면 방학 때 다른 지역으로 현장실습을 다녀온다는 것이다. 해외로 가기도 하고 국내로 가기도 하는데, 방문한 곳의 산업방식을 분석하거나 특화된 산업을 개발하기 위해 고민해 보기도 하고 성공적으로 경영을 해나가고 있는 기업을 정해 경영사례들을 살펴보고 온 뒤 주제별로 발표시간을 가진다. 그것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톡톡 튀는 아이디어나 성공적인 사례들을 습득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전 학년이 참여하기 때문에 함께 발표준비를 하고 고민을 하면서 선배들의 노련한 발표 방법이나 경영분석의 비법 등을 배우기도 한다.    꼭 중앙대만의 장점이 아니더라도, 후진학의 가장 매력적인 점을 꼽자면 주간 학부와 야간 학부의 차이점이 수업시간 뿐이라는 점이다. 그 외에는 주간 대학생들과 똑같은 시스템으로 대학생활이 가능하다. 등록금을 내기에 여의치 않다면, 정부의 학자금 대출이나 국가장학금을 신청해 도움을 받아도 되고 공부에 전념해서 성적 장학금을 받거나 교내 장학금을 신청해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원한다면 동아리 활동이나 학생 70 장려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이은혜  회 생활도 가능하다. 나는 정말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 1년간 학년 부대표로서 학생회 생활을 하며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고 특별한 추억까지 만들었다. 또한 교내 독서 토론 동아리 활동도 참여하여 주간 학부 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게 책을 읽으며 토론해보기도 했다. 정말 학기가 끝이 날 때마다 다음 학기는 어떨지 매 순간 기대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계획한 것을 하나씩 이루며 나아간다는 것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지금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1막 5장> 내 인생 공유하기 - 내a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후배들과 함께 나누기.   요즘 내가 빠져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블로그 운영이다. 페이스북이나 다른 4/4를 하지 않는 나에게 블로그를 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그것을 하는 이유는 시간이 많아서도 아니며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이유는 하나. 내가 걸어온 이 길을 똑같이 걷게 될 후배들 때문이다. 입학원서를 준비하던 그때,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나는 내가 처음 선취업 후진학에 대한 꿈을 가졌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이미 성공적으로 선취업 후진학을 이룬 선배들에게 듣는 이야기 즉 생생한 경험담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입학전형에 대한 정보는 각 학교 입시전형을 보면 확인할 수 있고 어떤 학교가 이러한 전형을 실시하는 지가 궁금하다면 교육부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를 이용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 전형을 발 빠르게 실시했다고 꼽히는 중앙대나 건국대도 첫 1기 졸업생이 작년에 나오는 실정이다 보니 면접에 대한 정보나 선배들의 조언들은 주변에 지인이 있지 않은 이상은 얻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나 다음부터 이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나보다는 좀 더 궁금증을 편히 해소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블로그에 가끔 사람들이 질문한다. “부모님이 너무 반대하시는데 어떻게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요”, “저도 정말 언니처럼 될 수 있을까요 ”G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오히려 나는 정말 행복하다. 내가 다 겪었던 것들이라  7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내 사례를 설명하며 세심하게 대답해 주면 질문자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힘을 얻었노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제는 나보다도 더 뛰어난 선배들의 사례들을 글로써 만나볼 수도 있다. 작년에 처음 선취업 후진학 우수 사례집을 읽으면서 어찌나 반갑던지, 읽으면서 나도 꼭 글을 쓰리라 다짐했었다. 여기에 소개된 선례들을 통해서 선취업 후진학을 꿈꾸는 많은 학생이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며 또한 그것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가는 곳에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물론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선례가 없어 불평하기보다 나는 내가 직접 선례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학창시절, 나는 얼굴이 빼어나게 예쁜 사람도 아니었고 공부로 이름을 떨치는 학생도 아니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특출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딱 하나, 학교든 집이든 사회든 내가 처한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학창시절 학생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의무인 공부를 열심히 했고 꾸준히 성적을 올리는 끈기를 증명해 보이면서 가족들이 나의 선택을 지지할 수밖에 없게끔 하였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신뢰받는 직원이 되기 위해 주어진 업무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까지 최선을 다해 이행하며 생활했고 결국 대학진학을 승낙받으며 학업에 대해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지금, 학생으로서 나 스스로 후회 없이 살기 위해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도 참여하고 틈틈이 공부해서 매 학기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졸업 이후 펼쳐질 내 인생 2막을 위해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F DBO EP JU, TIF DBO EP JU, XIZ OPU NF ”G그도 했고, 그녀도 했는데 왜 나라고 안될까. 결국, 그 누구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전형을 준비하고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말해 주고 싶다. 나도 했으니까 여러분들도 가능할 것이라고. 그리고 나도 다짐해본다. 나를 믿어 주는 사람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 그리고 이 길을 꿈꾸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겠노라고. 72 장려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이은혜  장려상 농부의 진심 황 경 동 경북대학교 농산업학과    안녕하세요. 경북대학교 농산업학과 14학번, 59년생 황경동이라고 합니다. 따로 이름표를 달지 않아도, ‘농부’라는 단어가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외형을 갖고 있습니다. 매일을 밭에서 작물을 돌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맞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평생을 농사만 지으면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부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농사가 싫습니다.”G이렇게 말이라도 꺼낼 수 있었을까요  아니, 의심이라도 해본 적 있었을까요  농부 아닌 제 모습을  유년시절, 늘 일손이 부족한 농사일을 돕기에 바빴고, 주변은 온통 논과 밭인 곳에서  7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자라면서, 앞집도 옆집도 농사를 짓는 동네에서, 다른 직업은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으시는 논과 밭은 저의 놀이터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고, 지금은 삶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선이었지만, 찾아 갈 때마다, 꽃이 피거나, 열매가 열려 있거나 하면서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 주던 그 농작물들에게, ‘내일이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G하며 기대를 하기도 했었고, ‘저것은 어떤 맛일까 ’G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하면서,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은 그때의 순수함과 풋풋함으로, 기쁨과 보람을 느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구 농림 고등학교에 진학을 합니다. 그 시절,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해준 부모님께 감사했고, 또 고마웠습니다. 졸업하고 멋진 농부가 될 것이라 기대했고, 졸업하고 멋진 농작물을 많이 길러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하하. ‘먹고 살기 어렵다.’는 어른들의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몸으로 부딪혀 본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았습니다. 앞집도 옆집도 농사짓는데, 누가 제 것을 사줄까요  같은 값이면 더 좋은 상품을, 같은 과일이면 더 귀한 과일이 좋은 값을 받는, 철저한 시장경제 체제에서 이제 막 농사를 시작한 햇병아리가 설 곳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좋은 농작물만 길러내는 것이 농사가의 전부라 누가 말했나요  좋은 농작물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것까지 책임져야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농부입니다. 아무리 좋은 농작물도 유통 기한을 넘겨 버리면 쓰레기가 되며, 생물을 다루는 농사의 특성상, 유통 기한은 당신이 상상한 것 그 이상으로 짧습니다. 어느 보험 판매왕도, 어느 우수 자동차 영업사원도 감당하기 힘들 물량을 그것도 매일매일 수확, 판매를 어떻게 할까요  정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가능 합니다.   몸소 배운 교육이 오래 남는다고 이러한 방법으로 배운 농사의 어려움에 대한 각인은 아마 죽어서도 기억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농사였습니다. 부모님의 일을 도우면서 어깨너머로 배우던 농사가 아닌, 현실 속 농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새벽같이 나가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일을 해도, 한 푼 벌지 못한 채, 일꾼들 일당을 주려면 오히려 돈을 꾸러 다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돈을 꿔서 일꾼들의 일당을 주기를 몇 번을 반복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버틴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삶에 몇  74 장려상•경북대학교 농산업학과 황경동  년 노출되었습니다. 그런 제 사정도 모른 채, 돈을 꾸러 갈 때면 으레 듣는 말이 있었습니다. “너는 일꾼을 부려 일을 해야 할 만큼 많은 땅을 소유한 부자구나!”. 남들의 시선입니다. 그 얼어 죽을 놈의 부자, 거져 줘도 하기 싫습니다. 죽을 만큼 싫었습니다. ‘부자가 뭔데 ’라고 되묻고 싶었습니다. 물려 받은 땅이 있어서, 그 땅이 헐어 빠진 두메 산골에 있어서, 농사 짓는 일 외에 배운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 땅을 어쩔 수 없이 일궈야만 하는 신세가 서글프면서도, 울고 있을 수 만은 없었습니다. 그 땅을 일꾼들과 함께 어렵사리 일궜지만, 재료 값을 뽑기는커녕, 겨우 내 떼어대던 난방기 기름값 조차 뽑아내지 못했습니다. 종갓집의 외동아들로 태어나서, 누나와 여동생을 출가시키고, 교편을 놓으시고, 지방 정치를 하시는 아버지 뒷바라지를 하면서,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내 그리고 아들, 딸…G7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제 어깨는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남을 넘어 서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남을 넘어 설 수 있는 경쟁력이 필요했습니다. 남을 넘어서야 한다. 남이 걸을 때, 달려야 할까요  남도 같이 달릴 텐데요  솔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껏 달려 왔으니 더 달릴 능력은 안됩니다. 종갓집의 외동아들로 태어나서, 일곱이나 되는 식구를 부양하면서, 욕심 많고 뜻 있으신 부모님께서 이리저리 벌려놓은 농사를 거두면서 지금껏 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 한눈을 돌릴 새도 없이 하루는 바쁘게 지나 갔고, 그렇게 뛰는 농사꾼으로 산 세월이 30년입니다. 큰 돈을 벌지 않아도 됩니다. 가족만 부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키운 농작물이 정당한 가치로 평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 인생 최대 목표입니다.    남과 다른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경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경쟁 자체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좀 더 생각하고 연구했습니다. 나만의 경쟁력을 키워야 했습니다. 다 똑같은 농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소비자에게 주지시켜야 했습니다. 저만의 브랜드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유기농업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것이 15년 전입니다. 남들이 바보라고 합니다. 병충해에 식물이 말라 죽어도 농약을 뿌리지 않았습니다. 일년에 단 1LH의 농작물을  7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수확하지 못했어도 우직하게 풀을 뽑고 거름을 줄 뿐, 조잡스런 주변의 유혹에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가 농작물에 대한 확신이 없고, 신뢰하지 못하는데, 그 누가 내가 키운 농작물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당당하게 제 농작물을 권하겠습니까  바보 같은 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바보이기 때문에 더 우직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것에 관심 없고 농사밖에 모르는 바보니까요.   남들보다 4배가 넘는 돈을 투자해서 농작물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았습니다. 장터에 나가서 다른 상품들보다 더 좋은 물건을 더 헐값에 팔았습니다. 화학 약품으로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 놓은 농작물과 비교해서 유기농 농작물은 볼품이 없었습니다. 농약을 이용해서 반점 하나 없이 키운 남의 농작물에 비해, 제 농작물은 흉측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유기농이라면, 약간 상품 가치가 떨어져도 그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세상경험 부족한 햇병아리는 또 한번 한계를 느낍니다. 유기농으로 키웠더라도 상품성은 농약을 친 제품만큼 우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장바닥에서 일어나는 유통진리였습니다. 그만큼 부족했습니다.    농사를 짓는 것은 하늘이 결정하는 일이라고 할 만큼 농부의 역할은 미약합니다. 비닐하우스의 문을 꼭 잠그고 담뱃잎을 태워서 진딧물을 질식시켜 죽였습니다. 한약재료를 토양에 뿌려 썩게 만들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닐 하우스의 비닐을 제거한 채, 자연이 내려 주는 비와 해를 직접 맞으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침마다 풀을 뽑고, 작물이 자라는 하우스가 아닌 공간의 잡초도 깨끗하게 정리했습니다. 이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돈 한 푼 벌어 들이지 못하고,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지만, 저는 저를 굳게 믿었습니다. 비옥하게 만든 이 땅이 제게 보답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지금껏 거짓말 한 번 안하고, 남들에게 피해 한 번 안 주고 일평생을 살아온 저를 자연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저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안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이 넓은 땅에 심겨진 이 많은 작물이 다 죽진 않을까  모두 다 폐기물이 되진 않을까  저를 믿어 주는 어머니, 아버지, 아내, 그리고 자식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길 76 장려상•경북대학교 농산업학과 황경동  이 아니면 저에겐 길이 없었습니다. 평생 해온 것이 농사요, 뼛속까지 농사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직한 믿음과 우직한 노력, 그것이 전부였으니까요.   이때부터 학문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을 시행착오로 배워야 하는 제 모습이 애처로웠습니다. 뭔가를 알고 있으면 좀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이 배율로 유기농 자재를 만들었을 때, 토양의 산성화를 왜 지연시킬 수 있으며 이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의문을 던졌습니다. 스스로에게 한계에 부딪혔을 때 저는 학교를 선택하였습니다. 처음에 선택한 학교는 경북대학교 농산업학과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대구 농림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가 쉽게 시작할 수 있는 학업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를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3학년 재학 중에, 저는 좀 더 좋은 시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경북대학교 농산업학과의 존재를 알고, 경북대학교  농산업학과에 지원하였습니다.    애석하지만 컴퓨터를 모르는 50대가 대학생활을 성실히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홈페이지 주소 하나 찾아가지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딸에게 현금 50만원을 선불로 지급하면서 컴퓨터 강사가 되어 줄 것을 당당히 요구하였습니다. 이것 저것 배우면서 많이 공부하고, 인터넷과 컴퓨터를 배우면서 제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시야를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살아가기 편했고, 변화 속도도 굉장했습니다. 배움의 구걸이란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구걸을 통해서 이것 저것 배웠고, 저 또한 학문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사람의 성향 또한 바꿔 놓았습니다. 50대가 되어 4년제에 정규 학생으로 다니는 것을 상상이나 해보았겠습니까  애초부터 시간이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접었을 겁니다. 하지만 알아보고 나니, 학교는 제가 농사를 지으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생각보다 배려를 많이 해 주고 있었으며, 학비도 농업사랑 장학금을 신청하여, 어느 정도 감면을 받으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이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계획하여 실천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섣불리 “불가능할거야.”라는 판단을 내리던 한 인간은, 이제 긍정의 자세를 가지고 모든 세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7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저는 이러한 배움을 궁극적인 실천으로 완성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농사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고, 이렇게 하면 실패율이 낮은 유기농업을 실현할 수 있다는 지식을 정리해서 저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제가 연구한 유기농법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제 학문적 배움의 시작을 생각하면 상당히 벅차오릅니다. 지금까지 귀농 강사로 이리저리 강연을 다니면서, 그렇다 할 이유 하나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제 자신에게 채찍질하며, 오로지 경험에만 의존하여 설명을 했었던 제 자신에게 자양분이 되어줄 이론 공부를 시작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이 학업을 발판 삼아 더 좋은 유기 농업을 연구하고, 더 많은 종류의 농작물을 유기농으로 생산해야 할 책임감과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연구한 유기 농법을 계승 발전 시키고 싶습니다. 이 모든 일을 저 혼자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행복합니다. 농업 또한 무한 경쟁 시대에 놓여 있습니다. 농업 또한 시스템 농업으로 수확률을 높이고, 병충해를 예방하며, 고품질 농산물 재배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농부들이 저희 학과에 모여 있습니다.   점차 증가하는 귀농 인구와,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필요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지금, 단순히 열심히, 그리고 많이 하는 것뿐만 아니라, 창의적으로 시스템화된 농업의 보급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는 글로 농업을 연구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 있습니다. 몸으로만 농업을 체험한 사람들에게도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 있습니다. 저와 함께하고 있는 저희 대학교 동기들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입니다. 저뿐만이 아닌, 제 동료들은 함께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전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건설하는데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30년 동안 농업에 종사하면서, 15년 동안 유기농업에 종사하면서, 현장에서 경험적으로 습득한 많은 노하우 및 크고 작은 실수들이 고품질의 농산물을 대량 생산해 낼 수 있는 바탕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미래 먹거리는 우리에게 큰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대사회 78 장려상•경북대학교 농산업학과 황경동   는 현대인의 생활패턴마저 파괴하고 있습니다. 편의점 삼각김밥 매출량이 증가하는 것의 이면에 있는 현대인의 바쁜 생활과, 올바른 식습관이 자리 잡고 있지 못하는 상황을 개탄해야 합니다. 그들이 자손을 낳고,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그들을 삼각김밥이 이끌고 있다는 현실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전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 이러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이 경제적 걱정 없이, 생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안정된 농업 $&0의 건강한 예제가 되어 많은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사회의 모범이 될 수 있는 농업 기업가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제가 생산한 유기농산물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고자 합니다. 한국의 유기농업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농가 소득을 증대시키고, 농민의 생활이 좀 더 안정될 수 있게 돕고 싶습니다.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5) 등 외국산 농산물의 위협이 시시각각 닥쳐오는 상황 속에 농민들이 농업을 지킬 수 있도록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제가 학교를 잘 다닐 수 있도록, 학교 가는 날 제 농장을 봐주는 제 여동생  그리고 제 아내에게 고개 숙여 감사인사 전합니다. 7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장려상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나면 따뜻한 봄이 온다 - 45세 열혈 아줌마의 우여곡절 많은 대학 생활기 - 정 안 순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1. 어려웠던 유년시절   1971년 문명과는 동떨어진 전남 승주의 시골 마을에서 2남 2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 시절 시댁 어른들을 모시고 시동생 6남매와 함께 사셨다고 한다. 힘들었던 시절이었기에, 나보다 위인 오빠를 낳고서는 애를 낳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셨 80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정안순   다. 그런 가운데 애가 출생하니 기형아가 나오지 않을까 진통 중에도 순간순간 걱정하시며 출산했다고 하신다. 다행히도 다른 아이들보다 체격이 크고 건장했다 한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자고 결혼 10년 동안 아버지를 졸랐다고 하셨다. 서울로 올라가면서 오빠와 여동생을 데리고 가고, 나와 남동생을 할머니 댁에 남겨 두었다. 서울에서는 아이가 몇이냐고 물어보며 자녀가 많으면 셋방도 주지 않을 뿐더러 돌볼 수가 없어 남겨두고 가셨다. 서울로 가시기 전에 7살이었던 나를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시켜 놓고 가셨는데,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할머니께서는 나를 고모네 집으로 보내셨다. 나는 고모네 집에서 4살짜리 조카를 기저귀로 동여매어 업고 돌보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마음이 아프셨던지, 나를 서울로 올라오게 하였고 8살에 초등학교 1학년을 다시 입학하여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 주택관리사에 도전   참으로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그 당시 같은 회사를 다니는 동료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22살에 결혼하였다. 벌써 결혼 23년 차이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딸과 아들, 두 자녀를 낳고 평범하고 화목하게 생활하였다. 그러나 가사와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생활만으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그리 큰일도 없어 허송세월을 하는 것 같이 느껴져, 다시 취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육아문제가 있었기에 집에서 가까운 직장이 필요하였다. 부기와 타자 2급 이상의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채용한다는 광고를 통해 집 근처에 있는 아파트관리실과 인연을 맺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내 나이가 38세였다. 40대에 가까워지자 나이를 먹어간다는 느낌과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무엇인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주택관리사 관리소장 자격증 공부이다.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취업을 하여 38세까지 책을 가까이 대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너무나 낯설 8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고 힘든 일이었다. 퇴근 후 7시부터 10시까지 하는 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 일도,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는 일도 나에겐 너무나도 버거웠다.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는 학원을 다녔으니 가사와 육아는 당연히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학원수업을 받으러 간 사이에, 둘째가 집 앞 초등학교 가파른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다 속도를 이기지 못해 난간에 부딪혀 팔이 부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고, 아이 아빠가 병원에 데리고 가서 깁스를 하는 등 치료를 했지만 엄마인 나로서는 아이와 함께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슬픔이 교차하였다.   낮에 일하고 밤에 학원을 다니면서 3년을 공부했지만 번번이 주택관리사 관리소장 자격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참으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지만, 한 번만 더 죽을힘을 다해 해보자고 결심을 하였다. 남편에게는 가사를 돌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아이들에게는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이번에는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올인해서 공부하였다.   2011년에 드디어 1차 시험에 합격했고, 10월에 2차 시험을 보고 11월에 최종 합격자 명단이 나올 때까지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는데, 2차 시험에도 당당히 합격하였다. 너무나도 기쁘고 가슴이 설레는 경사였다. 주택관리사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공부는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주택관리사라는 자격증과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일한 경험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다. 11월 최종 발표 이후 소방안전관리자, 2급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도 시작했다. 2011년은 자격증 공부로 보낸 한 해였다.  3. 또 하나의 도전 ‘대학’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던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자, 고등학교 졸업 후  82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정안순  마음속에 늘 있던 대학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하였다.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자 좀 더 높은 목표가 필요했다. 11월이 지난 후라서 일반대학은 입시가 끝나 진학이 어렵다고 판단을 하고, 방송통신대학을 진학하려고 인터넷을 검색하였다. 그러던 중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의 추가모집이 있다는 것과 특히, 동덕여대는 직장경력 10년 차 이상이면 학비도 40% 감면해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동덕여대 외에도 다른 대학들도 모집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늦게 대학을 가겠다고 결정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장을 받는 다는 단순한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대학 졸업장이라는 자체도 앞으로 아파트 관리소장이 되기 위해서는 나에게 무척 중요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원과 가까운 대학을 결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왕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이 들자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내가 아파트 관리 중에서 경리파트를 담당하면서도 과거에 했던 것만을 기계적으로 해왔고, 회계의 원리를 몰라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회계를 공부하고 싶었다. 아파트 관리는 작은 회사와 똑같다. 단순한 회계처리뿐만 아니라 각종 세무신고도 하여야 한다. 큰 회사는 일이 나누어져 있어서 특정분야만을 공부해도 되지만, 아파트 관리소의 회계파트는 회계의 전반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이었다. 동덕여대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전에 같이 일했던 소장님의 큰 딸이 동덕여대 미대를 다니고 있고, 둘째도 동덕여대를 입학한다는 것을 듣고 친근감도 있었다.  2012년 2월 조경기능사 공부를 하던 중에 동덕여대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일요일의 면접을 보기 위해 수원역에서 학교까지 전철을 타고 이동하던 나는 깜빡깜빡 잠이 들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모르고 갔다. 합격자 발표 후에 오리엔테이션을 한다고 6시 퇴근하고 학교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었다. 2시간 30분은 너무나 먼 거리였다. 오리엔테이션에 나가보니 젊은 학생들도 있었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약 5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선택한 학교이고 대학생이 된다는 기쁨으로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조경기능사 시험이 4월에 있어 이를 준비하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직장이 끝나면 학교 8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도 가고 조경기능사 시험 준비도 하고, 정말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런 생활 속에서 고마운 것은 책임자이신 관리소장님이 평일에는 퇴근은 조금 일찍 하고 토요일에 부족한 시간을 근무해도 된다고 배려해 주신 것이다. 이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면 4년을 졸업할 때까지 무난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4. 너무나 먼 학교 a는 길   수원에서 동덕여대까지 가는 길과 수업 후 귀가하는 길이 쉽지 않았다.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면서 퇴근하고 학교에 가려고 관리소를 나서면 난 발걸음이 빨라지고, 내 마음도 학교에 간다는 기쁨으로 채워졌다. 시외버스를 타고 강남역에 도착해서 환승을 두 번하고 학교에 도착하면 매일 지각이었다. 학교가 이러한 것을 배려하였는지 전공과목은 대부분 2교시인 8시에 시작하게 설계하였다. 등굣길보다 수업 후 귀갓길이 더 험난했다. 밤 10시 반경에 수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강남역까지 3번의 지하철 환승과 마지막 1시간을 달려야 하는 시외버스였다. 처음에는 정확한 차편을 몰라서 무조건 기다리다 차를 타면 30분도 기다리고, 전철도 거꾸로 타는 경우도 있어 새벽 1시에도 들어가곤 했다. 집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었다. 내일 출근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타고자 입석 줄에 서서 집까지 가면 다리가 너무 아프고 어깨도 아팠다. 시외버스에 서서가는 것도 힘들어할 무렵 우연히 학생이 하차하는 문에  걸터앉는 것을 보고, 내가 그 앞에 쭈그리고 앉는 단골 승차객이 되었다. 책가방은  왜 이리 무거운지 주말이 되면 너무 아파 파스와 두통약으로 버텨냈다. 5. 뜻하지 않은 사직   등하교 시간이 5시간이나 걸렸지만, 그래도 학교에 간다는 것이 즐거웠다. 대학생이면서 직장이라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리고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아파트 부녀회에서 일찍 퇴 84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정안순  근하는 나를 문제 삼기 시작하였다. 관리소장이 평일에는 일찍 퇴근하고 토요일에 보충한다고 얘기하였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찾아왔는데 내가 없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아파트 관리소에 일할 사람이 많은데 학교를 다닌다는 것으로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것이 사실이었다. 특별히 변명할 것도 없었다. 2013년 2학년 2학기 도중인 9월 30일자로 권고사직을 하게 되었다. 서운한 감정이 많아야 정상인데 무척 후련했다.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학교에 갈 수 있고, 무엇보 다 지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11월 중순에 다른 관리소로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편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하 였기 때문이다. 6. 배운다는 기쁨   학교에서 가장 큰 기쁨은 배운다는 것이었다. 엑셀 수업은 업무처리 시간을 많이 단축시켜 주었다. 일찍 배웠더라면 그동안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인세법, 부가가치세법은 그동안 기계적으로 하던 회계업무의 사고의 폭을 넓혀 주었다. 원리를 알고 나니 전문가가 된 느낌이었다. 회계와 세법은 나의 업무와 관련이 있어서 그 시간이 무척 기다려졌다. 물론 학점은 좋지 않았지만, 어떤 원리로 되어 있고 실무에는 어떻게 사용된다는 것 자체를 아는 것만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교양과목으로 공부한 직장예절 수업도 나에게는 유용하였다. 특히 윗사람을 접대하면서 두 손을 사용하여 배꼽 높이로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자세, 문을 열고 먼저 나가 윗분을 안내하는 것, 엘리베이터를 탈 때 상사를 모시는 예절, 명함 주고받기 등을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잘나고 똑똑한 사람만 채용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예절바름도 나름대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킨다. 지금의 나이에 보통의 학생들과 같은 대학 교육을 받았다면, 직장생활을 하는 나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의 커리큘럼은 직장인인 나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8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학교에 가서 직접 수업을 듣는 것이 가장 좋았다. 동기들과 만나고, 교수님들의 수업을 듣고 있으면 집에 가야하는 부담감도 없어졌다. 나와 같이 직장생활도 해야 하고 특히 등․하교 시간이 긴 경우에는 모든 수업을 직접 듣기가 무척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일부 과목은 인터넷과정(0$6)을 선택하였지만,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다. 7. 재취업과 새옹지마   한 학기 반 정도를 직장 없이 학교에 다니니 참으로 좋았다.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지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택관리사 공부를 같이 했던 14회 친구들은 모두들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왠지 나만 남겨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 학업을 계속하겠다는 당초의 나와의 약속이 깨어져버린 느낌이었다. 게을러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던 중에, 세화종합관리에서 회계팀장을 채용한다는 인터넷 공고가 났다. 치열한 공개경쟁을 뚫고 팀장에 합격하여 화서 블루밍푸른숲 아파트 관리소에 다시 취직하여 2014년 7월부터 근무하게 되었다. 직장과 학업을 다시 병행하면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3학년이 되니, 직장과 학교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그러던 중 2015년 1월에 어느 지인의 소개로 좀 더 좋은 직장을 추천받았다. 지인의 추천을 받았지만 공개 경쟁채용이었다. 서류경쟁률이 150:1이고, 면접도 보았다. 면접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있어서 법인세신고도 직접 하였고, 부가가치세도 직접 신고하였다는 대답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에 3학년으로 재학 중이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신 것 같았다. 면접을 잘 보았는데 합격자 발표가 나지 않았다. 추천한 지인에게 연락을 하니 합격했고 2월 1일부터 출근이라고 하였다. 좀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어렵게 직장과 학업을 병행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합격을 했고 옮기는 직장의 조건도 좋았기에 출근하여 관리소장님께 사직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관리소장님이 나의 사직 사실을 본사 부사장님께 보고하던 중 뜻하지 않던 일이 벌어졌다. 송탄 관리소장으로 발령을 내려고 하는데 사직을 하겠냐 86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정안순  는 것이다. 주택관리사 공부를 한 것은 관리소장이 되려고 한 것이다. 어찌 보면 작은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다른 회사에 추천해 주신 지인에게 미안한 일이었지만, 사직을 포기하였다. 난 순간 기쁨과 어리둥절함이 혼재하였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G그동안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대학을 다닌 것이 참으로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취업난으로 젊은 학생들이 졸업을 해도 취직이 안 되는데 나의 성실성을 알아봐 주신 분들이 다 채용(양쪽 다른 회사)하여 주셨으니 정말 고마웠다. 관리소장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으므로 본사 회장님의 면접 후 바로 송탄 입주자 회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동대표님들과 관리소장으로서 점심식사를 하며 최종 상견례를 하였다. 식사 도중에 이번 관리소장의 발령조건이 회계도 잘하면서 세무지식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 3학년을 마쳤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하고 고마울 수 없다. 그동안 학교 다닌다는 이유로 부녀회가 문제 삼아 권고사직을 당했어도 말도 하지 못했는데, 이번 면접 때는 대학을 다닌다는 것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어렵게 공부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2월 1일에 송탄 관리소장으로 첫 출근을 하였다. 회계담당자에서 전체 건물을 관리하는 소장이 된 것이다. 회계담당자와 소장은 매우 달랐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아파트 시설물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형 급수관, 비상발전기실, 아파트 주민의 안전문제 등은 과거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에 내가 보통의 준비자들처럼 평범한 고졸이라면 이 기회가 나에게 왔을까 하고 나 자신에게 물어 본다. 아직 1년을 더 다녀야 졸업을 하지만,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를 선택하고, 회계와 세무지식을 쌓았기에 온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그 말이 진실로 내 가슴에 와 닿았다. 내가 노력하고, 내가 원하고, 내가 성취하려고 준비할 때 당장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반드시 기회는 주어진다. 그런 기회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준비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리라. 8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8. ʻ선취업 후진학ʼ을 준비하는 후배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객관적이고 타당하여 나에게도 유익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에게도 유익을 줄 수 있는 거라면, 주저하지 말고 지원해서 정면 돌파하라고 말하고 싶다. 아침은 돌아온다. 다만 나 자신의 의지에 모든 문제가 달려 있을 뿐이다. 빠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이 준비하고 노력한 것은 배반하지 아니하고 때가 되면 자신에게 돌아와 갚진 무기가 되고 창이 되고 방패가 된다.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은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나이 어린 동기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자기  학비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견하다. 몇몇 동기들은 공부도 정말 잘 한다. 일반 대학생들이 취업이 되지 않아 졸업을 미루고, 취업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고, 어학연수를 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현재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꿈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선취업 후진학의 입학은 현재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대학의 진학이 단순히 졸업장을 받고자 한다면, 이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꿈과 연결되는 대학의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나의 경우도 수원에서 가깝거나 동덕여대보다는 교통이 편리한 대학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회계와 세무를 공부하는 것에 맞추어 대학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나의 결정은 나에게 많은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또 하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끝까지 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만 다니는 일반 학생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고졸 취업이어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점도 있지만, 인생의 기회는 단순히 대학 졸업이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직업에 충실하면서 스스로 노력하면 기회는 올 것이다. 나의  88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정안순  경우에도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관리소장으로 응시하면 면접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았고, 한 단계 낮추어 직원으로 응시하면 연락이 왔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전공을 택하고 노력하였기 때문에 관리소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찾아 왔고, 준비하였 기 때문에 이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나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된 후배들에게는 꼭 도전하라고 하고 싶다. 대학에서 배운다는 것은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상이 있다. 사회에서 대학 나온 사람을 우대하는 것이 단순히 대학을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대학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기 때문이다. 9. 고맙고 생b나는 사람들   고3 딸을 가진 가정이라면, 온통 집안이 수험생이 된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엄마이다. 내가 대학 1학년 때 우리 딸이 고3이었는데, 자고 있는 나에게 “엄마, 일어나.”G하면서 학교에 간 딸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그리고 묵묵히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준 남편에게 새삼 고맙다. 그동안 자격증 공부한다고 해서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딸이 고3인데도 엄마가 대학을 다녔으니 어지간한 남편 같으면 이혼하자는 말도 나올 법하다. 그런데 나를 믿고 묵묵히 참아준 남편이 너무나 고맙다. 아마 남편이 반대를 하였으면 대학도 다니지 못하였고, 주택관리사 자격증도 취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관리소장도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칠 때 내 나이 37세 겨울에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시골에서 상경하여 도시에서 4남매를 모두 학교 보내고자 공장 근로자, 야채 과일행상, 청소원 등 안 해본 일이 없는 엄마였다. 오빠를 고등학교에 보낼 돈이 없이 쩔쩔매다 간신히 입학금을 내는 것을 보면서 난 당연히 상고로 진학하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신 엄마가 공부에 마음이 있어 저녁이면 글씨를 보면서 항상 쓰는 연습을 하곤 하셨다. 간암으로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 2달 정도  8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입원하셨는데, 그때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은 너희들을 공부 가르친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 엄마의 희생으로 오빠와 나는 고등학교, 두 동생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내가 회사에 다니고 두 아이의 엄마이고 가사도 돌봐서 힘들다고 하지만, 엄마가 날 키우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난 할 수 있어 반드시 해내고야 말거야 하는 다짐을 수도 없이 되새기곤 한다. 10. 졸업 후의 나의 꿈   내가 이 글을 쓰면서 과거의 일들이 생각나 가슴이 뭉클하고 눈 밑은 젖어 있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눈물과 아픔도 많던 그 시간을 어찌 다 감당했는지 새삼스럽기만 하다. 글이 유치해 부끄럽고 죄송하지만 난 나와 같은 과정을 겪으며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싶다.  더 욕심을 부려서, 4학년 과정을 다 마치고 어느 정도 일도 능숙하게 잘 처리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번 상상을 해본다. 분당구청에서는 주택관리사 출신 관리소장 여자 1명과 남자 1명을 공동주택관리담당으로 특별 채용한 적이 있다. 수원시는 계획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수원에서도 이러한 과정으로 공동주택 담당공무원을 채용하는 기회가 있다면, 여기에 응시하고자 한다. 내가 이 공동주택관련 담당공무원이 되어서, 한 단지의 아파트가 아닌 시 전체의 아파트를 관리하는 정책을 입안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은 대학 생활에 보다 충실하고, 아파트 관리에 대한 전문지식을 더 쌓아갈 예정이다.   공동주택 업계에서는 현재 남자 합격자가 85_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점점 여성 합격자의 수가 많아지고 점점 관리사도 여성이 많아질 것이다. 주부의 입장에서 더 섬세하게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여성들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또 여성이기에 당하는 편견도 있다. 동등한 입장에서 일한다는 것이 아니라 남성․여성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90 장려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정안순     똑같이 일해도 여자니까 더 부족하다고 생각 할 수 있으니 더 노력해야 하고 더 발로 뛰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 치열하게 해야 선택받고 일어설 수 있는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내 자랑을 쓴 것 같고 글이 너무 부족해 올리기도 죄송스러운데 읽어 주심에 감사하며, 이 행복이 날아갈까 걱정스럽다. 남은 1년의 학교생활이 45세 나이에 쉽지는 않겠지만 힘차게_, 열심히_ 할 것을 다짐해 본다. 9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장려상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송 예 진 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1. 별을 꿈꾸는 아이   대학이 어떤 곳인지 몰랐던 어렸을 적에는, 언니들이 모두 대학에 갔으니 나도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가세가 기울어, 취업을 위해 실업계 고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대학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접었었다. 오로지 취업만이 목표였다.     취업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삼성전자 사무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당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형편상 대학에 가지 않았을 뿐, 업무에 임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가보지 않았기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92 장려상•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송예진     물론 19살에 맡은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서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나에게 맞는 사이즈의 업무와 업무량을 주었기 때문이라 짐작해본다.   내가 다시 대학이란 곳을 떠올리게 된 것은 입사 후 1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회사와 부서,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을 무렵, 부서원들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에서 선배들 간의 차이를 지각했기 때문이었다. 회사 내에서 학력차별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퍼포먼스에는 차이가 존재했다.    저 차이를 일으키는 ‘무엇’은 무엇일까  일 잘하는 선배를 관찰하고 모방해 보기도 했었다. 몇 가지 뚜렷한 공통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흉내 낼 수 있는 것들은 습관, 업무태도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알맹이가 궁금했다. 그것은 따라할 수 없고, 나를 채우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빛나는 별을 가슴에 품기 위하여!   이것이 내가 대학을 가고자 했던 이유이다. 누구에게나 패자부활전은 있다.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던 참이었다. 오후 업무에 임하던 차에 회사 동기에게서 다급하게 메신저가 왔다. “예진아, ‘재직자 특별전형’이라고 네이버에 검색해봐!”   8PX! 정말 나에게도 대학가는 길이 열린 제도였다. 입학 자격은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졸업자로서 3년 이상 산업체에 재직해야 하고, 선발방식은 오로지 고교 내신 성적과 면접뿐.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수능 없이 대학교에 갈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재직자가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제도는 기존에도 존재했다. 우리 회사에는 임직원들을 위한 사내대학, 사이버대학 제도가 있었다.    사내대학은 오프라인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기에 지원을 희망했지만, 사내정책상  9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부서장 결재 없이는 지원할 수 없는 구조였다. 회사의 방침도 이해는 했다. 임직원 혜택으로 등록금도 30%나 감면해 주는데, 회사도 이 정도 조건은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부서 상황이 문제였다. 내 위로 선배 두 명 모두 사내대학에 재학 중이었기 때문이다. 부서장님은 부서의 긴급한 일이 생길 시, 저녁만 되면 모두 대학에 가버리면 자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2년만 기다려 주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노라고 약속을 해 주셨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조직개편으로 인해, 나의 부서와 부서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서의 부서장님은 대학에 가는 직원을 못마땅해 하시는 분이었다. 내가 이 자리로 옮기게 된 이유도 전임자가 학교에 다녀서 불편함이 있으니 새로운 후임자를 찾아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입학지원서 한 장 써보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부서장 결재가 필요 없고, 퇴근시간 압박의 문제도 없는 사이버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사이버 대학의 교육방식은 나와 맞지 않았다. 모니터 화면 속 교수님과 어떤 소통도 없이 진행되는 수업이 힘들었다. 이렇게 학업을 이어 나가 받는 졸업장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결론은 아니었다. 나는 1학년을 마치고 자퇴를 했다. 후회는 없었다. 사내 제도를 이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깨달았다. 눈을 밖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 당시 나의 근무지인 충남 천안, 아산에는 대학이 많았다. 그 중 야간대학을 운영하는 대학은 단국대학교와 순천향대학교가 있었다. 단국대 야간대학에 지원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입학 준비에 돌입했다. 회사에 단국대에 재학 중인 분을 수소문하여, 무작정 F-NBJM과 문자를 보냈다. 한번만 만나서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흔쾌히 만나 주셨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야간대학은 나처럼 직장인들이 회사를 마치고 야간에 대학에 모여 공부를 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직업이 대학생인 친구들이 거의  94 장려상•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송예진  대부분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인 즉슨, 나는 회사와 학교를 병행해야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학업에만 열중하는 것이 가능하고, 학교는 몇 없는 직장인을 위한 배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직장인들에 대한 배려가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역차별일 수 있었다.   선배의 많은 도움 끝에 지원을 마쳤다. 결과는 불합격, 예비 5번이었다. 사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야간대학의 성적산출 방식은 나에게 쥐약이었다. “고등학교 성적 3학년/50%, 2학년/30%, 1학년/20%”로 반영되었는데, 나는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부터 회사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3학년 2학기 성적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시험기간에만 학교에 들러서 시험만 보고 다시 회사로 복귀했단 말이다. 나의 이 억울함을 대학교는 들어주지 않았다.   나의 고교 성적은 우수했다. 삼성전자에서 사무직으로 단 1명을 채용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고집을 부려서라도 졸업 후 가겠다고 떼를 쓸 것을 그랬다. 하지만 이미 늦은 처사 아니겠는가. 성적은 컴퓨터가 집계 한다는데, 나의 사정을 컴퓨터가 알아줄 리 없었다. 2. 끌어당김의 법칙(MBX PG BUUSBDUJPO)   세 번의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이제는 포기하자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의 이런 상황을 모두 알고 있고, 함께 대학에 가는 꿈을 꾸던 나의 동기가 “재직자 특별전형”에 대해 듣고는 다급히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은 건국대학교와 중앙대학교였다.    두 학교 모두 훌륭한 학교였기에, 실질적으로 내게 필요한 조건들을 각 학교에 대입 시켜보고 적합한 학교로 결정하기로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4년이라는 긴 시간을  9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투자해야 하는 일이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 것임은 틀림없었다. 내가 따져보고 분석한 항목 중 가장 중요시했던 다섯 가지 항목이다.  ①G교통편   : 충남 아산에서 서울까지 가야 했다. 회사 앞에서 강남역까지 직행으로 달리는  버스가 있었지만, 약 2시간가량 소요됐다. 이건 두 학교 모두 동일하므로 강남역을 출발점으로 잡고, 건국대와 중앙대까지 이동을 고려했을 때 같은 2호선 내에 존재하는 건국대가 이동시간, 이동동선 측면에서 베스트였다.  ②G장학제도   : 건국대 법학과에 친언니가 재학 중이었다. 건국 가족 장학금으로 매 학기 50만 원씩 감면되었다. 8학기면 400만 원이나 되었다. 아주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③G운영특성    : 주 5일제 근무를 하며, 주 5일 학교에 간다는 건 너무나 가혹했다. 더군다나  나는 지방에서 왕복 6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매일 오갈 수는 없었다. 건국대는 평일에는 목요일 6시_10시, 토요일 9시_밤 10시까지 주 2회 수업이 가능했다. 주말에 집중적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④G교육과정   : 건국대와 중앙대 커리큘럼 비교 결과, 두 학교 모두 경영/경제 부문을 학습하는 것은 공통 분모였다. 하지만 건국대에는 산업융합/벤처부문이 특화되어 있었다. 경영/경제부문에 대해 배우는 것은 기본이고, 산업융합과 벤처까지 배울 수 있는 점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⑤G끌어당김의 법칙(MBX PG BUUSBDUJPO)   : ’04년 3월, 언니의 대학교 입학을 축하해 주기 위해 건국대에 간 적이 있었다.  당시 고2였던 나는 언니가 참 부러웠고, ‘나도 이런 멋진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면  96 장려상•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송예진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내 인생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내가 끌어당긴 것이라는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해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로써 나는 건국대에 지원하게 되었고, 서류전형과 심층면접을 거쳐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드디어 나의 별을 빛낼 기회를 거머쥐게 되었다.   3. 길은 찾는 자에게 열린다.   입학을 앞둔 시점에 부서장이 바뀌게 되었다. 그동안의 실패를 통해, 앞으로 나의 학업계획에 있어서 부서장에게 주도권을 뺏기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그들은 내 인생을 살아 주지 않고,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나의 몫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는 위치 아니겠는가. 내 가것이 선었택다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부서장이 나를 신임할 수 있도록 하는    나는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부서장님께 면담을 요청하여, 내가 대학에 가야만 하는 이유와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 일이었는지, 업무에 지장을 줄 만한 요소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 어떤 것이 있는지, 내가 대학을 가는 것이 부서의 성과에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든지 등 나의 생각을 전부 피력했다. 면담 결과, 부서장님은 너무 잘한 일이라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입학식을 앞둔 날에는 자리에 오시더니 현금 10만원이 담긴 봉투를 주시며, 입학 선물이라 하셨다. 그동안 겪은 어려움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    학기가 시작되고, 회사의 근태정책까지 나를 도왔다. 우리 회사는 본래 8-5제였으나, 자율출근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자율출근제도란, 6시-13시 사이 자율적으로 출근하여 9시간 후 퇴근하는 정책이었다.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제도였다. 회사 버스는 매시간 30분마다 강남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5시 반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면  9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8시나 되어서야 도착했기에, 나는 4시 반 버스를 꼭 타야만 했다. 자율출근제도가 도입되어 나는 항상 7시에 출근해서 4시면 업무를 마치고, 4시 반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회사의 훌륭한 근태정책과 부서장님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1학년 1학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1학년 2학기가 시작할 즈음, -$%사업부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메모리사업부 (0$팀에서 인력이 필요한데, 나의 업무경력이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 후, 메모리사업부 인사팀 면접을 보고, 나는 사업부 전배를 가게 되었다. 사업부 전배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사업부 내에 인력이 필요하면, 내부에서 찾으면 될 일이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새로운 업무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다. 새로운 부서에 가서도 학교에 다니고 있음을 알렸고, 다행히 학교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고졸 후배들에게 #FTU 1SBDUJDF가 되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    문제는 내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사업부 내에서 부서 이동을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완전히 다른 사업이었고, 정말 신입사원이 된 기분이었다. 방법은 없었다. 지독히 공부하는 수밖에. 학교에 가는 목요일을 제외하고, 월․화․수․금요일은 매일 10시까지 업무를 익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업무도 제대로 못하면서 뭔 공부냐 ”라고 하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나를 더 독하게 만드는 채찍은 오로지 학교였다. 업무는 다행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내가 전배 온 곳은 온양사업장이었는데, 이 곳에는 강남행 버스가 없었다. 근처에 ,59역이 있었으나, 서울역에서 건대입구역은 너무도 멀었다. 혼자 고민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개강이 코앞이었다. 나는 부서장님께 찾아가 “저에게 이러한 문제가 있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라고 여쭈었다. 다행히 우리 부서는 일부는 화성사업장, 일부는 온양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형태였다. 나의 소속 사업장은 온양사업장이었지만, 매주 목요일만 화성사업장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퇴근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원칙상 불가한 일이었지만 부서장님께서 인사팀과 별도로 협의한 후에 얻어낸 수확이었다. 화성사업장에 내 자리와 1$, 전화까지 마련해 주셨다. 98 장려상•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송예진    4년간의 대학생활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회사 정책, 윗분들의 생각이 정말 중요하지만,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동료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업무는 토요일마다 당직이 필요한 업무였는데, 내가 말도 꺼내기 전에 동료들끼리 나를 제외하여 당직 근무를 편성했다. 너무 미안했지만, 토요일 하루 수업을 못 듣는 건 나에게도 너무 치명적이었기에 동료들의 배려를 염치없게도 4년이나 받아왔다. 너무 마음이 예쁜 나의 동료들이었다. 4. 초라한 화분에서도 꽃은 핀다.   4학년이 되는 해에는, 회사 진급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지난 3년간의 업적평가 점수를 합산하여, 진급 여부가 결정되는 방식이었다. 지난 3년이라 하면, 대학생활 3년+직장생활을 병행했던 시간이 아니겠는가. 처음 대학에 입학할 때에는 ‘진급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시작하자.’라는 생각 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업무에 적용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전공과목, 교양과목 가릴 것 없이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업무에 조금씩 가미하여 업무에 임했을 뿐이었다.    나는 4학년이 됨과 동시에 진급 할 수 있었다. 처음에 가졌던 나약했던 나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반성했다. 오히려 대학에 가지 않았다면, 더 어려웠을 진급이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의 첫 부서였던 인재개발그룹의 부장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교육은 콩나물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콩나물에 물을 부으면 전부 콩나물시루 밑 으로 빠져 나가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콩나물이 서서히 자라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교육을 그저 비용이라 생각하지 말고, 투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당장의 작은 변화가 아닌 후에 큰 성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G이 문장은 나에게 있어 꽤 큰 영향력을 가진다. 9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나의 성장을 몸소 느끼는 것과 남에게 인정받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진급은 나의 성장을 남에게 인정받은 첫 번째 성과물이었다.  5. 희망이 소리치는 v의실   하지만 아무리 회사에서 긍정적으로 봐준다 한들, 업무도 끝마치지 않고 학교에 가는 것을 좋게 봐줄 리 만무했다.    회사 일이라는 게 내가 아무리 빨리 마무리해 놓는다 해도, 업무 담당자 혹은 유관부서가 도와주지 않으면 끝낼 수 없는 일이 태반이었다.    다행히, 우리 학과는 전부 직장인으로 꾸려진 학과이다보니, 교수님들의 학생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었다. 우리의 열정은 익히 알고 계시니,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늦었구나.’라는 시선이 학과 내에 존재했다.    나와 같이 지방에서 오는 장거리 학우들, 퇴근직전 과장님께 불려간 학우들, 해외출장에 간 학우들, 도무지 빠져 나올 수 없는 회식까지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때문에, 평일 1교시 수업 지각은 이해해 주시는 편이었다. 학우들이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을 제외하고는 결강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교수님들과 학우들 간에는 ‘끈끈한 전우애’G같은 것이 있다. 신생학과 특성상 교수님들도 ‘우리 학우들도 우리 학과를 빛내보자!’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더 크게 보면 선취업 후진학 제도가 일반적인 진학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우리가 뭔가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도 있었다. 회사를 마치고 부랴부랴 도착해 학교 정문을 볼 때면, 마치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왔구나. 이곳은 안전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4년간 학교는 나의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100 장려상•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송예진   6.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우지 않는a.   4년간의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더 많았지만 지치고  힘든 날도 많았다.    과도한 업무량, 시험, 과제로 인해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곤죽이 되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누가 시켰어  그만두면 되잖아.”G마음속의 불평불만과 몸의 고단함이 이 질문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요, 그만둘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 늦었다. 남들보다는 말이다. 누구든지 처음은 있는 법,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우지 않는가. 오로지 나와 내일의 나만을 비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데 있는 거니까.   나는 인생이란 산맥을 따라 걷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수십 년 걸리는 거대한 산도 있고, 1년이면 오를 수 있는 아담한 산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정상에 서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한 발 한 발 걸어서 올라온 끝에 밟은 정상일 테니 말이다.   드디어 오랫동안 꿈꿔온 대학이라는 산의 정상 위에 4년 만에 서게 되었다. 어쩌면 산을 찾아 헤맨 시간까지 더하면, 9년 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산 정상에 이어진 능선을 딛고, 또 어떤 산으로 가게 될지 너무도 기대된다.    여러분들도 이 정상에 서서 함성을 내지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길 권합니다. 만약,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4년 후 자신을 그려보길 바랍니다. 어떤 선택을 한들, 시간은 흐르기 마련입니다. 한번은 독해지길 기대합니다. 10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2별01전5형년입학생체험수기집또 다른 나를찾는 행복103 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  특별상결코 늦지 않다김현지 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과 105 고졸의 도전 아름다운 날개를 펴다염혜원 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과 115 꿈성지을홍  창향원해대학 가교 는메카 융지합름학길과 “선취업 후진학” 128 이제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다김지은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135 청춘을 선물로 드립니다허혜희 동아대학교 국제무역학과 144 ʻ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ʼ을 통해  시작된 제2의 인생최경숙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예진 155 104장려상•건국대학교 신산업융합학과 송  특별상 결코 늦지 않다 김 현 지 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김현지입니다. 2012년도 재직자 특별 전형을 통해 중앙대학교의 일원이 됐고, 3년간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진학 동기와 준비과정,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10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1. 나도 z이 일하고 싶다   진로를 정해야 했던 중학교 3학년 때, 제 진로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언니가 먼저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한 상황이었고, 저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취업 후 실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졌습니다. 현재까지 근무 중인 첫 직장은 삼성물산㈜G건설부문으로 서무 및 비서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좋은 직장에 감사하며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재직기간이 길어지면서 회사의 이모저모를 알게 됐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생겼습니다. 제법 업무에 능숙해졌다고 생각이 되자 다른 업무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희 회사는 서무업무에서 다른 직무로 변경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다른 직원들과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다른 업무를 배워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업무를 하며 회사생활을 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두려워졌습니다.   그 때부터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어릴 적 진로 고민과는 차원이 다른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답을 찾기에 아직 경험해 본 것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고, 일단 호기심이 생기는 것부터 알아보고 접해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호기심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G회사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원리와 흐름을 알고 싶었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세상을 좀 더 잘 알겠지만, 보편적인 이론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교육기관을 찾아봤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들은 주로 시험을 위한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회사에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필요했습니다.  106 특별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김현지  2. 대학지원을 위한 준비과정   고등학교 선배들을 보면 취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다들 ‘결국 대학에 진학하게 될 거야.’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습니다. 제가 취업할 당시 재직자 특별전형이 축소되는 추세라 선배들의 말처럼 나중에 제가 대학진학을 필요로 할 때 전형이 모두 없어지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한창 관심을 두고 대학을 찾아보던 2009년, 고등교육법시행령이 개정되어 재직자 특별전형이 도입되고, 정부의 ‘선취업 후진학제도’G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기존에 제도를 운영하던 야간학부 대학에 더해 더욱 쟁쟁한 대학들이 추가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일단 대학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봤던 것은 저의 관심분야를 배울 수 있는지, 양질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그 외에 통학이 가능한 거리인지, 수업시간과 학교생활 등을 살폈습니다. 그 당시 중앙대, 건국대, 국민대, 경원대 등 많은 학교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조건에 부합하는 곳은 2010학년도부터 도입된 중앙대학교 글로벌지식학부(현재 지식경영학부)였습니다. 하지만 신규로 개설된 학부였기 때문에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그 당시 입학조건인 재직 기간 3년을 충족시킬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학부의 성장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11학번으로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들이 많이 입학했습니다. 그로 인해 학교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에 대한 확신이 커졌습니다. 지식경영학부가 제시하는 체계적인 커리큘럼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확인했으며, 열정적인 교수진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선후배 간의 친목을 위한 여러 행사와 학부의 권리 보호와 신장을 위해 구성된 학생회의 성과도 접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재직자라는 이유로 학습의 강도가 낮다거나 관리를 느슨하게 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는데, 친구들에게 학습 강도나 과제 등 주간수업에 뒤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끌렸습니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대학생활을 통해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 대학에 진학해볼 것을 적극 권유받았습니다. 10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진학에 대한 기대감과 열망은 커졌습니다. 동기부여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에 본격적으로 2012학년도 재직자 특별전형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일단 학교생활을 위해선 정시퇴근이 필요했고, 상사의 추천서를 서류에 첨부해야 했기 때문에 회사에 양해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혹시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용기를 내서 전무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셨고, 직접 추천서를 써 주셨습니다. 이제 입학원서를 꾸미기 위한 사진을 찍고 저를 돋보일 수 있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취업준비를 위해 자기소개서를 쓴 이후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초안을 만들고 선생님인 지인의 도움을 받아 자기소개서를 완성했습니다.    기쁘게도 서류에 합격했지만, 면접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면접 후기를 찾아보니 ‘편하게 이야기하다 오면 된다.’와 ‘압박면접이니 각오를 단단히 해라.’의 두 의견으로 나뉘었습니다. 한껏 긴장한 상태로 면접장에 들어섰고, 절 포함한 지원자 2명과 면접관 세 분이 계셨습니다. 저의 경우 후자인 압박면접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무슨 답변을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정신이 없었고, 떨어졌다고  낙심하며 귀가했던 기억이 납니다.   드디어 최종합격 발표날이 왔습니다. 발표시간만을 기다리며 불안과 초조의 끝을 보았고, 최종 합격을 확인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슴 벅참에 눈물까지 핑 돌았습니다. 이 마음을 졸업할 때까지 잊지 않기로 다짐했고, 이제 한 학기만 잘 마치면 지식경영학부의 3번째 졸업생이 됩니다.    * 공들여 준비한 입학원서와 합격자 조회 화면 108 특별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김현지  3. 긴박했던 10시e의 시험   1학년 1학기 때 수강했던 경영학원론 수업은 긴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혹독한 신고식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수업에 참여했는데, 강의와 수업자료 모두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강의였습니다. 영어와 천적인 우리는 모두 당황한 상태였습니다. 그걸 알아챈 교수님께서는 차선책으로 영어로 한 번, 한글로 한 번 강의를 진행하셨습니다. 채 적응도 하지 못했는데 교수님께서 과제를 내 주셨습니다. 자기소개와 교수님에 대한 정보를 포함한 강의노트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첫 수업에서도 교수님의 카리스마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과제를 하며 교수님의 정보를 찾아보니 엄청난 경력과 전공수업 3개의 위엄을 갖는 수업이라는 중앙대 학생들의 평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매주 수업 후 리뷰를 적어냈고, 수업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담은 노트를 만드는 것이 기본 과제였습니다. 수업의 교재는 따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스스로 수업내용에 대한 부가적인 정보를 찾아서 교수님이 강조하시던 $SJUJDBM NJOE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적어야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미친 듯이 했던 필기와 녹음했던 수업내용을 모두 옮겨 적는 것만도 4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때때로 여러 권의 책을 지정해 독후감을 작성하는 과제를 주시거나 미래의 $7  ($VSSJDVMVN 7JUBF)를 작성하는 등 각종 미션을 부여해 수강생들이 주말에 편히 쉴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이로 인해 강의 취소 기간에 절반의 학생이 버티지 못하고 수강취소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오기가 생겨 더욱 강의에 매달렸지만, 항상 교수님의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해 혹평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과제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교수님의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10시간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준비물은 개인 컴퓨터, 두 개의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은 10시간 이내에 문제에 대한 답을 만들어 제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10페이지에 달하는 시험지를 보곤 말을 잃었고, 심지어 문제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조차 힘에 부쳤습니다. 평소 10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면 까마득히 긴  10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시간이었지만, 시험을 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의 평가는, 3FXPSL! 모두 다시 만들어 과제로 제출해야 했습니다.   정말 힘든 수업이었지만 열심히 했던 만큼 +라는 좋은 성적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웃으면서 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뿌듯했고, 수업을 통해 교수님의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단적인 예로 과제와 시험을 모두 카페에 올렸었는데, 교수님께서는 어김없이 과제제출일 다음 날에 학생 한 명 한 명의 글에 댓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 작업은 교수님께서 항상 강조하신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잘 선별해서 사용하고, 그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길 원하셨던 바람이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합쳐진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한 학기 동안 값진 경험을 했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삶과 학교생활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4. 적극적이라면 누구든 누릴 수 있다   한 학기에 보통 18학점씩 수강합니다. 평일엔 3회 이상 전공수업이 있고, 주말엔 교양수업을 듣는 등 6_7개의 과목을 듣습니다. 특히 평일 수업이 7시부터인 것이 큰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재직 중이라도 여건만 된다면 다른 학부의 수업을 수강할 수도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다른 학부 학생들과 토론수업을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의 주제로 그룹토의를 했는데, 사회생활을 하는 지식경영학부 학생들과 일반 학과생들의 생각은 작은 듯 큰 차이를 보였고 미묘한 긴장감이 돌았던 흥미로운 수업으로  기억합니다.   학부에는 막강한 학생회가 주도하는 많은 행사가 존재합니다. 신입생을 위한 05, 모든 학년이 참여하는 .5와 체육대회, 여름이면 생각나는 농촌봉사활동, 국·내외 현 장학습 프로그램 등 대학생활을 즐길 수 있는 많은 행사가 있습니다. 초반에는 학교  내에서 ‘지식경영학부’라고 하면 잘 모르는 학우들이 많았지만, 학부에서 부총장 초청  110 특별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김현지  간담회 등을 주선해 우리의 건의사항을 피력하는 등 많은 노력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학생들의 소원이었던 주말 전공수업 개설과 학습환경 개선 등 많은 성과를  얻었습니다. 추가로 최근에 생긴 멘토링 프로그램을 간략히 소개하면, 주요 과목별로 중앙대학교 박사과정에 있는 선배님들과 학생들을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학업의 질을 높일 좋은 기회입니다. 저는 노사관계론 과목의 멘토링 활동을 통해 노사관계와 노사협상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했고, 그보다 좋은 멘토를 만난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앞으로 학부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후배들은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으리 라 생각됩니다.   ‘학비 때문에 대학진학은 엄두도 못 내겠어요.’G이런 고민은 잠시 접어두셔도 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를 비롯해 집안 형편으로 인해 특성화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바로 취업을 선택한 분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학비는 큰 부담이고, 본인이 학비와 생활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 큰 부담입니다. 당연한 말일지 모르나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에게 장학금에 대한 동등한 기회가 주어집니다. 국가장학금, 중앙사랑(자체장학금), 성적장학금, 외부장학금 등 학교 게시판을 수시로 확인한다면 학비의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습니다. 그 외 학교에는 크고 작은 행사가 많은데, 학교 게시판과 학교에서 수시로 보내 주는 메일만 잘 확인한다면 등록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얻어갈 수 있습니다. 소소한 팁을 공유하자면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수강신청테스트 기간이 있습니다. 이때, 수강신청테스트를 신청하고 테스트 후 게시판에 간단하게 글을 남기면 문화 상품권을 받을 수 있는데 이걸 활용해서 다음 학기 교재를 사는데 씁니다. 이처럼 학교생활에 본인이 얼마나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대학생활의 질이 달라집니다. 11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 포천 사과농장에서 있었던 농촌 봉사활동 사진 5. 멘토를 a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   사실 학교와 직장을 병행하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우리보다 다양한 경험을 한 뛰어난 선배들이 많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 모두 조심스럽고 친절하게 대해 주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회사에 다니고 나이를 먹을수록 많은 고민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동기나 친한 직장동료 혹은 파트장님 등에게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고민을 나누다 보면 상대방이 지나온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고 다양한 조언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도 정말 잘 생각했다며 같이 기뻐해 주셨고, 이따금 학교생활에 관해 묻기도 하십니다.   가끔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가 벅찰 때가 있습니다. 한참 고민해보고 알아봐도 도저히 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면 맛있는 간식을 사 들고 회사 지인에게 조언을 얻기도 합니다. 학기가 거듭되고, 대학생활에 많은 관심을 두시던 차장님과 예산 관련 이야기를 하던 중 돌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경영학도가 다 됐네_’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전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관점이 바뀌었다고 말씀해 주셨고, 저도 차장님도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또, 수업을 듣고  회사에서 평소엔 들리지 않던 용어들이 들리고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면서 회사생활 112 특별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김현지  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이것을 통해 업무효율이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 습니다. 6. 대학생활을 돌아보며   진로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평생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대학진학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난 잘하는 것이 없다.’는 소극적인 생각에서 ‘뭐든 하면 잘할 수 있어.’라는 당찬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생각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은 언어와 의사소통 수업부터였습니다. 강의실 앞으로 나가 팀별로 토론하는 수업이었는데, 토론이 끝나고 교수님께서 개인발표와 토론을 칭찬하시며 소질이 있으니 공부를 더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이 칭찬에 힘입어 발표에 재미를 붙이게 됐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교육하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부의 다양한 수업을 통해 미처 알지 몰랐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목표를 세우는 즐거움도 알게 됐습니다. 1학년 1학기 때, 운이 좋게 성적장학금을 받게 됐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학비 부담이 줄어들어 마냥 기뻤습니다. 혹독했던 경영학원론 수업도 무사히 마치고 자신감이 붙었던 차에 조심스레 조기졸업(7차 학기 졸업)과 매 학기 성적장학금 수혜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이 불가능할 것 같던 목표는 3학년 2학기(6차 학기)를 마친 지금,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성적이 목표이긴  했지만,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보다는 학교의 유명한 교수님들의 수업을 찾아  들으며 고생하며 얻은 성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값졌습니다.   ‘선취업 후진학’,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사람들에 비해 출발이 늦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 이름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고, 졸업해서는 안정적이고 번듯한 직장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맹목적으로 그 목표만을 향해 달리다가 꿈에 그리던 목표를 달성하면 그 기쁨도 잠시,  11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현실을 부정하며 쉽게 지치고 방향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학과와 원치 않는 일이지만 안정적이고 비전이 있어서 선택한 경우엔 더욱 심합니다. 그에 비해 ’선취업 후진학’을 선택한 우리는 사회생활을 먼저 해보고,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시작한 만큼 동기부여가 확실하고 방향이 뚜렷합니다. 설령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한 곳의 일이 본인과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회생활을 먼저 경험해 봄으로써 해보지 못해 가지는 막연한 동경이 아닌 현실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더 객관적이고 장기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점차 확대되는 재직자 특별전형은 우리에게 더 큰 선택의 폭과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이 때문에 충분한 홍보를 통해 고교, 대학 기업 등 제도에 대한 인식을 높여 유지됐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재직자 특별전형을 통해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려는 분들에게 꾸준한 건강관리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낮에는 업무에 시달리고, 평소라면 쉬어야 할 저녁 시간에는 성실한 학생으로 생활해야 하므로 매우 피곤합니다. 종일 이어지는 토요일 수업과 과제로 휴식시간을 만들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제 방책은 방학이면 푹 쉬고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우는 것이었는데, 학기를 시작했을 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렇게 고된 생활에 지치긴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114 특별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김현지  특별상 고졸의 도전 아름다운 날개를 펴다 염 혜 원 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문자 알림음이 들려왔다.- ‘중앙대학교 합격자가 발표 되었으니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마, 정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와 컴퓨터를 켜서 합격 조회를 해보았다.  ‘합격입니다. 당신은 자랑스러운 중앙대생이 되셨습니다.’ 11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아, 드디어, 드디어 나의 두 번째 목표가 이루어졌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 2011년, 인천세무고등학교 -   나는 이곳의 학생이었다. 외모에 신경 안쓰는, 단발로 마구 자른 머리, 검은 뿔테안경, 심각한 난시 오목렌즈 때문에 작아보이는 눈! 나의 목표는 오로지 공부, 공부! 무조건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 내가 성공해야 행복하고, 우리 가족이 행복하고, 내 삶이 바뀐다고 생각하며 수업을 열심히 필기하고 있었다.   2년 전 명문 인문계에 들어갔다가 전학을 왔었을 때도 정말 심각한 마음의 폭풍우를 겪었더랬지. 그녀는 공부하면서 과거 생각을 하고 있다.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친구들과 열심히 공부하면 분명 좋은 대학교에 들어갈 거야_’라는 생각을 하고 인천 내에서 제일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인문계로 들어갔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바와는 너무 다른 실태에 실망 뿐 아니라 온갖 스트레스에 몸이 안 좋아져서 입원도 했었더랬지.   공부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자율적으로 하지 못하게, 매일 매일 내신을 잡기 위한 숙제가 수십 개씩 늘어났고, 영어 부장으로서 하루에 영어단어는 50개씩 꼭 외워야 했고 외워 왔다. 야간 자율학습은 더 이상 자율이 아니었고, 내가 좋아해서 했던 공부는 흑빛으로 변해갔다. 새벽 2시에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는 하루하루가 반복되었다. 방학 없고 쉴 틈 없는 하루하루. 이것이 우리 고등학생 모두가 겪어왔던 하루하루였겠지. 학문을 깨우치는 것이 아니고 경쟁만을 위한 공부를 죽도록 해왔었지.   ‘난 이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G내 마음속에서 작지만 큰 외침이 들려왔다. ‘내가 원하는 공부는 이런 게 아니었어. 행복한 공부였다고,’………. 난 공부하기를 좋아했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재밌어서 했다. 하다보니까 욕심이 생기고, 좋은 대학을  116 특별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염혜원  가고 싶은 열망도 생겼다. 하지만 더 이상 공부에 재미는 없었다. 마치 온몸의 기가 빨려가듯 볼살이 점점 없어지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을 뿐인데 두 코에서 비린내 나는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입술은 양기를 잃어가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일찍 학교를 마치고 병원에 가서 핏줄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노오란 영양제가 내 몸으로 들어간다. 내가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은 그 링겔을 맞는 두 시간밖에는 없었다.  결국 결단을 내렸다. 이러다가는 내게는 어느 발전도 없다. 남들이 다 이 길이 옳다고 하더라도, 나에겐 나만의 길이 있고, 나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더 자율로 공부할 수 있고, 내 시간이 많고, 내신도 더 쉽게 받을 수 있는, 상업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야겠다! 내신도, 수능점수도, 나에겐 더 플러스가 될 수 있다!   부모님께 나의 상황에 대해 솔직히, 또 설득적으로 나의 마음에 대해 털어놓았고, 부모님도 나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시고 전학을 가는 것에 동의해 주셨다. 상업고등학교 중에서도 명문으로 불리던 인천여상, 중앙여상 등등 다 전화를 해보았지만... 우리는 이미 정원이 다 찼기 때문에 전학생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최후의 선택으로, 마지막으로 전화했던 인천세무고등학교... 그 학교에서는 너무나도 기뻐하며, “우수한 인재가 들어오는군요!”G하고 말하시며 흔쾌히 전학을 허락해 주셨다.   2년 후, 나는 내가 계획했던 대로 스스로 공부하며, 건강을 되찾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이기적이게 변했던 나의 성질이 다시 온순하고 아름답게 변해갔다. 하루하루가 기뻤고, 나의 선택에 만족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우수한 내신은 물론이고, 우수한 수능 성적을 이루기 위해 내 스스로의 시간을 가지며  매일 공부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모의 창업 경진대회를 열게 되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로 사업 전략을 짜고, 홍보 전략을 짜고, 어떻게 해야 사업이 성공할지, 어떤 순서대로 사업을 시작할지 등에 대해서 계획을 짜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던 것을 직접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의이지만 너무 재밌게 창업에 대한 나의 아이디어를 짜고  11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15를 제작하여 제출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교내에서 1등상을 받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전국 특성화고교생 사장대기 창업대회’라는 전국 대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때가 나의 첫 사회진출 경험이었을 것이다. 나의 창업 아이디어에 대해 발표하고, 직접 제작한 홈페이지, 아이디어에 대해서 신나게 심사위원들 앞에서 설명했다. 하지만, ‘별로 안 좋은 아이디어 같다. 대기업에서 가로채갈 것 같다.’G등등의 압박과 상처를 주는 다양한 질문들이 오갔고, 그 질문에 속으론 당황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계획했던 나의 아이디어가 굉장히 별거 아닌 양 취급 되었던 상처 때문에, 면접 후 나오자마자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며 ‘반응이 정말 안 좋았다! 너무 마음이 안 좋다’며 가는 내내 눈물을 그치지 못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런데 며칠 후, 대회처에서 연락이 오게 되었다. 그 결과는 나도 생각지 못했던, 지원자 수백 명 중에서 1등상인 지식경제부 장관상을 받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때의 놀라운 경험을 통해 ‘무조건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진출을 먼저 하는 것도 가능하겠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 첫 번째 하늘이 준 기회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놀라운 경험이 있었지만, ‘일단은 대학교에 먼저 가서 다양한 것을 먼저 배우자!’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여름방학 내내 공부를 하고, 개학을 하고 나서도 모의고사 점수를 체크하고 있었던 가을의 어느 한  때였다.   “염혜원 학생은 교무실로 잠깐 오거라.”G한결같았던 몇 달간의 나에게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궁금증이 오가는 선생님의 호출이셨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며 교무실로 친구들과 향했다. 그 때 들었던 말은 참 그때로선 생각지도 못했던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이번에 산업은행에서 성적 5% 이내로 드는 학생 한정으로, 산업은행 정규직 지원을 할 수 있게 한다는구나! 너 지원을 한번 해보겠니 ”G우리 학교는 아직까지,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대학교,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취업. 이라는 분위기가 컸다. 그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에서 좋은 조건으로 고등학생을 채용한 적은 한번도 없었기  118 특별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염혜원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려해도 무조건 대학생, 사소한 일도 학사 학위가 있어야지만 진급 할 수가 있고, 좋은 연봉을 받으려면 꼭 학력은 필수였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했다. “……아니요!”G그렇게 말은 하고 넘어갔지만, 하지만 대체 왜 우리를 뽑으려는 거지  궁금한 마음에 채용 지원의 공고문을 진지하게 읽어보았다. “정규직과 똑같은 조건! 연봉, 사내대학 지원 등등..”G어  내가 생각 하던 거랑 다르네      정말 이번에는 달랐다. 국가에서 고졸 채용기회를 늘리기 위해, 딱 우리 때부터 갑자기 제도를 시행했다고 했다. 똑같은 조건으로 고졸을 뽑는다는 것. “아니요!”G하고 말하고 갔지만 수업시간 내내 산업은행  산업은행은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유명한 은행인가  연봉은 정말 똑같이 줄까  한 번 해볼까  대학은 어찌하고  뭐가 나의 옳은 길일까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해보았다. 어머니께서는 산업은행이라는 말을 들으시자마자 깜짝 놀라시며, “무조건 지원해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 은행은 공기업이고, 정규직이고 똑같은 조건이면 분명히 대학교에 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께서는 반대였다. 취업을 먼저 해서 뭐하냐  대한민국은 무조건 학력이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나중에 하대취급 받으면 분명 후회할거다. 처음에는 나도 아버지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항상 취업보다는 학력!”이었으니까. 나중에 어떤 회사를 가도, 회사 내에서 진급을 해도, 결혼을 해도, 추천을 받더라도 항상 학력이 껴있다는, 어찌 보면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 살면서 보수적으로 자리 잡힌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도 일리가 있었다. 대학교에 나와도 들어가기 힘든 회사를, 똑같은 조건으로 간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기회다. 그쯤에는 나는 고민이 많았다......   수능공부를 매일 하긴 했지만, ‘과연 내가 좋은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까 ’G하는 고민이었다. 매일매일 공부를 하면서 어느새 내 머리는 포화상태였고, 수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심지어 전학 와서는 내내 내신이 1등급이었지만, 인문계 때 받았던  11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중간수준의 등급 때문에 내 전체내신이 2등급으로 내려가 버려 모든 대학교 수시에 다 떨어지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특성화고에서는 적어도 1.5등급은 되어야 좋은 서울권 대학을 갈 수 있는데, 나는 내가 원하는 대학교는 당연하고 심지어 서울권 하위학교도 수시에서 떨어지는, 참극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신으로는 대학교 엄두도 못내 보고 오로지 정시만 보고 대학교 지원을 해야 했다. 선생님들께 물어보자 지금 이 성적으로는 내가 목표로 하는 대학보다는 낮지만 서울권 하위학교정도는 지원을 할 수 있다고 하시는데, 그 쯤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두려움이 커져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다 수시에 붙어가고, 합격이 되가는데 나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때에 대학교 수시 지원 모집 공고를 자세히 보면서, 발견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특성화고교 졸업자 재직자 전형”이었다. 특성화고교를 졸업하고 3년 동안 재직만 하면 지원을 할 수 있는 제도였다. 서울상위권대학, 특히 내가 평소부터 목표로 삼아왔었던 중앙대학교에서 이 제도를 특히! 활성화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만약 산업은행에 들어간다면  좋은 기업이니까 대학교에 입학할 확률도 높아지겠지  그리고, 3년 동안 학비도 벌 수 있고, 친구들은 힘들게 아르바이트하고 겨우 학교 다녀도 나는 돈 벌면서, 해외여행도 갈 수 있을 것이고, 좀 더 배우고 즐길 시간도 많을 것이고, 빚 없이 학교를 다닐 수도 있고, 이거 정말 일석이조가 아닐까  생각해보면 해볼수록 은행에 들어간다는 것이 정말 큰 메리트로 자리 잡아 가는 것이다. 그렇게 꿈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 다음날 학교에 가자마자,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산업은행, 아직 안 끝났나요 ”G내 모습에 조금 당황하시고는 하시는 소리는 안타깝게도 “이미 버스 떠났다.”라는 말이었다.   “버스 떠난 거! 열심히 뛰어가서 잡을게요! 저 하고 싶어요!”라는 내 말에 어이없어 하시면서도 웃으시며 “그래,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다시 오거라.”라는 말씀이었다. 단호하셨던 선생님의 마음을 푼 것이다. 수업 끝나고 교무실에 가서, 산업은행 지원을 위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서류 통과와 필기시험, 면접 통과를 위해 산업은행 지원자 5명으로 좁혀진 우리 친구들은 매일 저녁까지 남아 면접 준비와 서류 준비 120 특별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염혜원  를 하게 되었다. “산업은행에 대해 우선 잘 알아야한다!”로 시작해, 기업에서 좋아하는 인재상, 태도, 사회에서 필요한 애교, 그리고 동료들은 우선시하는 마음씨 등등 하나하나 자세하고 스파르타식으로 배우게 되었는데, 이때 우리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기업은행 퇴직자로서 몇백 대 일 경쟁률을 뚫고 학교에 취직하여 창업 담당 선생님으로 들어오신 분이셨다. 지금까지도 너무 감사한 사람, 스승님, 귀인이시고 해 주셨던 단어, 말씀, 모두 다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드러나셨다. 기업은행에 재직하셨던 분이셨기에, 산업은행과 같은 금융 공기업이었던 기업은행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는데, 산업은행이 대기업 담당이라면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을 담당하고, 요즘에는 57에 $도 많이 나오는 은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알아가던 와중, 기업은행에서도 마침 채용 공고문이 도착했다. 산업은행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업은행에 지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갔다. ‘기업은행도 똑같이 좋은 곳이고, 똑같은 금융 공기업이고, 또 혹시나 산업은행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에 “지원할게요!”G하고 지원서류를 제출했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욕심쟁이 아니냐며, 산업은행에 붙을 건데 왜 기업은행에 지원하냐며 매서운 눈초리를 받고 ‘내가 잘못한건가...’G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때 기업은행에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인생의 모든 것이 바뀔 뻔 했다. 그러나 고작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학교에서 선망 받는 엘리트였고, 산업은행은 당연히 붙을 것이라고 선생님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나 또한 그런 말을 듣고 안에서 피어나는 자만감, 자신감은 이루 말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서류에 합격하고 필기시험도 가볍게 통과한 후. 면접을 보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학교 면접도 가보고 다른 회사 면접도 보고 했으나 나는 정작 아무것도 경험한 것이 없었다. 한마디로 서류형 인간이었고 실전은 아무 것도 겪지 못했던 것이었다. 면접 보는 날, 과도한 긴장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토론면접은 보는 와중 아버님께서 “항상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보여라.”라고 한 것을 기억하고 토론 중 반론을 해야 할 때 반대편 사람의 의견도 “옳습니다.”라고 말을 꼬박꼬박 했으나 오히려 그 말 때문에 토론의 긴박감이 떨어지고  12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상대편의 기만 살리는 꼴이 되었던 것 같았다.    대면면접에서는 자기소개 시간을 초로 재며 하셨는데 내가 준비한 것들을 다 말하지 못한 채로 끝났고 팀원끼리 지정된 주제에 맞춰 팀을 짜고 업무 분담을 하여 15발표하는 것에서는 모든 지원자들이 전부 다 의욕이 앞서서 결국 평소의 모습보다는 잘하는 사람들끼리의 경쟁이기에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당연히 최선을 다했고 ‘산업은행에서 나를 안 붙이면 정말 바보일거야!’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만의 오만한 착각이었던 것일까  떨리는 결과 확인 날. 화장실을 수십 번 가기도 하고 하루 종일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저녁까지 결과가 안 나왔었다. 집에 들어가서 떨리고 무서운 마음으로, 합격확인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청천벽력 같은 ‘불합격’. 그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 하늘이 노래진다는 것을 19살,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겪었었다. 수능도 포기하고 내 모든 것을 투자했는데, 어렸던 나는 주변의 기대에, 당연히 된다는 말에 철없이 동화되어 버렸던 것인지 모른다. 또한 지금껏…G큰 실패 없이 살아왔던 삶에 대한 첫 고통에 대한 배움의 눈물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노래진 하늘에 나는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다음날은 아무 일도 없는 것 마냥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활개치며 다녔던 게 나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애들아! 안녕_ 안타깝게 떨어졌지만 다음엔 더 잘될거야!”G그때의 그 활발한 모습은 지금까지도 선생님께서 ‘그때의 너의 모습은 당황스러운 정도였다.’고 기억하시곤 한다. ‘어제 그렇게 울면서 전화했던 내가 다음날 얼마나 슬픈 모습일까.’G하고 걱정하셨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활발한 모습이었다고. 그 때 네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고. 그 소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작 회사에 떨어진다는게 끝이 아니라고. 인재를 찾아줄 회사는 아직 많고 이런 나를 알아봐 주는 회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왜 지원을 하냐며 눈초리를 주었던 그 회사, ‘기업은행’에 나갈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서류결과와 면접이 한참 남아있던 터라,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까웠던 나는 다양한 대기업에 지원을 했다. 459, 인천국제공항공사, 삼성 바이오로 122 특별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염혜원  직스, 그리고…G내게 또 하나의 기회를 준 ‘,#4 스카우트’G프로그램. 그것은 ,#4 157에서 새롭게 생긴 신흥 프로그램으로, 특성화고교 학생들이 서바이벌을 하여 대기업에서 1명만 선발하여 뽑는 프로였다. 때마침 ‘기업은행’편이 방영 기획을 했고, 내 친구에게 이메일로 지원하라는 권유문서가 갔던 것이다. 심지어 나에게는 지원하라는 메일도 가지 않았으나,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열망이 내 안에서 다시금 떠오르게 된 것이었다. 친구는 “그런 거 창피하게 왜 하느냐, 얼굴도 팔리고 나중에 선발되면 집으로 와서 인터뷰도 하고 가족도 다 나온다는데, 나는 안하겠다. 너도 하지 말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나는 뭔가 하고 싶었다. 가만히 있기에는 산업은행의 여파가 너무 컸던 것이다. 결국 선생님께 말을 하고 ‘스카우트’에 지원을 하였고, 전국 모든 특성화고 학생들 약 200명이 모여 첫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사실 나는 ‘끼’가 있다. 남들 앞에서 뭘 하는 걸 좋아한다, 노래하는 거, 개그하는 거, 춤추는 거, 연기하는 거, 다 좋아한다. ‘57프로에서도 끼 있는 아이를 좋아하겠지  그러면 나의 모든 끼를 온몸으로 보여 주자!’라는 내 생각은, 딱 맞았다. 면접 때 가자마자, 장기가 있냐는 질문에, 한때 열풍적으로 인기였던 걸그룹 티아라의 ‘롤리폴리’를 입으로 반주까지 노래 부르며 춤을 완벽하게 춰보였다. 나의 춤으로 면접 분위기는 완전히 발라당 뒤집어지게 웃는 분위기로 싹 바뀌었고, 그 뒤에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은 호감도 백퍼센트로 무슨 말을 하던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되었고, 미안한 일이었지만 바로 옆에서 면접 보는 아이가 내 롤리폴리 소리를 듣고 너무 당황해서 외운 것을 못 말할 뻔 했다며-지금은 동기이지만- 아직까지도 그 기억이 난다고 한다. 당연히 나는 1차 면접에서 통과되었고, 기업은행 합숙소에 들어가 2박 3일 2차 면접 15발표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때 전국에서 올라와 선발된 본선진출자 15명의 아이들과 정이 쌓이고 기업은행의 상품에 대해, 또 연수원에서 생활하며 은행원으로 들어오면 정말 좋겠다! 라는 꿈결 같은 희망도 생기게 되었고, 대망의 2차 면접의 날 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G다양한 카메라들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얼마나 뛰어났었는지, 긴장 12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감 없는 내 모습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빛을 발했는지,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때때로 말하곤 한다. “난 너를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라고…G산업은행에서 면접을 보았던 그 압박과 긴장감은, 스카우트 프로그램의 너무나도 작은 성공 확률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하나도 긴장이 안 되어, 면접관이 무슨 말을 하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던 것 같다. 마치 무슨 질문을 하든 다 나올 말이었다는 걸 알았던 양 술술 대답했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또 당당하게 롤리폴리를 한 번 더 추었고, 또 내가 말 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었기에 나의 본성에 대해 더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면접은 모두 녹화되어 아이들과 기업은행 담당자분들 앞에서 발표되었고, 처음 합숙할 때의 낯설음 때문에 크게 눈에 띄지 않았던 내가 면접이 끝나자마자 정말 잘했다며 차장님 과장님께서는 나에게 포옹해 주었고, 많은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와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던, 찬란한 꿈같던 순간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스카우트라는 프로그램에서는 결선 진출까지는 못하고 내려와야만 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애들도 많았었지만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슬픔이 주가 되지 않았다. 기쁨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나타내었다는 그 기쁨. 꿈같았던 순간. 용기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크나큰 선물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때 배웠던 용기와 사랑, 진정한 자신감이 나에게 평생 갈 큰 선물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스카우트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나는, 프로그램에 나가기 전에 이미 지원했었던 기업은행 채용모집에 서류 합격 후, 면접할 기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꿈을 가져다  주었던 기업은행과 스카우트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면접 당일, 긴장감은 한층 낮아졌다. 나는 긴장감이 없을 때 가장 잘 할 것이라는 것을 이제 그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맨 처음 자기소개를 하는데 기업은행은 편안한 분위기로 시간도 재지 않고 해서 더 나를 잘 표현할 수 있었다. 중학교 때 성적 400등을 올렸던 것, 창업대회 상을 받은 것, 뛰어난 홍보력으로 초등학교 때 만든 카페가 회원 수 1,000명을 달성했던 것 등등. 그런데 촌철 살인같았던 질문이 다가왔다. “창업대회 상도 받았고, 그렇게 똑똑하면 밖에서 창업을 하지 그런 우수한 성적으로 왜 기업은행에 지원하려고 하나 ”는 질문이었다. 사실 모든 기업에서 생각하는 질문이었다. 왜   124 특별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염혜원  그렇게 스스로 우수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은행원 하려고 해  왜 기업에서 회사원으로 살려고 해  모순 아니야    그 질문을 했을 때 면접을 보는 아이들 입에서 “헉!”G하는 소리가 조용히 면접관에 울려 퍼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질문이 나는 고맙게 느껴졌다. 당연히 물어봐야 할 질문이었고, 이 질문 하나에 당락 여부가 결정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는 기업은행의 뛰어남을 알고 있습니다. 기업은행은 지금까지 한번도 타은행과 합병한 적 없이 스스로 성장했으며, 금융 공기업인데도 안주하지 않고 발전하려는 점, 특히 전 세계로 진출하려고 하는, 또 다양한 걸 시도해보려고 하는 점이 저의 성격과 닮았습니다. 이러한 회사에 들어가야 회사와 제가 같이 성장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회사에서 일 할 수 있어야 저의 이러한 우수한 점들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원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 떄G면접관분들께서 “와…”G하고 작게 감탄사를 내지르는 걸 들을 수 있었고, 모두 다 동시에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이 지금도 어찌나 가슴을 울리고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면접을 끝내고 가서 며칠 뒤에 확인한 결과는, 수많은 실패 뒤에…. 드디어 ‘합격’이라는 두 글자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린 나이로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때 인생의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한층 더 저는 빛을 발하고 더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은행에 들어가서 곧바로 깨달았다. 저는 은행에 들어가자마자 처음에 무서운 언니 때문에 2년 동안 거의 왕따를 당했던 것 같다. 저는 그런데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지금껏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그를 통해 성공과 행복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를 일부로 괴롭히려 하고 잘 가르쳐 주지 않아도 뻔뻔하게 물어보고, 신입으로서 하기 어려운 것을 해내보이면서 점차 인정을 받아갔다.   동기인 친구들은 처음에 업무를 거의 안 맡고 신입이라고 이해해 주는 언니들 얘기를 자연스럽게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대학교도 가지 않고 어린 나이에 본인과 똑같은  12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위치에 들어온 제가 많이 샘나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일반 직원들과 똑같이 많은 업무를 맡게 되었고 심지어 조금 일이 늦게 끝나면 당연히 못하는 게 맞는데, “왜 못하니 ”, “너는 실력이 너무 없는 거 아니니 ”라며 타박을 줬다. 심지어 고객 앞에서도 “너는 머리가 안 좋다. 멍청하다.”며 한 달된 저의 실수를 타박하기도 하였고. 치매있냐는 말까지 하며 많이 괴롭혔다. 심지어 어느 날은 따로 불러내어, “너 그만 다닐 거 아니냐. 대학교 갈 거 아니냐. 감히 점심시간에 점심시간 팻말을 안 놓고 가냐.”G등의 사소한 이유로 시비를 걸며 은근슬쩍 그만두라는 압박까지 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난 거의 적이 없는 편이고 대개의 사람들과 성격도 잘 맞고 친한 편이 많았다. 만약 다른 친구들이었으면 1년도 안 되서 그만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았고 그냥 짜증났을 뿐 내 스스로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점점 새로운 사람들이 올 때마다, 내가 정말 열심히 잘해 주고 친해지면서 점점 저의 편을 늘려갔다. 은행의 좋은 점이 성격이 안 맞는 사람이 있어도 언젠가는 다 사람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그 언니는 내가 온지 2년 되고 나서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났고, 드디어 나의 세상이 펼쳐졌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제가 회식 분위기를 주도하기로 하고, 아침에 고객 서비스 강의를 제가 맡아 하고, 실적도 1등을 하는 등 은행에서 활개를 치고 다녔다.   지금 나는 지금은 새로운 지점에 와서 더 가족 같은 분위기의 사람들과 지내고 있다. 일이 힘들거나 하면 같이 고민도 들어주고, 놀 때도 재미나게 놀기도 하고, 서로 실적이 잘 나오게 도와주기도 하며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 팀장님은 아버지 같아서 장난도 치기도 하고 딸처럼 애교도 부리기도 한다.    마지막으로…G퇴근 하던 어느 날.- 띠링!  문자 알림음이 들려왔다.- ‘중앙대학교 합격자가 발표 되었으니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126 특별상•중앙대학교 지식경영학부 염혜원    설마, 정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와 컴퓨터를 켜서 합격 조회를 해보았다.  ‘합격입니다. 당신은 자랑스러운 중앙대생이 되셨습니다.’   항상 고통 뒤엔 행복이 따른다는 말이 진실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고난을 겪고 행복한 걸 보면요. 이번에 재직한지 3년이 지나 드디어 제가 대략 십년 전부터 꿈꿔왔던 대학의 꿈을 이루게 되는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2015학년도 중앙대학교 경영경제학부 지식경영학과 염혜원 학생>   이것의 저의 현재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저는 앞으로도 이뤄야 할 꿈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앞으로도 더욱더 많은 것들을 이뤄내는 저를, 계속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12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특별상 꿈을 향해 가는 지름길“선취업 후진학” 성 지 홍 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나는 고교시절 소위 말하는 ‘불량학생’이었다. 공부하는 것이 죽기만큼 싫었고, 친 구들과 모여서 노는 것이 좋았고 학교도 잘 안가는 학생이었다. 때로는 탈선도 하며 부모님이 학교에 불려오기도 하였다. 내가 대한민국 기계가공명장을 꿈꾸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은 그렇게 단단하고 높아 보였던 부모님이 처음으로 나의 탈선 때문에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본 것이었다. 하지 않던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고, 학교에 기계기능훈련생으로 지원하여 방학에도 학교에서 합숙을 하며 실습하였고, 또 공부하였다. 그렇게 고교시절 기능경기대회 기계가공직종 경남대표선수로도 출전하였고 전국에서 입상도 하였다. 그리고 2008년 가을 나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하였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기계가공을 전공한 나는 남들보다 빨리 실무전선에 뛰어 들어 기계분야 대한민국 명장이 되기로 꿈 꾸었다. 그리하여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128 특별상•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성지홍    다른 또래의 친구들과는 조금은 다른 방향이지만 다들 당연한 듯이 대학을 가야한 다는 편견을 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대기업에 입사하였다. 정말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즐길 땐 확실히 즐기고 또 학원을 다니면서 어학공부도 꾸준히 하였다. 그리고 방위산업체에 근무를 하여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대도 한 달 기초군사훈련만 받고 일반 사원과 똑같은 대우로 회사에서 근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 한 켠에 대학진학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남아 있었다. 학원강의, 인터넷강의로는 나의 전공과목을 쉽게 배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당시에는 나는 대학에 진학하기에는 회사에서 교대근무로 인하여 여건이 어려웠었다. 진학을 하더라도 꾸준히  학교를 갈 수 없는 근무 패턴이었다. 그리하여 부서장님께 정중히 대학진학을 하기 위해 주간근무를 부탁하였지만 업무 과부하로 인하여 거절당하였다. 그렇게 3년 동안 대학에 가고 싶다고 정중히 부탁 또 부탁하였다. 3년 동안 부탁 드리는게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엔지니어, 공학에 대한 꿈을 포기하기는 싫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렵게 들어온 회사를 그만두기도 싫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싶었다. 이런 나를 욕심이 많다고 생각도 해봤지만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욕심을 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 정도의 욕심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인정받는 엔지니어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기나긴 노력은 좋은 결과를 가지고 왔다. 부서장님은 나의 확고한 의지를 인정하시고 대학진학을 허락하셨다. 3년 동안 회사 사정으로 진학에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부서장께서 몸소 많은 도움과 배려를 주셨다. 그렇게 주간근무만 하는 부서로 부서이동을 하였고, 드디어 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 부서장님께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대학진학을 위해 자료를 검색하고, 주변 자문을 구하고 다니던 나는 창원대학교에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나의 상황에서 공부를 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제도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공과대학에 학과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결정을 하였고, 기대감이 부푼 마음으로 창원대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나의 꿈에 한 발짝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처음 대학면접을 보러가는 길에는 정말 그 기쁨과 설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그날따라 공기마저 상쾌하게 느껴졌다. 대학의 면접이 회 12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사 입사때의 면접보다 더 떨리는 것 같았다. 면접을 보시던 3명의 교수님들 앞에서 나의 대학교 면접 첫마디는 “너무나도 대학에 오고 싶었습니다.”였다. 교수님들은 이런 간절한 내 마음을 알아주신 것인지 합격자명단에 나의 이름이 있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나는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문구점에 가서 학용품도 사고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노트북도 하나 구매하였다. 정말 돈이 아깝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님에게 의존하여 공부에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고 학비를 내고 학교를 다니고 용돈을 받고 하지만 5년 동안 근무하며 모아 온 작지 않은 돈과 순수 나의 재력으로 구매한 자동차도 있었다. 등록금이 사실상 부담되는 가격이어서 대학진학 후 알바를 해서 또는 부모님에게 부탁을 하며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취업을 하여 어느 정도 돈을 저축하고 여윳돈이 있는 나에게는 이러한 문제가 없었다. 부모님 역시 기뻐하셨고, 나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 같아 부모님은 가슴 아프셨다고 털어놓으셨다. 내가 평생을 살면서 효도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는데 부모님의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는 것 같아 이번만큼은 효도한 것 같아서 정말 대학에 진학한 일은 여러 방면으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였다. 주변 친구와 회사의 선후배님들 역시 대학진학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시며 축하해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내가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면 내가 못한 회사의 업무는 고스란히 부서 선후배님들에게 돌아가가게 되는데 나는 그것이 미안하다고 말씀을 드리니 한 분도 빠짐없이 다들 웃으며 괜찮다고 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2월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니 학교로 오라고 연락이 왔었다. 나와 앞으로 4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낼 학우님들을 만나러 가는길은 또 신선한 기대감을 주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그 기대감에 부푼 아이처럼 나는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갔다. 도착 장소에 들어가는 순간 20대 초반부터 60대 어르신까지 너무나도 다양한 연령대의 학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학과와의 오리엔테이션 분위기와 조금 다른 점을 말하자면 학우님들의 부인들께서 많이 참석하셨다. 다른 학과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진 풍경이었다. 그날 2학년 선배님들의 도움을 받아 난생 처음  130 특별상•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성지홍  수강신청을 해봤고, 대학생활의 이모저모를 안내 받았다. 1학년 과대도 선출하였고, 그렇게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학과 학년 단체 대화방도 개설되었다. 다들 어색하지만 자기소개를 간단히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입학 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같이 시작한 31명의 학우들과 3월 첫 개강날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개강을 하고 강의시간에 주위를 한번 둘러보니, 모두들 눈에서 열의와 희망이 넘쳤다. 회사근무를 마치고 와서 피곤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교수님들도 매우 열정적이셨다. 교수님도 학생들도 대충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강의시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질문과 질의가 계속 이어졌던 날도 있고, 몇몇의 학생은 이미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학교가 마친 뒤에도 학과방이나 강의실에 남아 복습하고 또 예습하였다. 모두들 열심히 하니 나 역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같이 공부하고 좋은 학습자료도 공유하였다. 인터넷 카페 를 만들어 서로 도움이 될 만한 공부자료도 올려서 공부하고, 학교를 가는 날이 아닌데도 저녁 8시든 9시든 퇴근 후 가끔 학교에 모여서 공부하였다. 선취업 후진학 학과는 쉽게 학교에 다니고 학점 받아 졸업한다는 소리가 학우들은 죽도록 듣기 싫다고 하였고, 오히려 일반 학생들보다 우리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독한 사람들인지 보여줘야 한다며 더욱 열심히 하였던 것 같다. 나 역시 우리 학과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우리 학과가 절대 만만한 학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기도 하였다. 매일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가끔씩은 모여서 식사도 하러 가고, 술도 한 잔씩 하곤 했다.   모두들 직장인이고 하니 서로에 대해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고, 또 각자의 회사업무와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다 보니 내가 알지 못하던 부분의 상식도 생기고 세상을 보는 시각 또한 매우 넓어졌다. 강의 중 공학설계과목이 있었는데 조별로 공학설계로 신제품을 만들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강의였다. 이 강의에서 우리 학우들이 모두 모이면 하나의 벤처기업을 만들어도 될 만큼 다방면으로 기술들이 뛰어났고, 지식도 풍부하였다. 실제로 교수님도 놀라실 만큼 일반 학생과는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실제로 설계할 만한 이론들에 또 한번 놀라신다고 우리 학우전체를 칭찬하시기도 하셨다. 대학에 입학한 지 정말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중간고사가 가까워졌다. 다들 하루에 2시간 3시간 자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13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나 역시 퇴근 후 공부를 하다 보니 수면시간이 부족하였다. 그래도 이 악물고 공부하였다. 회사 점심시간에 뛰어가서 밥을 먹고 와서 남는 시간동안 공부하였고, 또 퇴근 후 간단히 식사만 하고 다시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였다. 화장실을 가는데도 책을 챙겨 갔고, 스마트폰에 요점을 정리한 파일을 저장하여 조금이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또 공부하고 하였다. 몸은 조금 힘들어도, 내가 배워간다는 점이 너무나도 기뻐 힘든 것도 잊고 열심히 하였다. 시험 전날에 학우들끼리 모두 강의실에 모여서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고 다음날 시험을 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우들끼리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집으로 가서 12시간이 넘도록 잠만 잔 것 같다.   시험이 끝나고 대학생활의 중요행사 중 하나인 .5를 가게 되었다. 학우들과 함께하는 1박 2일에 나 역시 매우 기분 좋게 버스에 올랐다. 꽃들이 만발하는 따뜻한 봄날에 학우들과 함께 족구도 하고 담소도 나누고 지역 관광도 하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아갔다. 저녁이 되어 교수님들과 학생들 전부 바베큐 파티로 단합하고, 노래도 신나게 부르고 나니 우리는 어느새 “가족”이 되어있었다. 다시 학교로 복귀하여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같이 공부하는 학우의 결혼소식이다. 다른 학과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다. 우리는 다함께 결혼을 축하해 주고, 결혼 축가 역시 학우들이 불러 주었다. 시간이 지나 기말고사를 치루고 방학이 다가왔는데 .5때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여름방학때 학우들끼리 섬으로 1박 2일 여행도 다녀왔다. 여름방학이라 해서 다른 학생들처럼 집에서 쉬지 않고 우리는 또 회사에 출근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은 학교 때문에 조금은 소홀했던 회사업무를 최대한 열심히 하였다. 그렇다고 마냥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토익시험을 준비하고, 공대는 수학이 중요하여 고등학교 수학책을 구매하여 수학공부도 틈틈이 하였다. 방학 동안에는 회사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동료들에게 부탁을 하여 1:1 과외도 받았다. 귀찮을 법도 하지만 다들 웃으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었다.    방학기간 중 성적 개시 날에 성적을 보니 노력만큼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뿌듯하였던 것은 일반 학생과 같이 수업을 듣고 시험을 쳐야하는 교양과목같은 경우, 개강 전 수강신청한 2과목에서 전부 높은 학점을 받은 것이 132 특별상•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성지홍  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학과의 많은 사람들이 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 선취업 후진학 학과라고 학업능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리고 2학기 등록금을 납부하여야 하는데 조교선생님에게 전화가 와서 장학금을 받는다는 소리에 부모님은 물론 회사동료들에게까지 자랑하고 기분좋게 밥도 한 끼를 샀다. 나의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 공부를 했는데 학비도 지원해 주고 꿩먹고 알먹고가 아닐 수가 없다. 2학기 개강을 하고도 역시 1학기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였다. 점점 더 학업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자주 가지 않던 도서관에도 자주가서 책도 보고 서점에도 자주 갔었다. 솔직히 말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 욕심”이라는 것이 생겼다. 일과 함께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2학기때는 학교축제가 있었는데 다들 퇴근하고 학교로 모여 맛있는 것을 해 먹기도 하고 같이 가수들의 공연도 보며 환호하기도 하고 다른 학과 학생들과 축제를 즐기며 친해지기도 하였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대학축제의 주인공이 되어 대학생활에 대해 더욱 만족하게 되는 날 이였다. 2학기때는 학교에서 전폭적인 지원도 있었다. 학교학생과 1:1 멘토링 시스템으로 우리 학과 학생들에게 무료로 영어와 수학 과외를 시켜 주었다. 지원자 수가 너무 많아 학교에서 곤란해 하였지만, 우리 학과에서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알아주어 한 명도 빠짐없이 지원하여 주었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여 가장 학업에 도움이 많이 되었던 일이 1:1멘토링 시스템인 것 같다. 멘토들이 말하기를 “‘선취업 후진학 학과라 해서 다들 학업능력이 떨어지고 학업에 대한 열의도 높지 않을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졌었다. 하지만 자기자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학업수준이 매우 높고 열의 또한 일반 학생보다 훨씬 높다. 그래서 오히려 학업에 대한 열정을 자기자신들이 배워 가는 입장이다.”라고 말하였다. 내가 19살 때부터 현업에서 근무를 시작하다 보니 나의 친구들과 주변인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회사를 다니던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나의 주변사람들에게 대학에 다니는 것을 매우 권유하는 편이다.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학업도 학업이지만 또 다른 것들을 배웠다. 첫 번째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 학교에 진학한 후 여러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지식을 공유하다보니 나는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것이다. 두 번째로 대학의 문화와 시스템,  13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전공교수님들께 나의 실무에 대한 조언을 받아서 정해 주신 개선방향을 실무에 적용하여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인적 자원들인 나의 학우들을 만났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을 하였다. 모두들 불량학생이였던 내가 동창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연봉을 받으면서 회사에 근무하고 있고, 선취업 후진학으로 4년제 국립대학교에 재학 중인 것에 다들 놀라워 하였다. 고교시절 은사님도 동창회에 참석하여 정말 많은 칭찬과 격려를 해 주었다.   나는 졸업 후에도 꾸준히 기계기능훈련생 후배들에게 자주 찾아가 실습지도와 함께 지도선생님이 부탁한 ‘정신교육’도 하고는 한다. 기능훈련생을 하면 방학에도 학교에서 합숙하며 하루에 4_6시간의 수면시간과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오로지 실습만 한다. 나는 그 와중에 공부는 틈틈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진로선택의 시기가 오면 선취업 후진학을 추천한다.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나처럼 살아라.”가 아닌 “나보다 더 멋진 인생을 살아라.”라고 항상 말한다. “하찮은 일을 한다고 불평하지 말고 그 하찮은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다보면 누구도 너를 하찮은 일만 하는 사람으로 놔두지 않는다.”라고도 말한다. 후배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고 나를 따라 주니 기분이 좋다. 남에게 이런 조언을 해준다는 것이 행복하고 기쁜 일이라고 나는 느낀다.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젊음을 위해 더 뛰어가야 한다. 비록 육체적으로 고되고 힘들 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뿐인 내 인생을 먼 훗날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만족하는 인생으로 살고 싶다. 나의 부모님을 위해 훗날 나의 가족을 위해 나는 성공하고 싶다. 꿈을 이루고 싶다. 나의 발전이 대한민국의 발전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내일도 최선을 다해 달릴 것이다. 또 선취업 후진학이 더더욱 활성화 되고 홍보되어 대한민국 고졸학생들에게 새로운 진로선택의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134 특별상•창원대학교 메카융합학과 성지홍  특별상  마리의 토끼를 잡다 이제는 두 김 지 은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1. 남들과는 다른 출발   아픔을 알기 전 저는 160DN, 52LH의 하체가 튼실한 스펙을 가진 몸이었습니다. 이런 몸으로 체육시간에는 줄곳 우수한 성적으로 기록되었으며, 매우 건강한 학생으로 인식되었고, 놀기 좋아하는 개구쟁이 여장부였습니다.   2006년 4월 6일(목)  중학교 3학년 4교시 체육시간 허들시험을 본 후 바로 점심시간이어서, 먹을 것을 좋아라하는 저는 뛰어서 급식실로 올라가 배식을 받았습니다. 밥을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떠가면서 먹는데 팔의 움직임이 이상하여, 친구와 보건실을 가기 위해 일어나던 순간! 오른쪽 다리의 힘을 쓸 수가 없어서 결국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의 부축을 받고 보건실에서 부모님을 기다리고는 늦게 학교 근처의 병원으로 갔습니다.  13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가까웠던 중앙병원에서 간단한 검사결과 뇌출혈이라고 하여 한양대학교병원을 갔지만, 입원실이 없다고 하여서 또 다시 순천향대학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응급처치 후 $5, .3*, 뇌혈관조영술 등의 검사결과, ‘대뇌 동정맥기형으로 인한 뇌출혈’G이라는 희귀성 질환이라는 병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하게 되면 매우 위험하다고 하여 중환자실에서 1달 반을, 일반병실에서 2주를 오른쪽 팔과 다리의 마비를 풀기 위한 재활치료를 하였습니다. 경과를 지켜본 후 감마나이프라는 방사선 시술이 가능한 경희의료원으로 이동하여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도 재활치료와 한방치료를 통하여 오른쪽 팔과 다리의 마비가 거의 70% 정상인으로 돌아오고는 퇴원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하여 하루 24시간동안 돌아가면서 간병을 해줬던 가족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학교 다니며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매우 부러웠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픔을 알기 전 나는 배우라는 꿈을 가지고 오디션도 보았고, 연기연습도 하면서 꿈을 키우던 학생이었습니다. 이때 건강을 잃어보니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병원에 있으면서 간호사 언니들의 일상생활과 많은 대화를 통해서 나의 꿈은 배우에서 간호사로 바뀌었습니다.  경희의료원 임영진 교수님께서는 1년간 요양을 권하셨고, 학교에서도 저를 받아 줄 수 없다는 청천병력 같은 소리를 듣고, 또 한번의 좌절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반신불수에 이어서 유급까지…G매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지은아, 1년 동안 복습하고서 복학하면 전교 1등 하겠다.”G라고 장난삼아 이야기했지만, 저에게 중학교 2학년  136 특별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지은  친구들이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친구가 된다는 상실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반신불수 재활치료를 통하여 극복해 나아가며 현실을 인정하면서부터는 저의 꿈인 간호사가 되 기 위해 간호학과가 있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알아보며 1년을 보냈습니다. 이후 중학교 3학년으로 복학하여 착한 동생들을 만나 무사히 중학교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간호사라는 꿈으로 간호학과에 진학을 목표로 했지만 성적이 안 되어 낙방을 하고는 현실을 깨닫고, 성적에 맞는 사이버정보통신학과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여러 고민이 생겼습니다. 특히 “야! 김지은”이라고 부름을 받으니 감정이 상하였습니다. 고민을 하다가 저는 저를 존중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한테 용기 내어 제가 한 살 많은 언니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변함없이 “야! 김지은”이라고 부름을 받고는, 중학교 때와 다른 아이들의 반응이 정신 적 스트레스로 다가와 자퇴의 고민에도 빠졌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같이 회계학원에 다녀보니 않을래 ”라고 손을 먼저 내밀어 주던 친구로 인해, 2학년 때까지 회계의 차변, 대변도 모르던 내가   고3 수능 모의고사 때 직업탐구영역에서 회계원리 2등급을 맞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자신감이 생겨 회계 관련 회사원으로 꿈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후 취업을 위해서 학교에서 임원도 해보고, 교내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출전하여 수상을 하게 되어서 학교 대표로 출전을 하는 등 많은 이력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력으로 저는 조금 큰 세무법인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가가치세, 법인세 기간에는 철야를 몇 주 동안 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입사 5개월째쯤에 과거에 내가 아팠다는 것을 알게 되어 권고사직을 당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아파서 권고사직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면서도 이러한 회사에 화 13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가 났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는 3일 만에 다른 회계법인을 들어갔습니다. 3개월쯤 회계사님께서는 건강이 염려스럽다며 일반 기업에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말하셨습니다. 또 권고사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나에게는 큰 상처였지만 나의 건강을 염려하여 결정된 것이기에, 저는 회계사님께서 말씀 해 주신 대로 일반 기업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러 군데를 알아보고 제조업 재무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회계사무실과 다른 업무들을 배우던 중 이번 회사에서는 임금체불로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모 대기업에서 합병을 하자는 얘기가 오고가는 등 그런 모습을 보면서 희망고문만 1년 8개월 정도 하였을 때, ‘이래서 부모님들이 공부 열심히 하라는 거구나...’G라고 느끼고는 대학과 공부에 대해서 갈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부장님으로부터 안타깝지만 이직을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은 머릿속에서 잊혀지고 이직에 몰두하였습니다. 2개의 자격증도 따고 자기소개서도 회사 대리님, 차장님, 부장님의 도움으로 작성하고 대리님과 차장님께서 넣어보라고 하는 회사에만 입사 지원하였습니다. 면접도 반차쓰고 다녀오고 하여서 한 달 만에 코스닥상장사이고 게임사업과 텐트사업을 하는 현재의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째 되던 중에 대졸사원은 직장생활 3년 차로 인정하는 등의 차별을 경험해보니 고졸이라는 콤플렉스가 생기려 했습니다. 이때 3년째 만나고 있는 지금의 남자친구가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이 신문에 난 광고를 보여 주면서 “지원해 보는 게 어때 ”G라고 제안하여 학교를 가기 위해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한 예행연습으로 주경야독을 해보았습니다.    입학하기 전에 재경관리사라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국비환급반으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월, 수, 금, 토, 일요일을 이렇게 힘들게 다니다 보니... 회사업무도 실수가 생기고 학원에도 출석을 못할 때가 있고 공부가 잘 안되어 결국 자격증도 못 따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주경야독을 해본 결과…G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학교를 알아보았습니다. 계속 업무적으로 커리어를  138 특별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지은  쌓을 수 있는 세무회계학과만을 알아보던 중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대학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친구의 도움으로 동덕여대 세무회계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2. 두 마리의 토끼 잡기란...   중학교 때는 공부를 멀리하고 아팠다고는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성적이 평균이상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부 벼락치기라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서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던 내가 점점 ‘알아가는 과정’의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2.1. 대학 생활을 통하여 공부하는 방법을 알게 되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벼락치기가 몸에 밴 저는 대학교 처음 시험도 벼락치기를 감행했습니다. 시험 1주일을 하루에 2시간씩 잠을 자면서 회사와 학교를 다녀오면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사람이 잠을 못 자니... 머리가 잘 돌아 가지 않았지만 잠을 자게 된다면 공부를 못하고 시험을 정말 망칠 것이라는 불안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잠을 못자니 머리회전이 안되고 회사에서도 가끔 하는 실수를 1주일 동안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시험결과는 평균보다 1_5점 낮았지만 이정도면 그래도 잘 봤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음에는 시험 2주 전에 공부하자!’라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중간고사 때 느낀 대로 정말 2주 전부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시험 2주 전부터 에너지드링크와 피로회복제를 열심히 먹어가면서 하루에 2시간씩 잠을 자고 공부하니 시험기간 전날부터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회사와 학교를 다녀오면 아무것도 못할 정도의 잠이 쏟아져 결국 시험기간 주에는 공부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시험은 망하였고 국가장학금도 못 받게 되고는 자기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3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1학기 기말고사 시험기간에 공부를 전혀 못하여 시험을 완전히 망친 경험으로 시험 2주 전에는 잠은 어느 정도도 자면서 공부하자라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동기들과 더욱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동기들과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학교독서실에서 밤을 새고 집에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 밤은 새고 집에 들어가서 자고 집에서 공부는 안하고 또 동기 만나서 수다 떨다가 학교에서 밤을 새고 공부하고... 결과를 보면 공부는 겨우 3시간  정도 하게 되어 또다시 시험은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공부는 혼자 해야 한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는 걸 느끼고는 ‘시험 한 달 전에, 하루에 2시간 정도만 꾸준히 공부하자.’라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5일정도 그렇게 공부를 하고 학교에서 상해로 해외산업시찰을 2박 3일간 다녀왔습니다. 그러고 나니 동기들과 더욱 놀고 싶고, 다른 곳으로 여행도 가고 싶은 생각에 목표한 계획대로 공부는 못하고 결국 벼락치기로 시험기간에만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번 시험기간에는 잠은 최소 4시간 이상은 자고 미리미리 만들었던 서브노트를 휴대폰으로 찍어서 출퇴근시간에 보아가면서 공부하였습니다. 예상보다 시험 성적은 잘 나오게 되었고, 다행히 국가장학금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천천히 오래가자.’라는 마음을 먹으니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되고, 공부에도 흥미도 생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140 특별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지은  2.2. 동기들의 도움   학교에 다니는 것을 회사에 알리지 못하여 월, 화, 목, 금요일을 학교에 다니는 것이 힘이 들기도 하지만, 동기들이 있어 즐겁고 힘이 되어 주니 다닐 만 하였습니다. 학교를 다니면 언니들과 친구들이 있는데 사회생활에서 만나면 정말 불편한 과장님이거나 대리님뿐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학교에서 동기로서, 언니로서, 친구로서 만남을 이 어가니 사회생활에 관한 조언도 많이 들을 수 있고,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힘이 들 때면 서로서로 의지할 수 있어서 정말 든든한 힘이 됩니다.    또한 좋은 기회로 상하이로 해외산업시찰을 다녀오면서 정말…G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왔습니다. 상해선물거래소와 코카콜라 공장의 견학, 상해역사박물관, 상해임시정부청사를 둘러보는 등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상해에서의 2박 3일은 서로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달라지고 소중함을 알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방학기간에는 동기들과 여행도 다니고 교수님들도 찾아뵙자고 약속도 했습니다. 산업시찰을 통하여 학교를 와서 처음으로 끈끈한 동기애를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14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2.3. 교수님들의 도움   우리의 담임교수이신 마희영 교수님과 학과장을 맡고 계신 허광복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과 사랑을 많이 쏟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힘든 점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노력해 주었고, 우리 과에 열심히 힘을 써 주셨습니다. 해외산업시찰이며, 멘토링에서도 한 명 한 명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고 공부하는 방법과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학년마다 어떠한 고민이 있는지, 어떠한 좋은 일들이 생겼는지, 세세하게 챙겨 주셨고 이러한 관심과 사랑이 제가 학교를 다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3. 학교a 나에게 준 큰 선물   우연치 않은 기회로 저의 모교인 서일국제경영고등학교 강당에 선취업 후입 학이라는 타이틀로 홍보를 가게 되었습  니다. 학교 강당에는 공식적으로 처음 서는 자리이고 동생뻘 되는 아이들과 마 주하여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과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에 관해 설명하였습니다. 홍보하는 과정에서 실수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남들이 말하는 캠퍼스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근로자의 날이나 회사가 쉴 때면 학교에 와서 학생관에서 놀거나 학교식당도 구경을 가 보았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학교근처에서 떡볶이나 치킨도 먹으면서 캠퍼 스 생활을 누린 것 같습니다.  142 특별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김지은     이러한 경험과 학교생활로 점점 나 자신이 완성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고졸이라는 콤플렉스로 자신감이 없던 저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렸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웠던 전공과 교양을 회사 실무에서,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때, 정말 그때마다 ‘내가 1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구나.’라고 느끼면서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3년 뒤 졸업 후에는 7년 직장경력과 대졸이라는 학력으로 저의 앞으 로의 미래가 밝아져 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14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특별상 청춘을 선물로 드립니다 허 혜 희 동아대학교 국제무역학과  1.“이젠 우리a 승리의 쾌q을 맛볼 차례!”  –G조지 4 패튼   조지 4 패튼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도전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승리의 쾌감을 맛볼지도 모른다.”G남들처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사교육을 받으며 입시준비를 하지 않은 우리는 다들 한 번씩 패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것이 우리에게는 이미 도전의 한 걸음을 뗀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제는 우리가  144 특별상•동아대학교 국제무역학과 허혜희  승리의 쾌감을 맛볼 차례라고 생각해요! 물론 각자의 가정형편과 처한 환경이 다르겠지만 제 이야기가 나처럼 희망이 필요했던 모두에게 용기가 되길 바랄게요!   다들 인생은 #JSUI와 %FBUI 사이의 $IPJDF라고 하죠  물론 선택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에요. 저희가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그 선택의 순간부터 우린 이미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죠. 저 또한 그 최초의 선택으로 인해 제 인생을 전혀 다른 길로 설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하지만 저는 인생은 -FBE와 /PSNBM 사이의 .JOE라고 생각해요. 누가 자기 인생을 리드하고 누가 그저 평범하게 남들이 가는 흔한 인생을 따라가는 지는 바로 자기 자신한테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스스로가 인생을 대할 때 가지는 마음 자세 말이에요. 저는 제가 특별한 사람도 엄청난 수재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두 자기소개서에 ‘저는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으로…’G라고 적잖아요  우리나라 사 람들 대부분이 유하고 긍정적인 성격을 소유하고 있지만, 정말 나만의 할 일이 있었는데 새로운 일이 생겼을 때 긍정적일까요  저 또한 회사나 학교에서 ‘착하다, 거절을 못한다’라는 말을 듣는 편이지만 긍정적이라고 얘기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좀 식상하기 도 하구요. 다만 저는 포기와 인정이 빠르고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실은 제가 형이라 지나간 일들을 잘 곱씹는 성격이거든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지금 와서 후회하면 뭐하겠어, 계속 뒤돌아보지 말고 빨리 앞으로 전진하자!’라고요.  지금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을 꼽으라면 고등학교 선택의 순간일 수도 있고, 고교생활 을 더 즐기지 못하고 마음 급하게 3학년 1학기를 끝내고 바로 취업을 했던 순간일 수도 있고, 21살, 22살에 청춘이 너무 고파서 회사 일을 그만둘까 고민했던 순간일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후회되지 않아요. 왜냐면 그러한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러한 선택의 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러니 여러분, 지난 과거나 옆에 길을 달리고 있는 다른 친구와 나를 비교하며 후회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이 도전이에요. 이 순간을 받아들이면 분명 승리의 쾌감을 맛볼 날이 올 거에요! 14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2.“시크릿효과(상상하면 이루어져요)”–G론다 번    사실 제가 8살 때까지는 저희 집이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답니다. 큰 집으로 이사도 가고 일주일에 하루는 무조건 동네 왕갈비집에서 외식도 하고 2차로 노래방도 가는 등 소위 말하는 ‘제일 잘 나가는’G집이었어요. 어머니께서는 항상 부침개나 음식을 한껏 하셔서 온 동네에 나누어 주고는 하셨어요. 그리고 여섯 살 터울의 큰 언니는 반장, 부반장에 전교 부회장까지 역임할 정도로 공부도 잘했고 또 어머니께서 뒷바라지도 열심이셨죠. 그런데 *. 이후 급격히 기울어진 가세는 도무지 일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이사 간 지 1년 만에 다시 두 칸짜리 반 지하로 이사하게 되었어요. 이 와중에 아버지는 계속적인 방황으로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고 결국 어머니께서 생활 전선에 뛰어드셔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난생 처음으로 식당 일을 하시며 손이 부르트고 발이 퉁퉁 부어서 집에 오셨고, 급기야 공장에까지 다니시며 어깨, 다리 안 아픈 곳이 없으셔서 집에 오시면 몸져 누으셨어요. 당시 11살이었던 저는 다른 친구들이 단과학원에 다니며 노는 시간에 항상 두 살 터울의 동생을 돌보며 저녁을 챙겨 먹이고 또 반찬 투정을 하면 그것도 다 받아가며 어머니의 빈 자리를 채워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에 접어들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조금 방황을 하기도 하였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서 학교생활을 즐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기회가 있었고 또 운 좋게 기회에 조건이 없어 쉽게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테면 얼굴에 철판을 깐 듯 열연을 펼쳤던 독서 촌극 대회나 영어를 잘 하진 못하지만 좋아하였기에 그냥 참여만 하는 것에 의의를 두자 싶어 나갔던 영어 말하기 대회라든지, 과학엔 영 소질이 없었지만 전교 1등 친구와 함께 팀을 만들어 과학탐구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거머쥔 경험이라든지 말입니다. 특히 독서 촌극대회에서는 연기를 하는 것이 난생 처음이었는데 ‘아버지’라는 작품에서 시한부에 걸린 아버지 역할을 맡아 연극 도중 눈 밑에 보라색 셰도우를 칠한 것이 포인트가 되어 최우수상을 받았고, 과학탐구대회도 전교 1등 친구보다 아는 것은 없었지만 친구 집으로 찾아가 집 앞 하천의 물을 담고 사진을 찍어 수질비교를 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렇듯 제가 머리가 좋은 수재는 아니었지만 모든 열심히 하려는 자세와 열정이 있었고, 또 모르는 부분이나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146 특별상•동아대학교 국제무역학과 허혜희  부끄럼 없이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 것이 저의 노하우라면 노하우였을 겁니다. 분명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모두 이런 경험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아마 순전히 나의 노력으로만 무언가를 해내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제가 당시 가진 게 없었기에 더욱 값지고 소중하게 느꼈을지도 모르지요. 저는 감히 이것이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을 받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수도 없는 경쟁으로 인생을 살아온 친구들과는 다른 성취감이라고 자부합니다. 하여 저는 자연스레 다른 평범한 친구들과는 다른 인생이 되어버린 제 인생을 더 나은 인생이었다고 자부하게 되었고 지식보다는 경험이 중요한 인생을 살겠노라 하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죠. 어쩌면 자격지심 혹은 아까 말했듯 후회하지 않는 자기방어적 성격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저의 특성화 고등학교 진학도 순탄하진 않았습니다. 교육열이 높으셨던 어머니의 고집으로 큰 언니는 무조건 인문계 고등학교, 무조건 4년제 대학교를 보냈었던  어머니셨고, 저 또한 성적이 15%대였기 때문에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학 후 내야 할 학비와 교재비, 급식비 부담에  대한 방법은 저희 집엔 없었습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취업을 하셨던 작은 이모께서 “너희 집 형편에 인문계 고등학교 가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니 ”라는 말씀에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고 ‘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장학금을 준다는 팸플릿을 보고는 당장 원서를 써버렸습니다. 당시 저는 빨리 커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스스로 선택을 해야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단 한 순간도 딸을 상고에 보내려고 생각한 적 없다며 결사반대를 하셨지만, 저는 원망 반 다독임 반으로 어머니를 설득했고 어머니는 이내 곧 붉어진 눈시울로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좀처럼 신세한탄을 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 날만큼은 세상이 모든 것이 너무 야속하게 느껴져 다락방에서 소리 없이 한참을 울다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상업고등학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겁이 났고,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였고 이러한  14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긴장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신입생을 위한 선행학습으로 회계를 배웠고 오리엔테이션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저의 탁월했던 선택으로 인하여 3년간 저는 전문계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아주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고등학교 진학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해도 저는 저희 진여자상업고등학교의 진학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거든요.    고등학교 진학이 결정되고 중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소풍을 가던 날, 학생부장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혜희야, 니가 진여상 가서 반장도 하고 전교 1등도 하고 회장도 해버려라_”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내 주제에 무슨 전교 1등이고 반장이야.’G싶었고, 호랑이 선생님으로 평판이 나있던 분이셨기에 괜한 괴리감으로 선생님의 조언을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수줍에 웃어보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나비효과가 된 것일까요, 중학교 때는 반에서 잘해야 6등 정도밖에 해보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전교 1등도 해보고, 반장도 하게 되었습니다. 실은 ‘반장’이라는 것에 굉장한 두려움이 많았는데 왜냐햐면 중학교 때 추천으로 부반장에 당선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 학부모회에서 어머니께 전화가 왔어요. 잠결에 들었는데 학부모회장님께서 어머니께 학부모회에 들라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일을 하기 때문에 못한다고 하셨고, 그럼 학부모 회비라도 15만원 내라고 했는데 난색을 표하며 그럴 돈이 없다고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어요. 그러고는 되려 제게 “그러니까 내가 그런 거 하지 말랬잖아.”라고 말하셨어요. 나도 하고 싶어 된 것이 아니라 해명하긴 했지만 괜스레 눈물이 나오길래 뒤돌아 누워버렸는데 그 이후론 반장이니 회장이니 이런 건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희학교는 다행히 공립이라 그런 부담이 전혀 없었어요. 1학년이 마칠 무렵 담임선생님께서 저에게 차석부회장을 권유하시며 ‘너 말고 우리 학년에 할 애가 또 어디 있니 ’라고 하셨고 그 때도 저는 손사레를 치며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학교에서는 3학년 학생회장이 1학기 말쯤 취업이 확정되기 때문에 거의 2학년 차석부회장이 회장급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사실 회장 이런 거 하면 돈이 많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씀 드렸더니 ‘너 우리학교처럼 다들 힘든 형편에 그런 게 어디 있니  너는 그저 학교를 위해 학생회장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라고 용기를 복돋아  148 특별상•동아대학교 국제무역학과 허혜희  주셔서 차석부회장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반장이나 부회장이 될 재목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 주었어요. 나를 믿어 주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반을 더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한 친구라도 불만 없이 재미난 학교생활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반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친구들이 따라와 주었고 1년 내내 학과평균보다 10점이나 높은 반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 파리에서 습니다. 학교에서의 평판이 좋아지면서 교육청 장학금도 받아직은 미완성된 외모와...았고, 2학년 말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북유럽 8박 9일 해외연수의 기회가 주어져 학교 대표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로 견문을 넓혀 전 세계를 무대로 일을 하는 글로벌 리더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제가 무리하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고집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값비싼 경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두려웠지만 내가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생각, 다짐, 그 열정 하나로 덤벼들었던 결과인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의 에너지가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론다 번의 말처럼 말이에요. 3.“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G김수영   김수영 작가의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라는 책은 입사 후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으로 제게 다시 ‘꿈’이라는 걸 가져도 좋다고 허락해준 책입니다. 저와 같이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입학하신 후 꾸준히 자신을 발전시키고 다양한 도전을 즐기는 김수영 작가님이야 말로 제가 원하던 인생의 모토였고  저 또한 꿈이라는 것에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꿈쟁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14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그렇게 따사로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어느새 꿈꿔왔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취업의뢰가 들어온 것이죠. 저희 학교는 전교생 모두가 착하고 성숙해 마치 대학교 4학년이 취업준비를 하듯 각자 자기 스펙 쌓기에 열중했는데 저 또한 꾸준히 자격증을 취득하고 내신관리를 했고, 모의면접 대회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취업준비를 했었습니다. 제가 취업할 시기에 경기가 불황이라 대기업 취업의뢰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은산해운항공’이란 부산의 향토 중소기업이 처음으로 연봉 2,000만원에 의뢰가 들어오자마자 나를 비롯하여 취업에 목말라있던 많은 학우들이 단숨에 지원하였습니다. 치열한 교내면접 끝에 선발된 3명이 최종면접에 임했고 3일 뒤 바로 합격통지를 받았습니다. 19살 8월, 방학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는  첫 출근을 하게 되었고 항공수출부에 발령받아 항공화물의 수출을 핸들링 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 단위로 마감되는 해상 수출 업무보다 시간 단위로 마감되는 항공업무가 좀 더 급박하게 진행되므로 주요 항공사나 전 세계 항공 포트 등 배울 것도 많았고 익힐 업무도 많았지만 업무시간엔 가르침을 받을 짬조차 없어 매일 퇴근시간이 지난 8시 이후에 업무를 배우고 퇴근하기 일쑤였고 항상 7시 반까지 출근해야 했으므로 햇빛을 보면 반가울 정도였습니다. 워낙 포워딩 업무가 힘들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저희 회사가 바쁘기로 유명했어요. 한번은 입사 3개월 차에 신종플루가 유행했는데 총 5명의 인원 중 3명의 선배가 신종플루에 걸려 선배 한 명과 둘이서만 업무를 하게 되었어요.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를 받다가 업무를 처리할 시간도 없어 엉엉 울어버린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배울 게 한참 남아 하나하나 배워가기 바빴고, 해외 파트너와 일을 하며 영어 전문 실력도 향상되었습니다. 원래 영어를 잘하진 못했지만 좋아하였기에 전 세계를 무대로 일을 한다는 것에 점차 일이 재미있어졌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며 점차 전 세계 포트의 특성이나 항공사에 대해 익숙해졌지만 2년 차에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대기업 비딩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회사 내에 인프라나 경험자가 없었기 때문에 4년 차 대리님과 단 둘이서 프로그램을 익히는 일부터 모르는 건 일일이 물어보고 시도해보며 모든 시스템을 구축하였습니다. 대리님께서 한번 시작하면 완벽하게 끝을 보는 성미여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열심이셨고, 저 또한 그런  150 특별상•동아대학교 국제무역학과 허혜희  대리님을 보필하여 1년 간 월별평가를 모두 등급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1년이 지났지만 또 다음 1년 계약을 위해 비딩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둘이서 115를 준비하기 위해 한 달을 매일같이 12시까지 야근했는데 업무 시간엔 업무를 하기에도 너무 바빠서 7시가 넘어 업무가 정리되면 자료를 찾고 115를 만들었으며, 심지어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다 6시에 일어나 출근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또 치열하게 연간 계약을 성사시켰고 더불어 새로운 거래처의 물량을 더 받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거래선은 이때까지 했던 곳과는 또 달라 그곳의 특성을 파악하고 맞추느라 5개월 정도 또 고생하고 몰두하였습니다.    그렇게 365일 휴일 없이 돌아가며 당직근무를 하다 보니 다른 팀보다 심적으로 더 힘들었고 상대적인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내 청춘을 회사에만 받치고 있었는가’G하고 말입니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니 내 인생, 내 청춘은 하나도 없었고 오직 회사만 있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일이 재미있지 않았고 퇴사의 마음을 먹었지만 퇴사 후의 진로도, 하고 싶은 것도 생각해 놓지 않은 상황에서 마음은 답답하고 갑갑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힘이 들고 억울한 생각이 들어 앞뒤 구분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말았는데 그 때 대리님과 같은 팀 언니가 조금만 더 버티다 내년에 빨리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야간대학교에 들어가라는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선취업을 한 많은 친구들이 21살, 22살에 가장 슬럼프를 느끼지 않을까 싶은데요. 자유로운 청춘과 틀에 갇힌 경제력 중에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저 또한 당시 ‘청춘’이 가장 고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경제생활을 해야 한다는 판단과 또 부사장님의 직접적인 만류에 사직서를 반려하게 되었고, 2014년 부산에서는 야간대학으로 유명한 동아대학교 진학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청춘과 경제력 두 마리 토끼를 다 같이 잡을 수 있는 기회였어요!. 제가 어떤 직업을 가지겠단 구체적인 꿈은 없었지만 세계를 무대로 일할 수 있는 국제적인 일에 관심이 있었고 또한 업무를 함에 있어 좀 더 깊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국제무역학과로 진로를 결정하고 특성화고졸 재직자 전형으로 원서를 접수하였습니다. 특성화고졸 재직자 전형은 의외로 경쟁률이 높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면접  15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날 같은 전형으로 고등학교 동창까지 만나게 되어 대학생활이 무척이나 기대되었습니다. 대학교를 준비하면서 회사를 위해 미리 해 놓고 갈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지옥의 항공부가 아닌 누군가 한번쯤 오고 싶어 하는 항공부를 만들어 놓고 신입 언니들을 가르쳐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 신입사원 언니들을 더 열심히 가르쳐 주고 그들과 함께 밥도 자주 먹고 용기를 주고 협동심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또 소통의 자리를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냥 무작정 자리에 가 힘내라고 얘기도 해 주고 소소하게 초콜릿을 나눠 주기도 했을 정도로 열정 하나로 덤벼들었더니 신입 언니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지금은 서로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생각해 주며, 아주 편한 동네언니와 동생 사이처럼 지내고 있고 항공부에 웃음이 끊기지 않는다는 칭찬도 처음으로 들어보았습니다.    4.“꿈이 없다고 좌절하지 마라”- 김미경    ‘하나 되는 동급최강 동아대학교 국제무역학과’G14학번의 대학생활은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나이 많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많고 막내로 귀여움을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20살 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어떤 모임에서는 오히려 제가 가장 연장자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까도 말했- 심리학 수업 중듯이 고등학교 동창과 절친이 되어 함께였기에 덜 민망했고, 그렇다고 새 친구들이 소외감이 들게 하지 않았기에 동기 친구가 많이 생겼습니다. 사실 항상 어두컴컴해지면 수업에 들어갔기에 캠퍼스의 로망 같은 건 없었지만, 어느 날 문득 성적은 어찌되었든 그저 그 6시, 7시라는 평소 같으면 업무에 찌들린 시간에 ‘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학생’이라는 소속된 신분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는 자체에 무언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회사를 다니며 저녁에 영어 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고 학교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과 저 20살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기생이라는 생각이 나를 다시 가슴 뛰게 한다고 할까,  152 특별상•동아대학교 국제무역학과 허혜희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 ‘청춘’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학교는 야간대학 수업이 잘 되어 있고 또 매우 학구열이 높기 때문에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학교 수업이 있는데 이것이 나에게는 마치 제 3세계로 입장을 하듯 회사에서 있었던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게 되고 학교에서 또 다른 배움, 또 다른 인간관계를 가지며 두 가지 일에 대해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흔히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둘 다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학교 다닌다고 회사일에 소홀하다는 얘기를 들을까 업무시간에 더 집중하고 더 몰두하게 되었어요. 대학공부는 실무경험에선 알 수 없었던 경제학, 경영학, 무역학에 대한 기초들을 배우며 실무를 더 체계적이고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수업을 들으며 다양한 활동과제를 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조별과제는 빠른 시간 내에 단합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대학생활의 암적인 존재라고 하던데, 사실 저는 조별과제를 하면서 사교성과 정보 처리능력, 발표능력이 많이 향상 된 것 같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점차 학생으로서 하나하나 심화된 공부를 해 나가는 것이 저를 뿌듯하게 만들었고 1학기 주/야간 150명 중 전교 9등을 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습니다.     또한 ‘하늘열기’라는 경제학술 학회동아리에도 가입하여 매주 모임도 하고 뒷풀이도 하며 다양하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공부에만 매진하는 그들의 시선에서 다양한 삶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 하늘열기 12월 세미나 발표 후 고 이것이 저에겐 또 다른 배움의 장터가 되었고 너무나 흥미로웠습니다. 또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1학기엔 각종 경제, 재계에 종사하시는 대선배님과 대면하고 이야기를 듣는 자리도 있었고, 다같이 봄 나들이를 가기도 하였습니다. 2학기엔 첫 축제에 주점을 하였는데 우리끼리 음식을 만들고 칵테일을 만들며 신나는 추억 15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을 만들었으며, 연말엔 대선배님들을 모셔놓고 5를 주제로 세미나를 준비하며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도 가졌습니다. 지난 1년 간 동아대학교라는 곳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신선했고, 시작이 반이라고 그 1년이 저를 10단계나 더 업그레이드 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언니의 독설로 유명하신 김미경 작가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꿈이 없다고 좌절하지 마라,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새 꿈 앞에 다가가 있을 것이다.”G이 말을 듣고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멍해졌습니다. 바로 제가 그 꿈이 없는 패배자였거든요. 하지만 불안함 속에서도 저는 회사에서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고 진학의 기회가 왔을 때 국제무역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의 꿈은 남은 3년동안 무역학과 물류학을 좀 더 심화적으로 배우고 영어와 중국어를 마스터해 전 세계를 무대로 누비는 글로벌 물류전문가가 될 것입니다.   저의 이러한 경험들이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어 사내의 같은 고등학교 후배 3명도 올해 야간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으며 그 중 1명은 저와 같은 전형으로 동아대학교 입학할 예정이에요. 후배들이 저와 같은 전처를 밟는다고 하니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 부담도 되고 기분도 좋은데요.   이처럼 저는 이 이야기를 읽는 친구들에게 ‘청춘’을 선물하려 합니다. 저는 24살의 나이에 대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했지만 동기들과도 친구처럼 잘 지내고 학교생활과 직장생활 모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직 3년이나 더 남았지만 한 해 한 해 더 나아갈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저는 청춘이란 20대 초반을 말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인 거 같아요. 친구들이 대학교에 입학해 4년 동안 공부하고 취업준비에 몰입하는 것처럼 저도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새로운 학문을 배우며 더 높이 발전할 수 있게 몰입하는 지금이야 말로 제 인생의 가장 청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이제 용기를 가지고 청춘을 찾아 보세요! 감사합니다. 154 특별상•동아대학교 국제무역학과 허혜희  특별상 ʻ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ʼ을 통해 시작된 제2의 인생! 최 경 숙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1. 1990년대! 그때는 그랬었다   우리나라의 *.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바로 직전 해인 1996년 2월. 나는 내 또래  친구들이 그러하듯 안정적으로 취업을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사실 중학교 시절에는 진로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이 155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맞는 말인 것 같다. 그저 친한 친구들이 그러하듯 인문계 진학을 당연히 생각하던 때였다. 인문계와 특성화고 진학에 대한 선택은 어린 나에게 꽤 큰 고민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리 풍요롭지 못한 가정의 1남 3녀 중 차녀로 태어났기에 개인적인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처지였다. 2살 터울의 언니가 이미 특성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한 상태였기에 부모님은 막연히 언니와 같은 길을 갈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마지막까지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나는 가족들과 꽤 많은 대화를 해야 했다. 어린 나이지만 막연하게나마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고, 그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꿈을 포기하고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는 4명의 자녀를 키우며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설득이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던 청소년기였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통해 언젠가 경제적으로 독립이 된 시기를 상상하고 그때 다시 대학 진학의 꿈을 키워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이 섰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남들보다 조금 빠른 사회인이 되기 위해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당시의 나는 굉장히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향의 학생이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학생이었다. 그런 성격 덕분인지 별다른 무리 없이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당시의 사회는 인문계 진학과 특성화고 진학 비율이 5대 5 정도로 거의 비슷한 시기였다. 그로 인한 특성화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취업도 매우 활발하던 때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그땐 그랬었다.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여유도 없이 19살의 나는 그렇게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어린 나이에 시작되는 사회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큰 문제없이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학교와 사회와의 괴리는 생각보다 컸지만, 노력한 만큼의 성과와 칭찬은 언제나 앞을 향해 갈 수 있는 희망이 되었다. 조금씩 사회에 적응해 갈수록 하고 싶은 일들과 배우고 싶은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의 꿈도 그리 먼일은 아닐 것만 같았다. 눈물 흘리며 업무를 배워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 눈물의 횟수가 조금씩 줄어든 만큼 나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첫 번째 받은 월급에서 느낀 희열과 보람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곤 한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내 힘으로 이룬 자랑스러운 노동의 결과였다. 아직까지도 손에 꼽을 정도로 나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던 순간이기도 하다.  156 특별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최경숙    그렇게 보내온 10여 년의 시간. *.를 겪어야 했고, 밀레니엄을 보내면서 세월의 풍파와 함께 나는 조금씩 성장했다. 여전히 나는 재무, 회계 부서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때와 달라진 점은 이제는 누군가를 가르치며 팀을 이끌어가는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위치지만, 어린 시절에는 까마득하게 높게 보였던 그 위치말이다. 지금의 나는 19살에 꿈꾸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희망했던 모습과 다르더라도 어느 정도는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라 생각하고 너무 좌절하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한번도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희망을 버린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2. 유리천장과 내면의 고뇌에 부딪히다.   익숙해진 회사 생활은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됐지만, 경력이 많아질수록 필요로 하는 역량은 커져만 갔고, 배움의 강도 또한 거세졌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족되지 못하는 부분들 때문에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그럴 때마다 내 강한 부정과는 반대로 고졸이라는 타이틀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도 주말을 반납하며 재무, 회계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었다. 그저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싶어서였다. 정말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그 대가는 반드시 돌아오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 뜻과는 다르게 어느 순간부터 승진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급여의 인상 폭 또한 별 차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량이 커질수록 나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어 더욱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역부족인 것들은 늘 존재했고,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잘할 수 있고 잘하는 일까지도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대학 진학 여부에 대한 부분이 아니었다. 자격지심 같은 것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번 불리하다고 인식된 마음은 ‘현실에 안주할 것인가 ’, ‘극복해 나갈 것인가 ’G하는 속삭임으로 공존했다. 그 와중에도 간신히 얻은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치고 나니 나중에는 시도 자체가 큰 모험이 되어 버렸다. 현실은  157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생각과 다르게 녹록지 못했고, 나도 모르게 현실적인 부분들과 맞닥뜨려 안주를 택한 것 마냥 대학 진학의 꿈은 사라졌다.   시간이 또다시 흐르고 30대의 중반이 되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함께 진학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20대에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열의는 금방 꺾였다. 20대처럼 용감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험을 저지르기에 30대의 나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사실 무엇보다 진학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주원인은 수능이었다. 또한, 바쁜 회사 생활과 병행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오랜 시간 닦아놓은 터전을 불안하게 하는 일은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는 회사도 아니었고, 업무도 아니었다. 더불어 회사의 지원이 없는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또한 배제할 수는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조차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던 시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야간대학으로 학교를 마쳐도 대학 졸업에 대해 인정을 해 주는 회사도 현실적으로는 많지 않은 실정이었다.   그런 여러 가지 생각들로 인해 대학 진학의 꿈을 잊고 있을 때였다. 아는 지인이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고려해보라는 의견을 건넸다. 이미 친구들 중에도 방송대에서 공부를 마친 경우가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큰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이거다!’G싶었다. 일단 학비가 저렴했고, 원하는 시간에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에 한 번쯤 시도를 해볼 만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 수능 없이 진학이 가능하다는 점은 내게 가장 큰 이점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4년제 학위가 취득이 된다는 점은 배움과 더불어 학력에 갈증을 느끼던 내게 오아시스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길로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원서 접수를 마쳤다. 또다시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희망이었다. 158 특별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최경숙  3.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설렘으로 가득한 기대와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3월의 신학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앞서 했던 좋은 각오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체계적인 학교생활이 오랜만이었기에 두려움과 중압감이 있었지만, 열심히 하고 싶었다. 아니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모든 시스템이 혼자 알아서 하는 방식이었기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인터넷 강의는 바쁜 일상이라는 핑계로 조금씩 등한시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니 훌륭한 강의들도 들어봤자 소용이 없었다.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한 많은 사회인들이 더없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와 맞지 않아도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우선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서로 용기를 북돋으며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곳에서 혼자였다. 먼저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힘겨운 1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다른 어떤 학교보다도 졸업이 힘들다는 방송통신대학교였다. 앞으로 남은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더 큰 각오가 필요한 시기였지만 한번 잃은 마음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4. 2014년 동덕여대 세무회계학과에 입학하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과 연락이 닿았다. 나와 같은 13학번으로 진학해 동덕여자대학교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생소하고 낯선 전형에 대해 친구는 적극적으로 추천을 하며 동문으로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는 상태였기에 이번에는 제안만으로 선택할 수 없었다. 힘겹게 보내온 1년이라는 시간을 포기할 만큼 내게 맞는 공부 방법인지 알아봐야만 했다. 우선 내가 가장 중요시했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없는 전형이었다. 이름 그대로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장 재직자들에게 지원되는 특별전형이란 말에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자 더욱 다양한 정보들이 궁 159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금해지기 시작했다. 친구가 준 다양한 정보와 커리큘럼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더 나이가 들어서도 도움이 될 만한 유익한 정보들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은 점점 확고해졌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과에 대한 정보를 외울 만큼 보고 또 보며 파악했다. 친구와도 만나서 궁금한 부분들을 물어보며 직접적인 정보도 입수했다. 세무회계를 공부하고 싶었으나, 사정상 방송대에서는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던 터였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학과와 커리큘럼, 집과 30분 이내의 학교 위치 등은 모두 만족스러웠다. 부담스러운 학비도 경력 장학금으로 등록금의 40%가 지원(총 직장경력 10년 이상)되어 어느 정도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월, 화, 목, 금요일 총 나흘 동안 이루어지는 야간 강의 때문에 고민은 계속되었다. 회사 퇴근 후에 강의를 들을 수 있을 지조차  의문이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2014년 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의 수시 원서를 접수했다. 고민을 많이 한 것에 비해 면접은 무척이나 순조로웠고,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합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기 전에 한 가지 남아 있는 숙제가 있었다. 회사 경영진에게 허락을 받는 일이었다. 특성상 야근이 자주 발생하고 그 일을 책임지는 위치였기에 학업 병행은 꼭 보고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회사의 태도는 너무나도 너그러웠다. 회사 일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학업을 중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서일까  아니면, 그동안의 업무 성과와 진행과정에 대한 신뢰에서 오는 믿음인 걸까  무엇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걱정거리가 줄어든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딱히 정해진 별도의 지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영진의 허락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5. 드디어 시작된 꿈z은 학창 생활과 변화   2월 중순쯤. 생각지도 못한 오리엔테이션 참석 요청 알림이 도착했다. 입학 전 교수 160 특별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최경숙  님들과 선배, 동기를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그제야 ‘내가 진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구나!’G하는 느낌이 비로소 들었다. 어린 시절 막연히 꿈꿔왔던 대학 캠퍼스 생활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도 나왔다. 입학도 하기 전에 마음은 이미 졸업생이 된 기분이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나게 된 새로운 인연들. 이미 면접으로 인해 몇몇의 얼굴들은 낯이 익었지만, 새로운 관계로 인한 설렘으로 마음만큼은 스무 살 새내기의 그것과 똑같았다. 학년 중 내가 왕언니가 되었지만, 그런 것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렇게 일과 함께 병행 된 2014년의 1학년 1학기. 개강 후 정시 퇴근은 생각보다 더, 굉장히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다. 정시 퇴근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혼자 좌불안석하며 마음만 들볶을 뿐이었다. 강남에 있는 직장과 성북에 있는 학교와의 거리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각오한 일이지만 1시간이 넘는 통학 시간은 몸과 마음에 꽤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3월 한 달간은 정말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았고, 집중도 또한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일과 학업의 병행은 캠퍼스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기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조금씩 학업에 적응하며 회사 업무도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업무에 더욱 열심히 임하는 모습을 보이자 야근할 일이 있어도 동료들의 배려를 받아 조금 이른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성실한 1학기를 보낸 후 나는 3등까지 지원되는 성적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대표님과 회사 동료들의 응원은 더욱 커졌다. 2학기부터는 회사의 지원이 조금 더 눈에 띄게 발전했다. 시험기간에는 조기 퇴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많은 고민은 왜 했을까 싶을 정도로 주변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지금. 고마운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 마음에 보답을 위해서라도 더욱 시간을 값지고 알차게 써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6. 학업 적응과 함께 얻은 소중한 동기들   입학 후 나이와 지역과 성격이 너무나도 다른 소중한 동기들이 생겼다. 다양한 사람 161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들과 교류할 수 없었던 내가 한층 다양해진 대인관계 속에서 잊고 있었던 감정들과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떠나본 대학 .5는 회사에서 떠나는 워크숍, 세미나와는 다르게 확실히 젊음으로 가득했다. 뉴스에서 보던 것처럼 술로 얼룩지지 않은 .5를 통해 학교에 대한 정보를 더욱 많이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은 내가 주체가 되어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하였다. 비록 직접 운영하지는 못했지만, 대학 축제에서도 1학년만의 단합된 모습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올해 있을 대동제에는 동기들과 합심하여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1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단연 세무회계학과의 중국 상하이 산업시찰이다. 하루의 휴가를 더해 떠난 2박 3일의 산업시찰은 교수님, 선배, 동기들과 더욱 돈독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했다. 힘든 만큼 평생 잊지 못할 다양한 추억을 쌓고 온 시간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학교에서 만난 3_4년의 인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인생의 벗을 만난 느낌이다. 비록 야간 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그들과 더욱 즐거운 추억들을 쌓아가고 싶다. 7. 용기와 마음의 변화로 손에 넣은 행복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했다. 이 모든 인연과 변화들은 내게 제2의 인생을 사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많이 살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적게 살았다고 할 수도 없는 나이. 인생 절반의 시간을 보낸 지금. 나는 내가 낸 용기로 인해 이렇게나 다른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작은 용기를 시작으로 달라진 것은 비단 마음가짐만이 아니었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다시금 되돌아본 나의 인생은 위축되고 정체되어 있는 구간을 벗어나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앞을 향하고 있다. 그런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 친구가 내게 그러했듯 나 또한 학교 진학에 망설이는 친구와 정보를 공유하며 새로운 것들과 조우하기를 권유했다. 내가 누린 기쁨을 그들도 느끼기를 바랐고, 내가 느낀 행복을 함께하기 바랐다. 내 작은 노력으로 친구 한 명이 2015학번 새내기로 입학을 앞두고 있다. 그녀도 새로운 감정들과 다양한 정보들로 즐거운 시간 162 특별상•동덕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최경숙   을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나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이라는 것을 모르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 내가 변화된 시간은 불과 1년이라는 시간이다. 조금 더 당당하고 조금 더 여유로워진 내 모습이 더욱 좋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동기들과 환한 웃음으로 학사모를 쓸 날을  기대해 본다. 행복은 역시나 나 자신에게 있었다는 당연한 이치를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말이다. 163 2015년 특성화고졸 재직자 특별전형 입학생 체험수기집  ",
"Date": "2021-07-08T10:55:02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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